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작용과 부작용

멈추거나 작동하거나

by 가가책방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는 1.1센티미터만큼 자랐고, 1킬로그램만큼 무거워졌다.

아이조차 숫자로 적으면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하게 알만한 대상이 된다. 서사 없는 삶이 그렇듯이.

2주 전 금요일 아이는 처음으로 부산 해변을 걸었다. 모래를 만지고 달려오다 달려 나가는 파도와 술래잡기도 하고. 남쪽이라 따뜻할 거라는 기대를 날려버리는 강한 바람과 바람이 머금은 찬 공기를 몸소 체감하면서.


부산에 가기 전 아이는 천진난만하게도 이렇게 물었다.

"부산도 우리 나라야?"

"부산도 우리말을 써?"

만 다섯 살 반이나 되는 아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참 어리석은 질문이구나'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어리다'는 말이 어리석다와 이렇게 이어지는가 하는 별로 쓸데없는 생각도 함께. 그러나 돌아보면 그만한 나이의 나는 아마 부산이니 이웃 동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만 "부산도 우리 나라지.", "우리가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다 우리 나라야.", "부산도 우리 나라니까 우리말을 쓰지." 여기에는 인내심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가르치는 마음이 아닌 배우는 마음마저 느끼며 몇 번씩 다시 말해줄 뿐이었다.

KakaoTalk_20260202_142014636.jpg 아이의 첫 부산 해변

부산 바다는 제주와도 서해와도 달랐다. 7년 혹은 8년 전, 20년 전에 왔던 나의 부산 바다와도 달랐다. 아이에게 처음 부산 바다는 나에게도 처음인 바다였다. 같은 바다가 없다는 걸 아이와 함께 와서 배웠다.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일상 역시 그 전과 다름없이 이어질 거라 믿었다. 일상이라는 흐름조차 의식하지 않은 채 삼 일을 보냈다. 목요일 오후 세 시.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미열이 있다가 이제는 38도에 가까워졌다고 했다.

열감기는 코로나 이후로 걸리지 않던 아이라 오히려 불안했다. 유치원에서 만난 아이 상태는 평소와 비슷해서 아픈 건지 아닌지 알기 어려웠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니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배도 아프단다. 열, 두통, 복통. 뭔가 하나의 결론으로 모일 것만 같은 증상들.

소아과 선생님은 이제 막 증상이 시작되어서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독감 같다고 했다. 당장은 검사를 해도 확진이 나오지 않을 거라며 다음 날 다시 오라고 했다. 그날 밤, 아이 체온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40도를 넘었다. 40.2도. 밤 사이 온수 마사지를 해주고, 체온을 재고, 한 번 더 해열제를 먹인 보람도 없이 아이는 맥없이 안겨왔다.

평소라면 깨지 않을 시간, 아이는 제 열에 잠에서 깼다. 어떤 준비를 하고 언제 병원으로 출발하자는 말을 하나도 거스르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 이렇게 하자고 하면, "응"하고 저렇게 하자고 하면 "네"했다. 울거나 보채지 않고 씩씩하게 세수도 하고, 옷도 입어주는 아이가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KakaoTalk_20260202_142009877.jpg 금방 지워져도 기억하는 이름

평일 아침 소아과는 아직 한산했다. 아이 차례는 세 번째. 경과를 묻는 선생님에게 지난밤의 고열, 두통, 복통을 전하고 독감 검사를 했다. 코로나 때와 같은 길쭉한 면봉이 양쪽 코 속을 오가는 동안 아이는 인내심 있게 잘 참아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몇 년 사이에 크게 자랐구나, 그 모습이 그렇게 해석됐다. 씩씩하고, 담담하게. 어느 순간에는 아이가 부모보다 더 단단하고 어른 같다. 그 순간이 그랬다.

아이는 "독감 검사는 괜찮은데 주사는 무섭다"라고 했다. 선생님은 일단 먹는 약으로 가져가서 먹여보고 정말 안 되면 다시 내원하라며 진료를 마쳤다. 아이는 주사를 맞지 않았다는 사실, 그 하나로 열도 있고 즐거워했다.

낙관은 때로 배반당한다. 아이는 먹는 독감 약을 전혀 감당하지 못했다. 세 시간 사이에 다섯 번 구토했다. 먹은 게 없어 맑았다. 다시 병원에 갈 수밖에. 이번에는 주사를 맞을 거라는 말에 아이는 이내 울먹였다. 나는 이렇게 설득했다. "약을 먹고 계속 토하는 것보다 한 번 따끔한 게 낫지 않을까?" 아이는 말없이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주사를 맞으러 갔다. 수액실 침대 위에 눕히기까지가 가장 어려웠다. 아이는 힘없는 몸으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아주 잠시동안. 내내 같은 말로 설득했다. 잠깐 따끔하다고, 다른 주사보다 오히려 안 아프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정맥을 찾는 동안 아이의 불안은 최고조에 달했다. 우리는 따끔할 뿐이라고, 생각만큼 아프지 않으니 한 번만 맞아보라고, 더 어릴 때도 맞았었다고, 괜찮을 거라고 자꾸 말했다.

바늘을 찌를 때 생각보다 아이의 저항은 거세지 않았다. 온몸을 붙들고 짓누를 준비를 하고 아이 몸을 타고 올라갔던 내 자리가 머쓱할 만큼 순순하고 간단히 주사기가 정맥에 꽂혔다. 잠깐의 따끔함을 견딘 아이는 이내 여유를 찾아서 팔에 주사 바늘과 수액 줄을 고정하는 밴드를 왜 붙이는 거냐고 물었다. 생각보다 덜한 통증, 짧은 고통이 신뢰와 여유를 가져다준 것만 같았다. 이제 남은 건 한 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수액이 모두 떨어져서 아이 몸속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것뿐.

그 사이에 공포스러운 단어들이 잔뜩 등장하는 동의서도 작성했다. 해당 약의 부작용인지 인과 관계는 확실하지 않으나 약을 복용하거나 주사 처방을 받은 이들 중 극히 일부, 극도로 드문 확률로 추락, 섬망, 환각 등의 증상이 보고 됐다는 설명서. 인과 관계가 있다는 걸까 없다는 걸까.



그날 밤은 약이 듣는지 무난히 지나갔다. 구토도 소란도 없이 아프기 전 밤처럼 놀다가, 책까지 읽고 알차게, 제시간에 잤다. 새벽에 온수 마사지 두 번을 해주고 날이 밝을 무렵 먼저 깬 아이가 나를 부른다. 열을 재보니 다시 40도. 해열제를 다시 먹이고 열이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온수 마사지도 한 번 더 해주고. 아침 먹을 시간이 됐을 때 아이 체온은 비로소 37도 대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날은 그렇게 잘 놀고, 하루 종일 즐겁게 보냈다.

다시 밤이 오고, 새벽 2시쯤 됐을까. 잠결에 자꾸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성장통인가 하고 마사지를 해주려고 했다. 조금만 세게 잡아도 아프다고 하고, 문질러도 아프다고 해서 몸 다른 곳이 아프지는 않으냐며 잠결인 아이에게 여러 번 물어봤다. 머리도 안 아프다고 하고, 팔도 괜찮고, 발도 문제없는데 종아리만 아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신히 마사지하고 잠이 들었나 하면 30분쯤 지나서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가, 다시 1시간이 지났을까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제대로 자기 힘들었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아직인 걸까.

결국 검색해 봤더니 후유증 중에 아이에게 나타나는 대표 증상으로 종아리 통증이 있었다. 아침에 눈 뜬 아이는 서지도 걷지도 못할 만큼 아프다고 했다. 자기는 이제 못 걷는 거냐며, 그럼 기거나 누워서 다녀야 한다며 울먹였다. 주사보다, 구토보다 걷지 못하는 게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이가 잠들어서다. 낮잠을 자지 않으려던 아이가 스스로 자고 싶다고 했다. 침대에 안아서 눕혔더니 어느새 정말 잠들어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자는 중이다. 정말 아팠던 모양이다. 지쳤던 모양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통증, 걱정과 싸우느라 아이 나름으로 몹시 고된 날을 보낸 것이다. 잠에서 깬 아이가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만큼 통증이 나아졌기를 바란다. 곧 깨워야 하는데, 아빠의 바람은 단지 그뿐이다. 얼른 아빠랑 도둑놀이 하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삶은 아주 커다란 코끼리 만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