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풀 수 있는 아이가 자꾸 못한다고 한다

겨울 하늘처럼 변덕스러워 가는 나날들

by 가가책방

하루하루 겨울 하늘처럼 변덕스러워 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러나지 말고 버텨야 한다거나 이것만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던 고집들이 자꾸 별 것 아닌 게 되어간다. 불혹을 지났건만 자꾸 혹하게 되는 게 오히려 늘어나는 거다. 더 많은 것 걸 원하고 더 새로운 걸 꿈꾸는 게 아닌데도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런 삶도 매력 있게 느껴진다. 이 느낌들이 마음이 자라느라 유연해진 성장의 과정인지 나이 듦을 서서히 인정하는 마음의 약해짐인지 혹은 둘 모두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기분이 나쁘지 않음에 안도하는 중이다.

구름에 갇힌 파란 하늘

오늘은 날도 바람도 제법 차다. 초겨울 한파가 온다는 일기예보도 있다. 하늘도 푸르다 흐리다 오락가락이다. 한 해 중 가장 나이 든 시기, 그래서 점점 단단하게 움츠리게 되는 시기가 겨울이라면 어제까지의 내 마음이 그 계절의 풍경 같았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기보다 "그럴 수는 없다"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가 많아서 늘 주변에 꽁꽁 얼어붙은 찬 바람을 뿌리던 마음. 그 마음이 오늘 유난히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하나 예를 들자면 개인적으로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영양 성분이 없는 물을 마시는데 어떻게 살이 쪄서 체중이 증가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합리적인 증거와 자료로 뒷받침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오늘은 문득 '물만 먹어도 살이 찔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됐다. 수분 섭취로 인한 일시적인 증가가 아니라 세포와 조직 단위의 근본적인 체중 증가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 거다. 어떤 증거나 자료를 본 것도 아닌데도 그런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을 설명하는데 변덕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을 것 같아 변덕이라 쓴다. 어제까지 '물만 마시는 걸로는 살이 찌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는 나와 대화를 했던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일이냐?'며 어리둥절해지겠지만 지금 기분은 진심으로 물만 마셔도 살이 찔 수 있을 것 같으므로 조금의 거짓도, 기만도 없이.


어제의 내 주장, 과거의 내 생각을 부정하지 않는 게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오래 믿었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에 얼마 간 여지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일관성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일관성, 적어도 맥락이 있는 변화가 아니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기분 변화는 일관성은커녕 맥락도 없이 일어났음에도 진실이다.


KakaoTalk_20231129_131524052_01.jpg 구름에 갇힌 하늘과 소나무와 노을과
그럴 수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유독 엄격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므로 타인에게도 엄격할 수 있다고 오랜 착각에 빠져 있었다. 자신에게 엄격하게 임하며 일어난 변화가 유일한 변화의 방법이라고 믿으며 오만해지기도 했다. 할 수 있는 것을 안다고, 그러므로 해야 한다고 말해 온 셈이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금 당장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걸 억지 부리며 권리 없는 강요를 하기도 했다. 좁은 우물, 호수라고 믿었던 내 마음 역시 좁은 우물의 하나였던 셈이다. 이 생각의 시작에도 역시 가족이 있다. 41개월을 지나는 중인 아이가 특히 큰 자극제다.


계절과 무관하게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다니는 아이는 이제 제법 커서 코를 흥하고 풀 수 있게 됐다. 아직 조금 어설프지만 '흥!' 하는 부모의 구호에 맞춰 코로 숨을 뱉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또래의 아이 중에는 벌써 혼자 코를 풀 수 있게 된 아이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코를 흥하라고 하면 자꾸 못한다며 고개를 젓는다. 두 번 세 번 얘기하면 반항적으로 "못한다고!" 하며 눈물을 보인다. 나는 한 번 더 "흥 할 수 있어."라고 말해보지만 아이는 요지부동이다. 결국 코를 닦아주다가 콧물 흡입기로 코를 빼주는 일을 반복한다.

아이에게 코를 풀게 시키는 건 당연히 코를 닦아 주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콧물을 배출해주지 않으면 코가 막혀 숨 쉬는 게 불편해지는 건 당연하고 정체된 콧물이 호흡기관에 염증을 일으키거나 심하게 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콧물 빼는 걸 싫어해서 도망 다니는 아이를 붙잡고 설득하는 일이 번거로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거듭할 수 있다고 해보라고 하는 건데 오늘은 유독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못 해'라는 아이의 말이 크게 다가왔다. 평소에도 들리던 소리였을텐데 어제의 나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았던 아이의 말. 오늘의 변덕이 아니었다면 언제 들을 수 있게 됐을까.

KakaoTalk_20231129_131524052_04.jpg 노랗게 물든 버드나무와 여전히 초록인 버드나무가 나란한 풍경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과 할 수 있음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서로 다투지 않는다. 더욱이 오늘은 아니더라도 내일은 하게 될 일에 대한 것이라면 가능한 능력보다 불가능한 마음을 우선해도 괜찮은 게 아닐까.

겨울이 춥다고 눈까지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날이 흐리다고 마음까지 흐릴 일은 아니다. 오늘 변덕을 부려서 마음이 달라졌다고 해서 스스로 '어제의 자신을 부정하는 행동을 하는 건 옳지 않다'며 몰아세울 필요도 없다. 스스로에게 관대할 수 있어야 타인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그래도 아이에게 한 번 더 얘기하겠지.

"흥! 해봐. 할 수 있어!"

언젠가 '못해, 못한다구!'하고 말하던 날을 그리워하게 될 오늘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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