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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11. 2019

대만 연안을 지나고 있습니다


대만 연안을 지나고 있습니다.  2011년 9월 6일


 "M/V H WHALE, M/V H WHALE, THIS IS ROC NAVY, ROC NAVY. DO YOU READ ME? OVER."


방금 본선 포트 쪽으로 가로질러간 배를 대만 해군에서 애타게 부르더라고요. 


고래를 뜻하는 단어인 WHALE을 '왈리'라고 부르는 것이 영 거슬리기는 했지만 본선과 교차하면서(실은 M/V가 아니고 M/T(주*1)였죠. 


330미터가 넘는 VLCC(주*2)였거든요.


PORT TO PORT 항과(주*3)로 교신을 했었기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세네 번 계속 부르던 해군 병사가 기어이 콜사인과 MMSI NUMBER까지 불렀지만 H WHALE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제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싶었지만 방금 통화를 마친 이력도 있고 해서 제가 H WHALE을 불러주었죠. 


"M/T  H WHALE, M/T H WHALE. THIS IS M/V CS DAISY, CS DAISY. DO YOU READ ME? OVER"

"THIS IS M/T H WHALE, GO AHEAD."

"SIR, NOW ROC NAVY CALLING YOUR VSL."


그제야 당황해서 채널로 교신을 시작한 NAVY와 고래호. 결국은 웨일을 왈리라고 부른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죠.

고래호가 지나가는 위치로 GUNNERY EXERCISE를 시작하려던 대만 해군 친구들이 그들의 코스를 변침할 것을 권유하기 위해 시도했던 교신은 결국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하지만, 우리 고래호의 삼항사, 다시 헤매기 시작합니다.


"SIR. CHINA NAVY?"

"NO. THIS IS R.O.C NAVY. ROMEO, OSCAR, CHARLIE NAVY."


 저야 대만과 중국의 국명이나 현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고래호의 삼항 사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죠. 


기어이 '왈리'라 부르던 해군 병사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더군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안 한 일을 슬그머니 끄집어내기 시작하더라고요.(지 구린 발음은 생각도 안 하고 말이죠. ^^) 


 하여간, 고래 호도 대만 해군이 원하는 대로 변침을 해주었고 잠시나마 시끄러웠던(?) 루존 해협에서의 해프닝은 막을 내렸습니다. 


^^ 아침부터 오가는 배들이 많아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이런 일이 있으니 웃음도 나고 긴장도 좀 풀리더라고요, 배 타는 이들이 아니라면 그게 무슨 우스운 얘기냐 하겠지만 말입니다. ^^


멕시코 만류와 함께 세계 2대 해류로 꼽히는 쿠로시오 해류에 어느새 올라 탄 본선은 서비스 스피드를 2노트 상회하는 16노트로 열심히 북동 진중입니다. 지난번 인도양에서 지저분한 날씨에 역조까지 겹치면서 거북이걸음 하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날아가고' 있는 셈이지만 본선의 용선주는 천진에 입항할 경쟁선의 정보를 보내주며 좀 더 빨리 올 수 없냐고 묻고 있네요.


 9일 NOON으로 예정된 경쟁선 M/V EFEFTHERIA의 ETA를 보내주며 말입니다. 


10일 11시로 예정되어 있는 본선이 경쟁선을 앞지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17노트로 끝까지 달려야 가능하니 미션 임파서블이란 계산이 나오는데 말이죠. 


 최근 중국으로 향하는 배들이 늘어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인 천진도 웨이팅이 계속 길어지고 있다고 하던데 원래 10일 입항, 하루 투묘 후 11일 접안으로 예정되어 있던 본선의 스케줄도 난데없는 경쟁선의 출현으로 인해 좀 길어질 듯싶습니다.


 원래 DISCH. 기간이 긴 곡물의 특성상 접안 후 7일이라고 나왔던 INFORMATION을 감안해보면 추석을 앵커리지에서 맞게 될 가능성이 높을 듯싶습니다. 


^^ 항해사의 입장에서 접안 후보다는 앵커링 중에 명절을 맞이하는 것이 속이 편할 듯싶기도 하네요. ^^


하여간 애타는 것은 용선주요, 저희는 그냥 최선을 다해주면 되는 상황이니 맘은 편합니다. ㅋㅋㅋ


하여간 이래저래 이번 항해는 지저분했던 인도양의 날씨만 빼고는 꽤 즐거운(?) 여정이 되고 있습니다.

어느 때 보다 맘도 편하고 몸도 남지나해에 들어서서 계속되는 CALM SEA에 슬슬 풀려가는 듯합니다. ^^


 추석 준비로 바쁜 시기라고 생각되네요. 모쪼록 이번 한가위도 우리 식구들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길 멀리서 응원할게요. ^^ 아자아자~!!!!!


2011년 9월 6일,

대만 연안을 지나는 CS DAISY호에서,

둘째였습니다.

수평선을 넘어가며 하루 일과의 끝을 알리는 태양의 모습

주 1* :  M/V 와 M/T는 MOTOR VESSEL, 과 MOTOR TANKER의 약어로서 선박의 선종을 알리는 의미로 통상적으로 선명 앞에다 붙여서 쓰고 있다.


 주*2 :VLCC: VERY LARGE CRUDE CARRIER--초대형 유조선


 주*3 :PORT TO PORT--선박에서 좌현은 PORT SIDE이고 우현은 STARBOARD SIDE이다.

선박이 좁은 해역 등에서 마주치게 되었을 때 충돌 없이 안전하게 통과하기 위해 두 선박 모두 좌현대 좌현으로 통과하자는 약속을 이야기한 것임. 


또한 좌현의 항해등 색깔은 홍등이고 우현 항해등은 녹 등이므로, 위의 경우 RED TO RED로 표현할 수도 있으며 반대의 경우라면 GREEN TO GREEN으로 말하기도 한다.


국제충돌 예방법상 선박이 서로 마주 보고 지나쳐야 할 경우 통상적인 통항 방법은 좌현대 좌현이(우측 통항) 기본이지만, 안전한 통항을 위해 양선이 타협하여 우현대 우현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을 무조건 막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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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에게


 배들의 모습이 자주 나타나는 분주한 해역에서 당직 시간 내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참견까지 하는 꽤나 해 볼만한 경험의 멋진 항해 당직을 서느라 수고가 많았구나.


 네 이야기를 들어보며 문득 필리핀과 대만이 바다 위에 경계선을 긋고 있는 그곳 부근에서, 70년대의 어느 날 자신들이 타고 있던 배가 난파되어 구명정으로 옮겨 타고 있던 16명의 홍콩 선원들을 구조해 준 일이 떠오르는구나.


 그 배는 홍콩을 선적항으로 두고 선원들 역시 홍콩 선원으로서 타일랜드에서 케미컬을 선적하고 일본으로 가던 중에 그곳 바시 찬넬에 도착할 무렵 배안 선창 내로 유입되는 해수를 막을 수 없어 결국 퇴선명령을 내리고 구명정으로 옮겨 탔던 것이라 했다. 


 사고 원인은 싱가포르에서 타이랜드를 향해 항해 중이었을 때 천소를 스쳐 지나는 해난사고를 만났었고 타이랜드에 입항한 후, 선저를 위시한 관련된 모든 부위의 조사를 통하여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판단을 받았기에 예정했던 화물을 싣고 떠났던 것인데... 


배를 버리게 된 바시 찬넬 부근에 도착할 무렵 좀 심하게 쳐 오던 파도에 선체의 공 탱크 내로 갑자기 해수가 침입하면서 복원력을 가질 수 없게 되어 부득이하게 퇴선에 이른 것이라더구나. 


하지만 퇴선 후 그렇게나 많이 만난 부근을 지나던 배들이었건만 우리 배가 찾아오기 전 까지는 그 어떤 배도 응답을 하지 않은 채 멀어져 버리더란다. 


이른 새벽녘, 모선이 침몰해 버리기 전에 힘들게 구명정으로 옮겨 타며 날이 밝았고, 부근을 지나는 모든 배에게 온갖 방법의 SOS로 구조를 요청하다가 또다시 저물어 가는 어둠을 맞이 할 때까지도 지나치던 배들은 계속 나 몰라라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든 상황이었단다.


 점점 지쳐가며 조바심에 빠져들 무렵 어둠 속에 나타난 우리 배가 알았다는 응답을 해주더니 전타를 하며 자신들의 구명정으로 가까이 접근해 왔을 때 그 배 선원들은 이제야 살아나게 되었다는 기쁨에 젖게 되었다는 말을 구조당한 후 했는데 그때 그들의 모습은 축 늘어진 모습의 아주 지친 상태였지.


작은 구명정 옆으로 다가갈 무렵. 악명 높은 그 해역은 2미터 가까운 높이와 30미터가 넘는 긴 파장의 주름진 파도가 남아 있었지. 한참을 씨름하듯 진행한 그 배 선원의 구조 작업이 끝났음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시름 덜어내고 다시 항해에 복귀하려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슬그머니 나타난 일본 해상순시선이 자신들의 배에 옮겨 타겠느냐며 도와주겠다는 말을 걸어왔었지.


 당시 구조당한 CAPT. ROU YU MING 씨는 우리 배와 같이 항해하겠다며 그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더구나. 


중국계인 그 선장의 성씨가 盧 씨였었지. 그일 있은지 몇 달이 지난 후 마침 홍콩에 기항할 기회가 생겨서 육상에서 쉬고 있던 그 선장을 한번 더 만나기도 했었는데...... 벌써 40여 년 전 이야기로구나.


사실 바시 찬넬 부근은 계절풍 시즌이나 태풍 시즌이면 생각지 못 한 큰 바람이나 파도가 종종 달려들기를 즐기는 해역으로 소문난 곳이니 그 이름값을 한 모양이지만 나에겐 해난사고에서 구조자와 피구조자의 상반된 입장을 생각해 보게 한 잊지 못할 해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지. 


이제 그 바다를 어우르고 있는 아시아 대륙의 동남쪽 태평양에서 활의 둥근 호 모양으로 거의 북동진으로 움직이고 있는 커다란 조류- 흑조(黑潮) 일본말로 쿠로시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문득 일본 사람들이 그들의 말로 이름 붙여 놓은 사물이 그냥 세계적인 이름으로 굳어져 통용되는 현실을 만나게 되는구나. 잠깐 그 속을 짚어 보기로 하자. 


우리 같은 직업인이 자주 만나게 되는 쿠로시오를 포함해서, 쓰나미라는 말도 지진이나 해일이 날 때마다 나타나는 대표적인 일본 말 출신의 단어이지. 


그러다 보니 그들은 <일본해>라는 말이나 <다케시마>라는 말도 위의 단어들과 동등한 무게를 가지고 세계 속에 띄워져 자연스레 쓰이기를 바라는 음흉한 계획을 가지고 자꾸 세계 속에다 들먹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독도>나 <동해>라는 단어를 세계 속으로 널리 알리는 방법을 바꾸어서 동해/독도란 말을 듣기만 해도 누구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당연한 이름으로 인식시켜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알림 방법에서 문자만이 아니라 잘 디자인된 심벌화까지 만들어 널리 알린다면 그 이름이나 심벌을 볼 경우 세계의 어떤 사람들도 척하니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만들어 줄 터이니, 현재 동해나 독도에 대해 일본이란 집단이 음흉하게 감행하고 있는 계산된 수순에 약이 오르게 된 우리 한국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도 많이 치유되지 않을까? -아니 우리가 그들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 굳게 믿고 싶어 지는구나. 네 생각은 어떠냐?


이제부터 어선들의 출몰이 잦은 해역으로 접어들겠구나. 그러니 항해 당직이 피곤할 경우가 많을 텐데 조심, 또 조심하며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원한다.


집안 식구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너의 순조로운 항해를 응원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서울에서 아버지가. 2011.09.09


배안에서 맞이하는 추석이 되겠지만 몸과 맘 모두가 풍성해진 즐거운 명절로 잘 지내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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