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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24. 2019

천일야화의 꿈이 사라진 그 바다

자연환경은 예나 다름없건마는...

아라비아 해에서 맞이 한 저녁노을.



  소식 많이 기다리셨죠?    -2011.02.20 -


 밝은 달빛과 잔잔한 해면이 어울리어 달콤하고 기막히게 아름다운 밀월의 밤 같은 포근함을 베풀어 주고 있었건만 마음 놓고 그 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었던 아라비아 해의 항해였습니다.


 천일야화로 알려져 있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로맨스는 살벌한 소말리아 해적들의 활갯짓에 의해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어디론 가 멀리 사라져 버렸더군요.


 이제 그 바다는 무관심 속에 팽개쳐진 애꿎은 선원 들만이 골탕을 먹는 바다로 된 것 같아, 기약 없는 어느 세월까지는 로맨스일 랑 철저히 접어두고 생존을 위한 투쟁에로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의 바다 되어 버겁기만 했습니다.


 이런저런 루머성의 <~카드라 통신>이 난무하니 애꿎은 담배만 피워재끼는 골초였다면 그의 인생에서 피울 담배의 절반 이상을 소모했을 법한 분위기가 지배하던 PG(페르시안 걸프 지역)에서의 정박 기간이었습니다.


 흘러나오느니 한숨이련만 그나마 맘 놓고 푹푹 내쉬지 못한 채, 출항하기 까지의 지지부진한 일과 중에, 졸아붙은 맥박을 달래 가며 일희일비를 반복하던 쿠웨이트에서의 초조한 나날이었습니다. 


 가위에 눌려 헉헉대던 한바탕 나쁜 꿈자리에서의 영상 마냥 이제는 무사히 지나쳐버린 그래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그 기억 들에서 한숨 돌리고 있던 와중에 느닷없이 전해진 자매선이 해적의 공격을 당했다는 새로 온 뉴스는 다스려졌던 마음을 다시 풍파에 던져주며 소태 씹은 형상으로 만들어 주더군요.


 닷새쯤 후에 우리 배에 둘러쳤던 레조 와이어(RAZOR WIRE) 철조망을 걷어 들이려는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날짜를 늘이어 며칠 더 설치상태를 유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유류보급지가 확정이 안된 채 달리고 있지만 내일 지나면 연락이 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예정이 오는 대로 다시 연락 드리기로 약속하며 오늘은 여기서 작별을 고합니다.

어머니에게 안부 전해주십시오.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는 H.T가 씨에스 아젤리아에서 보냅니다. -아젤리아는 진달래라는 단어입니다.

 구름들이 무슨 동화 구연이라도 하려는 듯 모여들어 머리를 맞대니 이런저런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 위에 저녁노을마저 피어 올라 채색을 가해주고 있다. 노을이 화판의 배경이라도 찾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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