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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Feb 03. 2024

모두들 마음에 이야기를 숨기고 살아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용기와 열리는 문을 택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에 나를 신뢰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오늘의 내게 사람들과 세상이 나를 신뢰하게 하는 미덕이 있다면 셋 중 하나는 서른 이후에 생겨났다. 둘은 최근 4년 사이에 생겼다. 마지막 하나는 서른 해를 살며 얻었다고 믿던 경험을 근거로 한 확신 거의 모두를 버린 자리에서 찾았다. 조금만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오늘처럼 웃을 일도 누군가는 나를 신뢰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내 잘못이 아니다', '왜 아무도 나를,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가' 같은 원망의 말을 내내 쏟아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 고전 속 한 문장을 인용하며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하고 멋진 척, 강한 척 속으로는 매일 울었을 것이다.


 실제로 자주 울었다. 울음이 아니어도 문득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내가 틀려서도 잘못해서도 아닌 게 확실하다는 분한 마음이 자꾸 울게 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당연한 말로 위로하려는 사람들은 싫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들도 당연한 줄 알면서도 그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는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내가 아는 걸 세상은 다 모르는 것만 같고 내 마음만 세상 사람과 다른 것 같다는 어린 마음이 응석을 부리게 했다. '세상이 틀렸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다' 하는 마음이 사람에게 다가가기를 게으르게 했다. 당연히 나는 더 외로워졌다.

가가책방의 밝음과 어두움

 오래전 '나는 불신을 앓고 있었다'는 글을 적었다. 친절한 사람들의 진심을 의심하는 마음과 한눈에 알아차리게 되는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며 '역시 세상에 나 말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식의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란 걸 알지만 그 말 말고는 할 수 없어서 고민하다 당연한 위로를 건넸을 사람들의 마음처럼 몰라서 속았던 사람보다 속아줄 만해서 속거나 모른 척 속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해야 속이 후련했고, 속았다는 걸 알려줘야 편해졌다. 쓰고 나서 알아차리게 된 것처럼 내 속이 후련하기 위해,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뒤에 두었던 것이다. 사람들과 세상의 마음이 어려웠다. 내 마음도 잘 몰랐다. 생각은 많아도 말이나 글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았으므로 내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도 믿지 않고 의심해야 한다고 자꾸 보챘다. 막다른 길로 내몰린 기분이 됐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사람보다 흙과 가까운 자리, 개미 떼 같은 사람의 무리가 아니라 진짜 개미 떼와 매일 만나는 땅으로 터전을 옮겼다. 도망이라거나 후퇴라는 말은 가족에게도 숨기고 최대한 웅크린 다음에야 조금은 편한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숨이 편해지니 갑자기 생겨난 시간 여유를 채울 게 필요해졌다. 지금처럼 SNS가 발달한 시기라면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가장 가까이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책이었다. 하루 한 권, 하루 두 권, 이틀에 한 권. 책 만 권을 읽은 사람 이야기, 교훈적이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닿는 대로 사서 읽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하찮고 실패에 가까워 보일 책도 다 좋았다. 오히려 더 많이 읽게 되고 읽고 싶어 졌는데 책이 좋아서라기보다 비로소 사람과 만났다는 생각에서였다. 책 속에 사람이 있었다. 책 속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당연한 위로는 왠지 당연하지 않았다. 뻔한 조언도 뭔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나를 모르는, 멀리 떨어진 세계의 사람들, 나와 전혀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내 마음처럼 반가웠다. 책 속 사람들과의 만남을 한참이나 계속한 다음에야 비로소 진짜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 일지 호기심과 기대가 불안을 앞질렀다. 사람을 만나야 했다.

누군가 남기고 간 가지런한 마음의 빈자리

 지금 생각하면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처음 나간 독서모임에서 오만함과 편견이라는 또 다른 작은 우물에 갇힌 한 인간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도망칠 자리가 있었던 다행함과 그 시간 동안 책 속 사람이나마 만나며 진심과 조롱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분별을 갖출 수 있던 모든 게 운이었다. 그건 내가 잘해서도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닌, 다행 그것이 전부였다. 온통 다행스러움이던 첫 독서모임 이후 무작정 책을 고르던 습관을 사람들이 자기 삶과 연결해 보여주는 책들 속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바꿨다. 예전에 읽고 다시는 읽지 않겠다며 실망한 책에 한동안 사로잡히기도 했다. 오래되고 어렵고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세계의 이야기들이 오히려 친근해졌다. 혼자 알기 아쉽고 지금 떠오른 생각이 잊히는 게 두려워 길고 짧은 리뷰를 남기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다. 이해 불가능, 넋두리 같던 그 전의 감상문들이 하나의 경계석이 됐다. 조금 덜 외로운 기분, 비슷한 사람과 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큰 위로가 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내고 도시로 돌아갈 결심을 할 수 있던 힘이 사람과 이야기에 있었다.


 지금 와서는 이런 생각도 하게 됐다. 내 마음이 누군가의 이론이나 사례에 맞춰지지 않으려면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야기에 서툴러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색해하거나 어렵게 느낀다. 어색함과 어려움을 사소한 것 혹은 누구나 그런 것으로 보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거라 믿으며 유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일까'하는 의문이 좀처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적이 있다며 공감한 경험이 근거라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말도 좋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여기있는 모두가 마음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동안에도 사람은 멀어질 수 있다. 그러다 자신과도 멀어져 쉽게 만나지 못하고 오래 헤어져 살아가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꼽히는 일 중 하나가 자신과의 화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면서 화해의 계기를 찾는 방법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나야 한다. 내 이야기를 풀어놓게 하는 마음의 긴장을 풀어줄 이야기와. 내가 알게 된 내 마음을 이야기가 되게 하는 길이 책 속 이야기를 통하는 것이라 그에 대해 쓰려고 한다. 이야기 속 그가 나라면, 내 경험과 비슷한 처지에서 그들이 택한 길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쩐지 외면할 수 없어서 마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쓸수록 나를 알아가기를, 나와 만나기를 기도하는 마음은 처음 글을 쓸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누군가, 모두가, 작고 사소한 단서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면 그보다 큰 의미, 기쁨이 없을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으로 시작한다. 『마음』은 <마음이 죽은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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