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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22. 2019

낚시질하는 여유를 부려보며

기관장의 낚시를 물었다가 물 밖으로 끌려 올려진 고기들.


참 오랜만에 소식을 보내는 것 같네요.    2011.01.29


 찬미 예수님! 오늘도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의 기도를 시작하면서 하루를 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배는 지난 항차 태국에서 싣고 온 화물을 UAE에서 풀어주고 급유까지 마쳐준 후, 오만(OMAN)을 찾아가서 라임스톤을 싣고 인도를 방문하여 풀어준 후, 다시 공선으로 되돌아 페르시안 걸프의 쿠웨이트로 와서 이참에는 비료를 싣고 미국으로 가려는 예정으로 있습니다.


 이 모든 항해를 완수하기 위해 아라비아 해를 건너 다녀야 하는 길에서 원치 않는 해적들을 만날 수도 있는 위험 때문에 인도, 파키스탄, 이란의 해안을 가까이 붙어서 항해하는 항로를 택하여 항해를 하였고 이제 다시 나갈 때도 그렇게 되풀이 한 항로를 따라서 움직일 겁니다.


 그렇게 하면 항해해야 하는 거리는 좀 늘어나겠지만, 그래도 요즘 들어 부쩍 불어나고 있는 아라비아 해 가운데에서 해적들과 조우하는 일은 그만큼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그들 해적들로서야 그렇듯이 세계를 상대로 해적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기에 행하는 일이겠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일이지요), 단지 선원이란 이유만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되는 우리들은 과연 무슨 잘못이라도 크게 한 게 있어서 그렇게 당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막막하고 답답하기만한 줄곳 약이 오르는 일이네요.


 수출입의 원활한 활동만이 지금 우리나라가 계속 세계 속에서 경제 발전을 유지하며 잘 사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고 그 일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선원들의 노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인데.... 이렇게 우리들 배 사람들의 사기를 여지없이 짓밟아 내리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시원한 대처 방안이 아직도 떠오르고 있지를 않으니... 


 우선은 이렇듯 그들과의 조우를 피할 수 있는 가장 바르고 빠른 방법을 찾아가며 대처할 수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네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열심히 응원을 해주세요. 그리고 하느님께 청해 주시는 일로 우리가 그분의 뜻 안에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리면 되겠지요.


 이곳 쿠웨이트에 들어와서 다소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게 기다리는 시간이 생겨 그동안 바쁘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좀 추스르고 나니 한결 여유로운 심정이 드네요.


 그래서 어제저녁 무렵 낚시를 담근 기관장을 사진 찍고 있었는데 마침 둘째가 그 자리에 왔기에 얼른 찍었던 걸, 녀석이 보낸 이멜로 받으셨죠?


 그렇게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며 지내고 있으니,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 기분이 좋은 내 심정이나 마찬가지로 당신도 즐겁게 사진을 보며 안도하는 마음 되어주세요.


 사진의 구도가 마치 밀레의 만종이란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맘이 들지 않나요?


사진에서 넘어가는 태양에 마치 흑점이라도 생긴 듯 검은 점으로 가려진 건 낚시에 미끼를 물린 게 그 자리를 가리고 나선 때문이랍니다.


 아마도 이곳에서의 작업은 부두에 들어가서 한 닷새는 있어야 할 걸로 짐작되어 앞으로 한 주일 정도는-그러니까 구정 설날도- 이곳에서 지내야 할 것 같군요.


 우리나라도 이제 추운 겨울 철이 어느새 지나가는 시점에 도달해 있으니 그런저런 환절기의 고뿔에 유의하시며 지내도록 하세요.


어머니에게 안부 전달 부탁드리며 오늘은 여기서 쉬어 가도록 하지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는 H.T가 씨에스 아젤리아호에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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