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에 한숨 쉬기

상상도 못 할 만큼 천천히

by 가가책방

한 걸음에 한숨을 쉬는 건 보통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고 해도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숨을 아무리 빨리 쉰다고 해도 걸음은 그 빠른 숨보다 한참은 더 빠르기에 그 느림이 가져오는 답답함을 보통은 견디지 못한다.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면 어디 한 번 한숨에 한 걸음 걷기를 시도해 보길.


성공?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쓰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에 어떻다는 확신 있는 답을 하기는 어렵다. 의미가 없을지도 모를 일을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가 생겨나기를 바랄 뿐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게 한 걸음에 한숨 쉬기는 너무 내딛기 힘든 한 걸음이다. 몸이 한가해지는 만큼 마음만 바빠져서 도무지 천천히 숨 쉬는 것도 느리게 걷는 것도 간단하지가 않다. 대신이라고 하기엔 궁색하지만 그래서 천천히 적으려고 시도한다. 한숨에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을 적는 것이다.


사실 한 걸음에 한숨을 쉬는 건 거의 모두에게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 모두는 한 때 한 걸음에 한숨 쉬기를 아주 간단히 해내던 시기를 보냈다.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렸을 뿐 보통 사람들은 다 그 시기를 지나서 오늘에 이른다. 몇 해 전, 우리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한 걸음에 한숨을 쉬는 걸음마를 걸어서 오늘까지 오는 것이다.


그날, 걸음마를 하는 아이는 다만 걷기에 집중한 상태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오히려 숨 죽이는 건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와 사람들이었다. 넘어질까 불안해하는 것도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아이 마음은 아니다. 놀라거나 기뻐하거나 아쉬워하는 일 모두가 아이의 몫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의 몫이었다. 모두의 기대를 받지만 부담을 느끼지 않는 자기만의 속도. 자기의 숨과 걸음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거기 있었다.

황토가 깔린 산책로

뜬금없는 소리지만 요즘 맨발 걷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대지와의 연결이 끊겨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맨발 걷기를 하면서 회복했다는 경험담도 전보다 자주 들린다. 산에 자주 가지 않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몇 번 맨발로 산길을 걷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의외였던 건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빨리 걷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이와 함께 걷는 중이라 걸음이 늦을 수밖에 없기는 했는데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걷는 사람들만큼이나 빨리 걷고 있었다.


질문하기 좋아하는 성격 탓에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맨발을 땅에 닿게 하면 자동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인 걸까? 자기 내면에 집중한다는 내적 작용보다 땅에 직접 접촉한다는 물리 현상의 작용이 우선하는 장면이 거기에도 있었다.


맨발 걷기도 좋지만 한 걸음에 한숨을 쉬려고 시도하면서 걷다 보면 오히려 연결되는 게 많지 않을까?


한 걸음에 한숨 쉬기는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말자'라는 스스로 하는 다짐이다. 몸이 바쁘거나 마음이 급하다고 마음까지 조급하게 먹으면 꼭 문제가 생겨서 더 늦어졌다. 신호 한 번을 더 기다리기에는 너무 늦는 기분이라 샛길로 돌아가려고 하면 좁은 길을 막고 공사를 하거나 짐을 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을 향해 경적을 울리거나 화를 내거나 다투거나 하다가 평온하던 기분까지 나빠지고 더 늦어버리는 일이 꼭 일어났다.

마치 곤란이 조급한 마음을 기다리고 있다가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려고 계획한 것 같은 비극.

비극을 피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숨을 고르며 조급해지지 말자고 주문을 거는 것이다.


숨과 발이 맞지 않으면 걸음이 꼬이기도 한다. 오른발과 오른팔을 동시에 뻗으며 걷는 이상한 걸음을 걷게 된다면 숨과 발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숨을 자연스레 쉬며 걷기보다 잠깐씩 숨을 참거나 멈추며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으면 금세 어색함을 알아차리고 고치겠지만 운이 나쁘면 넘어지거나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넘어지는 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쉬이 낫지만 마음의 거리낌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조급하게 먹은 마음은 숨을 흩트린다. 흐트러진 숨은 다리만 꼬이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꼬이게 만든다. 좋은 말이거나 좋은 뜻이거나 좋은 의도와 무관하게 나쁘게 듣고, 나쁘게 해석하고 나쁘게 받아들이게 한다. 숨이 고르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며 담담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흐트러진 숨으로는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어렵다. 말을 거는 게 어려워지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없게 되고 도움이 없으므로 더 서두르는 마음, 조급한 마음이 되어 힘든 상황과 더 자주, 자꾸만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갓난아기의 풋 프린팅

혼자서는 고개도 들지 못하던 아이가 티 나지 않게 매일 연습해서 혼자 몸을 뒤집을 수 있게 된다. 한숨에 몸을 한 번 뒤집다가 한숨에 한 팔, 한 다리만큼 기어 다닌다. 혼자 서고 한숨에 한 걸음을 내딛는다. 이만큼 해내는 데만 한 해가 꼬박 필요하다.


이루기 전까지 그보다 간절한 게 없던 목표마저도 이루고 나면 잊힌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라면 그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더 크고 많은 성취를 향해 나아가면서 이미 얻은 것과 이룬 것을 돌아보며 만족하는 기회를 유예하는 것이다. 지금이 물이 들어오는 시기이므로,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지 않으면 더 멀리, 더 빨리 나아갈 수 없으므로.


자연스러운 성장의 결과와 의도적인 노력이 만나 사람들은 자라면서 더 빨리,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럴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애쓰며, 그렇지 못하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고대 철학자나 수학자처럼 대로 한가운데서 갑자기 떠오른 질문에 합당한 답을 찾느라 방향을 가늠하는 일도 없이 몸이 나아가는 대로 멈춘 듯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자신의 미래에서 기대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정지 상태 혹은 멈춘 듯 보이는 상태는 도태에 가까운 모습이므로 서두르는 듯 보일지언정 부지런히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 걸음에 한숨 쉬기를 시도해 봤다면 알아차렸겠지만 그렇게 들이쉬는 숨은 깊고, 길다. 더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고 하면 차고 맑은 공기나 따뜻하고 향긋한 공기와 심지어는 계절까지 들이마실 수 있다. 숨을 들이쉬며 주변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고 바쁘게 걸음을 옮기지 않으므로 불의의 충돌이나 사고에서도 안전하다. 무엇보다 안전한 건 온전히 한 걸음과 한숨에 집중하는 마음이다. 다치거나 자극받지 않은 호수 같은 마음.


비로소 누군가 노 저어 올 만한 호수 같은 마음과 만나는 것이다.

너무 많이 만나거나 너무 많이 스쳐 지난다.

사람도, 계절도, 시간도 다 흘려보낸다.

산책과 산보.

자꾸 잃어버리기만 하던 시간이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나로부터 나아간다.


KakaoTalk_20231205_142542056_02.jpg
KakaoTalk_20231205_142542056_01.jpg
KakaoTalk_20231205_142542056.jpg
KakaoTalk_20231205_142542056_03.jpg
2023년 12월 5일, 오늘의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