숨 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보여요

보이지 않는 걸 알아차리는 방법들

by 가가책방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 보이지 않는 마음, 알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오래 힘들었다. 사람의 마음이 힘들다고 말하면 나약해 보일까 봐 솔직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 힘든 마음은 외로웠다. 힘들었다거나 외로웠다고 말하는 게 힘든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였던 것이다. 번거롭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하는 여러 가지(누군가는 쓸데없다고 말하는)를 생각하는 습관, 줄여서 생각이 많은 사람이 된 것도 성격과 방어기제가 뒤섞인 결과물이었을 거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눈치가 빨랐다. 어떤 행동이나 말, 눈빛에 이어 일어날 좋은 혹은 나쁜 일들을 예상하는 일이 숨 쉬는 것처럼 쉽게 이루어졌다. 간지러운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호의를 이끌어낼 줄은 몰랐지만 곤란한 일을 피하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시간이 흘러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더 큰 세계로 떠밀려 나갔을 때도 그 습관은 큰 위기에 처하기 전에 나를 구했다. 그러나 그런 습관이 도움이 되는 건지 정말 나를 위하는 건지 점점 알 수 없게 됐다. 친한 친구도 적도 없는 미지근한 사람. 언제 마셔도 개운하지 않은 미지근한 물처럼 오랜 시간 스며들지 못하고 겉돌기를 계속했던 것이다.

KakaoTalk_20231128_114913496_01.jpg 마지막 잎새

<사토라레>라는 영화가 있다. 사고 충격으로 속 마음이 주변에 다 들리게 되는 사토라레가 된 남자가 주인공이다. 자신의 속 마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주인공과 날 것 그대로의 생각, 마음을 접하고 당황하면서도 주인공의 마음이 들린다는 사실을 숨기려 하는 사람들의 기묘한 비밀작전. 이 영화의 존재를 알았을 때 잠시 숨죽인 채로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설마, 내 마음이 들리는 건 아니겠지?"

속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장점과 단점은 명확하다.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을 반드시 들키게 되는, 좋게 말하면 비밀이 없어져서 더 이상 속거나 속이지 않게 되는 투명한 사회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동시에 몰랐더라면 좋았을 불행과 잘못들을 피하지 못하고 마주해야 한다. 그만큼 마음은 강하고 단단해지겠지만 감당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은 도태되고 말 것이다. 마음이 투명한 세상, 서로 숨기는 것 하나 없는 세계는 서로 속마음을 감추고 속고 속이는 지금의 세계와 다르지 않거나 더 황량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속 어린 왕자는 "가장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 공주를 대표하는 시인, 나태주 시인은 시 <풀꽃>에 이렇게 적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1974년 출시된 초코파이는 1987년 광고에서 정(情)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이런 광고 카피를 내놓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공통점이 없는 세 가지는 하나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마음이라고 하는 본질은 쉽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므로 쉽게 볼 수 있는 겉모습에 혹은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자세히, 오래, 그냥 바라보는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80년 전 발표된 어린 왕자와 80년 가까운 생을 살아온 시인과 50년 된 과자 광고의 카피.


사실 별 관계없는 세 가지는 저마다 다른 순간에 내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 『어린 왕자』는 나 역시 좋아해서 여러 번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 어느 날에는 어린 왕자처럼 어느 날에는 불시착한 비행사처럼 어느 날에는 뱀이나 꽃의 마음이 되는데 그 모든 순간이 위안이었다.

나태주 시인님은 공주에 수십 년 먼저 살기 시작하면서 "공주 사람들이 공주가 아름다운 줄 모른다"며 안타까워하며 신입 이주민이던 내게도 공주의 매력 중 하나가 되었다. 동네 할아버지 같은 친근함과 순수함으로 내가 심어놓고도 모르던 꽃 이름을 알려주기도 하는 자전거 탄 시인. 그 뒷모습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초코파이는 마음이 허기진 날에 헛헛한 속을 당분으로 충분히 채워주었다. 열두 개를 사서 열 개나 열한 개를 먹으면 조금이지만 분명 마음 어딘가가 따뜻해지는 기분이 됐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드물게 마음이 허기진 날이면 꼭 한 번은 떠오른다.


소설과 시와 과자 광고. 세 가지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역설적이게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오래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한 가지는 충분히 오래 보았다고 해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그토록 보기 힘들다는 마음이라는 걸 기억해야 하는 거다. 이 생각 역시 쓸데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저지른 실수, 빠졌던 착각을 다른 사람들도 피해 가지 못할 거라는 확신 역시 오만일 테니까. 그렇다면 이건 다만 생각이 많은 사람의 쓸데없는 걱정으로 치부해도 좋겠다.


내가 아는 지금의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에 더 크게 자극받고, 말해야 아는 게 당연하며, 순간 스치듯 잠깐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 일이 더 흔하다. 그런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오래, 자세히 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말하면 몇이나 고개를 끄떡이며 받아들이게 될까. 소설은 소설이고 시는 시이며 광고 카피는 카피일 뿐이라고 나누어 선을 긋지는 않을까. 예전의 나 그게 몹시 두려워서 숨죽이던 순간이 적지 않았다. 다르지만 비슷하고 싶은 마음, 적어도 닮아 보이려는 마음으로 숨죽이고 있으면 물 밖의 물고기처럼 숨이 가빴다.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만이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 밖의 물고기처럼 숨 가빠하면서도 견디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저마다 목표와 바라는 것이 달라서 숨 가쁜 시간을 견디는 마음도 다르다는 것도. 그 다름이 남는 미래와 떠나는 미래를 가르게 된다는 것까지.


아이는 1초만에 울 수 있다

아이와 함께 하면서 많은 걸 배운다. 숨죽일 줄 모르는 아이의 숨소리는 울음소리마저 솔직하고 적나라하다. 진짜 슬픈 건지, 슬프다고 믿는 건지, 슬프다고 믿어주기를 바라는 건지.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알아차리게 된다. 1초 만에 온몸으로 울 수 있는 신기한 존재. 오래 내 앞에서 숨죽이지 말았으면, 그 솔직한 숨과 소리와 울림과 몸짓을 충분히,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우리는 마주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오래, 그저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있을까. 한 시간이나 하루를 보고 마는 사람이 아님에도 마음이 바빠 상대의 마음을 충분히 살피지 못하는 매일을 보내는 건 아닐까.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삼 나와 우리를 돌아본다.


서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우리는 상대의 숨 쉬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숨 쉬는 모습과 얼굴의 표정, 몸짓들이 마음을 비추고 드러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유심히 읽어보는 것이다. 그 후에 내 마음의 기준으로 해석하기를 조금 미루고 상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보고 조심스러운 대화로 연결 지어 보는 거다. 그런 조심스러운 수많은 시도를 거듭하는 시간이 실수할까 겁내던 마음과 상대방을 잘 모르겠다는 불안을 이기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KakaoTalk_20231127_121417297_05.jpg 서리가 내리기 전에 화분을 실내에 들여 놓기를_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