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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10. 2019

베트남 동해안 따라 북상 중입니다



현재 본선은 베트남 동해안을 타고 남지나해를 북상 중입니다.   2011년 9월 3일


우리와는 이런저런 인연이 많은 나라가 베트남이고 이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는데도 나라의 크기가 의외로 큰 것에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이틀째 이 나라 연안을 타고 올라가는 것만 봐도 대충 그 크기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게다가 연안에서 만나는 어선들의 모습이 중국과 너무 다른 것에도 감동(?)하고 있습니다. 


배가 오건 말건 코스로 겁 없이 뛰어들고 통항로 안에서도 행패를 부리는 중국어선들과 달리 이곳 어선들은 지나는 배들을 상당히 의식하며 조업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죠.

제가 미안할 정도로 배의 코스를 정확히 비켜주는 모습들과 행여 그물을 끌고 있을 때면 라이트로 그물 방향을 정확히 일러주는 모습까지...


중국 연안이나 우리나라 연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스스로 벗어버렸고 세계 최강의 미국마저도 굴복시켰던 그들의 모습이 새삼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적다 보니 얼마 전 적었던 중국인들에 대한 소회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글줄을 늘어놓고 있네요. ^^


싱가포르를 출항하고 배에 오른 정기선 용품과 보급품을 정리하고 수급보고서를 작성한 다음, 재보급 청구하고, 싱가포르 기항으로 늦춰졌던 월말 서류들과 씨름하다 보니 정신없이 사흘째 항해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잡다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좀 편한 마음으로 메일을 적을 수 있게 되었죠. ^^ 


최근 중국으로 모여드는 배들이 늘어나면서 웨이팅이 길어지고 있다는 소식과 달리 본선은 10일에 도착하여, 하루 엥커링 후 11일에 접안, 7일간 짐을 푸는 것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배에서는 우리 차터러가 중국에서 꽤 힘이 있는 축에 드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지만 용선에 재용선, 재재 용선까지 걸려있는 마당에 마지막 항차인 이번 항차를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이 저절로 느껴지더라고요. 


벌크 지수가 바닥을 치고 있는 요즘, 그나마 고액을 받을 수 있던 브라질/중국 노선이 그 기나긴 항해 기간과 소요 금액으로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중국과 동남아를 돌고 있는 회사의 A, B, C들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가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정해진 것이 없으니 그냥 정해지는 대로 잘 따라가는 것이 상책이라 여기고 있죠. 


저는 남미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장기 항차가 내심 맘에 들지만...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


싱가포르에서 세 명의 선원이 하선했는데 그중 한 명만 교대자가 승선했습니다.

집안 문제로 고민이 많던 OS와 승선 생활에 적응을 못하던 ENGINE CADET, 그리고 인도네시안 BOSUN이 하선하고 한국인 갑판장만이 교대되었죠. 


싱가포르 입항 당시, 인도네시아는 라마단이 끝나고 축제기간이 이어져서 교대할 인원들의 출국이 여의치 않았다는 이유가 달렸지만 실은 갑작스러운 교대(갑판장을 제외)로 인해 충원할 인원을 미처 준비시키지 못한 탓이 더 커 보였습니다. 


특히나 OS와 E/C의 경우, 갑작스레 교대 요청을 해온 터에 함께 승선한 인원들은 계약기간을 채우고 중국에서 하선하겠다고 한 마당에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꼭 하선하겠다고 '생떼'를 쓴 상황이라 싱가포르부터 중국까지 하릴없이 세 명의 인원(한 명의 오일러가 지난번 더반에서 담도 결석으로 하선했거든요)이 결원된 상태로 달리게 된 것이죠. 다행히 오일러의 결원은 WIPER가 채울 수 있었지만 CADET과 WIPER가 한 번에 빠진 상태라 혼자 남은 조기장만 죽어라 일하게 되었습니다. 


본선의 조기장은 인도네시아인인데 이제 29살의 파릇파릇한 청춘입니다만 처음 승선 당시 그 나이를 못 미더워했던 기관장과 기관사들의 우려와 달리 일에 대한 이해도 상당하고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친구라 모두가 좋아라 하게 되었죠. 


새로 온 환갑이 넘은 갑판장도 제 타수가 'VERY GOOD MAN'이라 엄지를 추켜올리는 것을 보니 OS의 빈자리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다행스럽기는 한데 마지막 인상을 잘못 심어주고 떠난 친구들에 대해 회사 측이 '재고용 불가'로 결론을 내린 것 같아 마음은 편치 않네요. 다들 어려운 시기에 이런저런 핑계로 갑작스레 내려버린 것은 괘씸하지만 그래도 지난 석 달간 한 배를 타고 다닌 친구들인데 싶은 생각도 듭니다.


에휴....

하여간 이래저래 생각만 늘어가는 요즘이네요.

식구들과 통화도 오래간만에 해보고 중국에서 도착할 하드디스크도 기대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중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모쪼록 식구들도 여름의 막바지 잘 이겨내고 즐거운 가을맞이하시길 기도드리며, 오늘의 메일은 여기서 접도록 하죠. ^^


할머니, 어머니, 형, 막내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ㅋㅋㅋ


2011년 9월 3일,

남지나해를 북동진중인 CS DAISY호에서,

둘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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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천리포 수목원에서 꽃을 찾는 나비의 모습을 만나서 한 장 찍은 것을 보낸다.


둘째에게


인도네시아 반도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위치한 베트남. 그 연근해 해역인 남중국해를 항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지난 70년대 말/80년대 초 기간에 그 바다를 항해했던 세월의 기억이 떠 오르는구나.


당시 그 바다 위에는 베트남 패망 후 모든 걸 버리고 탈출한 보트 피풀의 출현으로 인해 열심히 경계(LOOK OUT)를 서며 통항해야 하는 바다였단다.


굳이 인도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자유를 찾아 탈출해 온 모든 보트피플은 무조건적으로 구출해주며 돌보아야 할 의리를 가지고 싶은 바닷 사나이인 우리들이지만 회사로부터는 피치 못하게 그들을 만날 경우에도 결코 승선시키지 말고 피하라는 엄중한 구두지시를 받고 있었단다.


보트피플-난민을 싣고 우리가 기항해야 하는 다음 항구를 찾아 입항하게 될 경우 그들 항만당국에서는 결코 입항허가를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명과 함께 모든 국가에서 그렇게 입항 관리를 철저히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덧붙인 이야기였지.


어느 날 낮 그 해역을 지나치고 있었을 때였다. 


엔진의 기척 조차 죽어 있는 상태로 표류하고 있던 어느 작은 배에서 기다란 막대기에 이런저런 옷가지나 깃발을 대신할 누더기를 끼워 잔뜩 달아 놓고 가까이 지나치려는 우리 배를 향해 힘없는 손짓들로 간절한 구조를 요청하던 보트피플의 탈진한 듯한 모습을 쌍안경의 렌즈를 통해 볼 수 있었단다.


차마 그 모습에 눈길을 돌리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떨어져 멀리 지나가도록 지시했던 내 조선 조타 명령은 지금에 와서도 당시 상황을 떠 올릴 때마다 회한과 아쉬움을 남겨주는 일로 다가서곤 한단다.


이는 지금까지 내가 바다 위에서 행했던 가장 잔인한 명령이었기에 결코 발령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엄격한 회사의 의사에 추종할 수밖에 없든 일이었고 어느덧 30여 년이란 세월의 흐름이 조금은 무디어진 상념으로 남겨주고 있구나. 


이제와 간절한 바람은 나와 같은 그런 경험을 너는 결코 하지 않는 세월을 살았으면 할 뿐이란다.


며칠 내로 그곳을 지나쳐 버리면 곧 태풍이 자주 출몰하는 해역을 향하는 꼴이 되겠구나. 얼마 전 그곳 필리핀 동쪽에서 발생한 태풍 둘이 나란히 북상하며 하나는 중국으로 상륙하였고 하나는 어제 일본을 남북으로 관통하더니 오늘은 동해 바다에 들어서서 비스듬히 북상 중에 있단다.


물론 이번 그 두 태풍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지나간 셈이라 한숨 돌리지만 아직도 한두 개 정도 더 있을 수 있는 태풍이 혹시나 너의 배의 앞길에서 알짱거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언제나 바라는 것은 안전항해임을 잊지 말거라.


이제 선주와 맺은 제대로의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선하려는 선원들의 소상한 상황을 옆에서 직접 보고 들으며 생각해보는 너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이 파기한 계약에 대한 책임을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져야 하는 입장임을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껏 한번 마음이 배를 떠난 선원들에 대해선 하선하도록 최대의 조치를 해주는 것으로 인사 관리를 해왔음을 부연해두고 싶구나. 우리들의 사회에서 순리가 아닌 상태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마음을 갖게 된 선원은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도움보다는 불편을 주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중도 하선하겠다는 통보는 최후의 막다른 결론으로 남겨두는 게 바람직한 승선 태도라고 여겨지는구나. 


중도 하선에 따른 모든 손해나 어려움은 자신이 스스로 감수해야 할 일이지 어느 누구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외국선원들과 함께 승선 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해운계 현실에서, 때때로 만나게 되는 의욕적으로 자신의 일을 행하는 외국 젊은이를 동료로 만났을 때 그들을 북돋아주고 키워주는 마음으로 승선 생활을 함께하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한 일이란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이번 너의 배 갑판장의 경우로 봐서도 알 수 있잖니, 예전에 한번 만나서 같이 생활했던 이들로부터 바람직한 추켜세움을 받는 상황의 인과 관계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이제 집안 식구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고 알려주며, 또 너한테 보내는 외장하드도 어제 회사로 보내어 <너희 배 교대 선원 편>으로 너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처리해 두었음을 알리며 오늘의 소식 전함 여기서 끝낸다. 언제나 건강하게 생활해주길 바란다. 집에서 아버지가.


ps:형이 보내는 편지도 동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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