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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12. 2019

천진 외항에 투묘했습니다


천진 외항에 투묘했습니다

어느새 본선은 얌전히 천진 항만 입구의 DAGUCOU SOUTH ANCHORAGE에 닻을 내리고 정박하고 있습니다.

뭐 여기까지의 오는 과정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한가하고 편안한 휴식이 되고 있는 셈이지만 어젯밤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아찔합니다.^^ 


 천진은 이미 두 번(한 번은 카오피디안)을 들락거렸고 어제로 세 번째지만 두 번은 실습항해사라는 책임이 별로 없는 입장에서 겪었으니 실질적으로는 어제가 처음이었던 셈이죠. 


 발해만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NAVTEX를 통해 금어 시즌이 끝났다는(하필 왜 우리가 지나는 날에!) 정보를 받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단단히 하고 있었습니다만 최악의 메너에 개미떼 군단을 연상시키는 중국 어선군의 출현은 순간적으로 '조기 연가'를 떠올리게 할 만큼 당황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관광객들에게는 장관이겠지만요) 6마일 레인지의 레이다에 빈틈없이 가득 찬 어선군... 뿐만 아니라 통항분리대 안에서(분명 차트에도 어로행위 금지라 표시되어 있음에도) 두 대가 한 그물을 끌며 역주행을 하는 모습에, 서치라이트까지 동원하고 기적을 쉴 새 없이 울리는데도 태연스럽게 선수를 모로 질러가는 모습까지...


쉴 새 없이 울려대는 CPA 0.5 MILE ALARM에 아예 AIS탐지 기능을 레이더에서 꺼버리고 발해만 입구를 돌파했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타수와 둘이서 그 아수라장을 돌파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랍니다. ㅠ.ㅜ


언젠가는, 앞으로는 수도 없이 겪게 될 일이겠지만 정말 중국이 싫어지는 이유 한 가지를 더 보탠 것 같아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합니다 


- 중국과 인도 인근에 가면 꼭 만나는 일이지만 VHF 16번 채널을 지들끼리 장시간 점유하고, 전화 노래방으로까지 만들어버리는 모습까지 - 정말 짜증이 샘처럼 솟아나는 특이한 경험도 또 해버렸네요. 


-_-+(검역관은 우현 쪽으로 수면상 1미터로 파일럿 라다를 준비해달라고 하더니 준비해놓은 라다를 지들이 타고 온 배로 들이받아서 아래쪽을 박살을 내버렸습니다. 그래 놓고 'SAFETY FIRST'라는 선문답을 하더라고요. -_-;;)


 그래 놓고도 일수 수금하듯이 본드 스토어를 털어가는 에이전트와 공무원들. 짜증 3종 세트를 어제부터 오늘까지 제대로 맛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앵커리지가 천국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네요. ^^ 


지금 내리는 비 때문에 작업이 늦어질 것이 확실한 것에 더더욱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뭐 용선주의 타는 가슴은 본선까지 달구는 중이지만요. ^^


 어젯밤은 그래도 휘영청 둥근달이 머리 위를 비춰줘서 추석 기분이 좀 들었는데 오늘 이곳 발해만은 오후 내내 지금까지 계속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모쪼록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는 태풍이 물러가고 밝은 달을 이번 추석에 만나시길 기원해보겠습니다. 식구들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2011년 9월 10일, 


천진 DAGUCOU SOUTH ANCHORAGE에서,

둘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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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 수목원에서 나비꽃을 만나서

 

 둘째에게


 우선 아슬아슬한 장면을 여러 번 보여주기도 하는 중국 항구 입항에 즈음하여 애를 쓴 보람대로 무사히 도착하여 발해만 안에다 투묘한 후 대기에 들었음을 축하한다. 


 사실 배를 탄다는 직업인으로 가장 기쁘고 흐뭇한 상황의 시간은 무사히 목적항에 도착한 후 안전한 투묘로 닻을 내려 주어 그 항차가 완수되었음을 당직자들 모두가 서로 축하해주며 브리지를 내려오는 순간이더구나.


 그럴 때 머릿속에 들어서는 그 항차를 완수하기 위해지나온 항해를 정리 경험한 모든 상황을 꼼꼼히 살피어 항해의 완성이 이루어진 결과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은 항해 내내 고생스러운 기억들이 클수록 반추되는 기쁨 역시 비례하여 커지는 것이었지.


 하지만 금어기가 끝나는 시즌에 중국에 입출항하게 될 경우에 경험하게 되는 무수한 중국 어선 떼들의 횡포는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더 무사 입항을 축하한다.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해 잠시도 눈을 레이더나 선체 주위로부터 떼지 못한 채 수시로 속력까지 조정해가며 입출항하는 그 피 말리는 듯 한 순간순간들의 움직임은 순발력과 정확한 판단을 요구하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경험이 축적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우리의 직업임을 명심하거라. 


그것은 조선 도중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에 밀려 포기하거나 멈칫거려서는 안 되며, 정확한 판단으로 행동거지를 도출했으면 그에 따른 단호한 결행을 이행하면서 이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 역시 빼먹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무사히 입항하여 이제 접안을 기다린다니 한숨 돌리는 기분 아래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접안할 날짜를 기다리거라.


네가 입항할 천진(텐진)항은 우리나라로 비교한다면 서울의 출입문인 인천항같이 중국에선 수도 북경의 출입구라 할 수 있는 항구로 허베이성(河北省)과 톈진(天津)에 접하여 있는 보하이 해 서쪽의 발해만 안에 있는 항구이지. 


 보하이만(渤海灣)은 랴오둥만(遼東灣), 라이저 우만(萊州灣)과 더불어 보하이(渤海) 내에 있는 3개의 만 가운데 하나이다.


어쨌거나 승선 중에 좀 힘든 상황이 앞에 나섰을 때 그걸 피하려고 하던가 아니면 아예 그 일에 주눅 들어 하선(조기 연가)부터 생각하면서 빠져나가려는 패턴은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일로 앞으로 네가 승선하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떠올리지 말아야 하는 생각이라 여겨지는구나.


배안에서 승선 중에 걸핏하면 하선을 앞 세우는 태도는 진짜로 배를 탈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발생했거나 누가 봐도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토로하고 내세워야 하는 일로서 평소 동료 및 승선하고 있는 배에 대한 의리상 결코 하지 말아야 하는 말임을 깊이 새겨두기를 바란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국의 역사를 배울 때 발해라는 국가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우리 민족의 나라로 배웠다. 따라서 랴오동 반도에 있는 달리엔(大連)에 처음 입항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풍물과 시내 가운데 도로 분리대에 있는 무궁화나무 까지 보며 좀 더 가깝다는 친근한 느낌도 받았었지.


하지만, 그 후 몇 번 더 다녀 본 발해 안의 항구에서 보하이라는 중국의 발음으로 통용되는 그곳의 풍물에서 역사 속의 우리 민족과는 좀 떨어진 다른 나라로 변신된 것을 느끼게 되었고, 중국인들이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보하이는 중국 변방에 세워진 중국이란 나라의 한 개 소국이니 결국 자신들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는 것에 뭐라 말하거나 생각할 틈이 없어 보이게 되어 있더구나.


하여간 그곳에서 너도 추석을 맞이할 것이고 우리도 추석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보름달을 볼 수 없는 추석이 되리란 기상청의 이야기가 맞을 것 같아 금년 추석은 구름 속의 추석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구나. 


건강하게 잘 지내거라. 또 연락 하마. 집에서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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