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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13. 2019

동해를 떠난 지 벌써 나흘이 넘고

나흘 뒤 싱가포르에 기항한 후, 아프리카를 향해 달릴 예정입니다.

서편에는 해가 지고 그 반대편에서는 비구름이 몰려오는 모습.

                      항해 중에 특히 열대지방으로 향하는 시기에는 숱하게 만나게 되는 광경이다. 



 동해를 떠난 지 벌써 나흘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배를 타면서 처음 들어간 우리나라라 기대도 많이 했지만 어느새 배에 익숙해져 버린 몸과 마음은 다른 나라, 다른 항구에 머물고 있던 때와 별다름 없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20시간의 외출 동안 집에도 잠깐 들러서(그야말로 꼭 찍고 돌아온 셈이지만) 식구들 얼굴을 오래간만에 만난 것으로 우리나라 기항의 즐거움을 맛본 셈이니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훨씬 좋았던 경험이었죠.


 나흘 뒤 싱가포르에 기항, 급유와 재보급을 받고 아프리카 서부의 앙골라로 직행하게 됩니다. 8,000 마일 정도의 거리이니 열심히 달려가도 25일이 걸리는 대장정이죠. 앙골라의 수도인 루안다에서 동해에서 실은 시멘트를 풀어주게 되는데 용선주 측의 설명을 들으니 무조건 열흘 이상 엥커링에 열흘 이상 작업이라는 무시무시한(?) 스케줄을 꺼내 주더라고요.


 가는데 40일, 머물러 있는 기간 20일 이상, 짐을 다 풀고 다음 목적지인 가봉까지 3일, 가봉에서 20일, 일본이나 중국으로 되돌아오는데 40여 일... 왕복에 4개월 내외가 걸리는 '지구 대장정'에 본선은 제대로 걸려든 듯합니다. ^^


 앙골라나 가봉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으니 아버지께서 좀 '검색의 힘'을 발휘해주세요. ^^

그 어느 때보다 이 메일에 대한 답장이 필요한 이유랍니다. ^^


출항하고 며칠간 까칠한 날씨가 본선을 두들기더니 사납다던 바쉬 채널부터 잠잠한 파도와 뜨거운 바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해에서 달고 왔던 감기(거의 유행병처럼 본선 선원들을 괴롭혔죠)도 더위에 날아가버리고 이젠 다시 맞이하는 여름만이 걱정거리로 남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바다에 최적화되는 시기라고 여겨지네요.


 짧은 메일이지만 이 정도로 제 근황을 알려드립니다. ^^

남지나해에 오늘은 배들도 많네요. ^^ 모든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2011년 10월 6일,

남지나해에서, 둘째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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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로 간다고?    2011년 10월 


 네가 동해항에 기항한 후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얼굴만 보고 다시 헤어져야 했던 일은 생각할수록 알싸한 아쉬움을 우리 가족 모두에게 남겨준 일이었다. 


 그러다가 따져 보니 그런 상봉과 이별의 모습은 내 지나간 생애에 바다로 나가 있을 때면 늘 상 해왔던 일이란 걸 새삼 눈치채며 허허 웃어버려야 했다.


 그렇듯 너를 바다로 내 보낸 다음 처음 맞이 한 집에서의 짧았던 상봉 시간을 흘려보낸 후, 나의 지나간 경우와 비교해보는 심정은 이렇다. 


 나는 그래도 국적선의 준 정기선을 탄 것 같은 생활이었기에 늦어도 몇 개월 만에는 집에 와서 다만 하루나 이틀 정도라도 지낼 수 있었는데, 너는 국적선이긴 하지만 부정기선으로서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는 집시 마냥 확실한 목적지도 세우지 못하고 세계를 상대로 떠돌이 하려고 이제 우리나라를 나선 셈이니 참으로 애달프다 할 수 있겠구나.


하나 이제 선상생활의 편리함은 어느 직업인의 생활보다도 앞서 있는 상황이니, 이가정성(離家庭性)의 아픔에만 너무 서러워하거나 애달파하지 말고 즐기거나 넉넉한 반전의 삶으로 살아보도록 하자꾸나. 


그런데 내 반평생의 생애에서 아프리카라면 남아공의 제 항구(리처드 베이, 더반, 포트엘리자베스, 이스트런던,, 케이프타운 살다나 베이)에는 기항해 봤지만 기타 아프리카 국가의 항구에는 직접 찾아가 본 경험이 없음에 뭐라 할 말이 없구나. 


그동안 내가 탔던 배들은 모두 파나막스 이상 거의 케이프 사이즈의 큰 배들이어서 그런 항구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게 큰 이유였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런 면에서 네가 지금 타고 있는 슈프라 막스급의 배는 세계 곳곳의 항구에 어지간하면 드나들 수 있는 맞춤형의 배이니 이런 배에 승선 중에 많은 것을 배우면서 대부분의 항해자들이 가기 쉽지 않은 고장에 들렸다는 이점을 살려가며 즐거운 추억의 기항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려무나.


이제 네가 부탁한 앙골라(루안다항), 와 가봉이란 나라를 인터넷에서 살펴서 알려준다. 이건 어디까지나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이야기이므로 실제 그곳을 찾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게 더욱 좋겠지만 하여간 작은 참조는 이룰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검색하여 붙여 놓기는 했지만 이것이 네가 알고 싶어 하는 선박 출입항에 따른 정확한 정보는 되지 못하기에 미흡한 맘이 많이 드는구나


그러므로 네가 입항한 후 잘 살펴보아서 다음에 그곳에 초행으로 입항하려는 선원들을 위한 기항지 정보(Port Information)를 만들어 봄이 어떻겠느냐?


 물론 이런 정보의 최종 취합이야 그 장소에 초행으로 입항하는 선장이 나서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너라도 정보를 수집하여 차후 너의 항해와 정박에 참조할 수 있는 정보로 만들어 놓아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너의 선원으로서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로 믿어진다. 열심히 사진 찍고 필요한 메모를 기록하여 다음을 기약하도록 부탁한다.


 이 부탁은 내가 승선 생활을 매듭지을 무렵 뒤돌아 보며 느꼈던 가장 아쉬운 일이 바로 그런 점이었음을 고백하게끔 만드는구나. 


 네가 나와 같은 후회를 재탕하지 않으려면 필히 유념하여 실행해 주기를 꼭 바라는 아비의 아니 선배 해기사로서의 부탁이다.  


 사실 말하긴 쉽지만 실행하려면 어려운 일이 바로 이 문제임을 다시금 중언부언하며 언제나 안전 운항에 곁들인 건강 유지를 바란다-. 


 우리 집 온 집안 식구들은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니 집 걱정은 붙들어 매 두거라.


집에서 아버지가 대표로 사랑하는 둘째에게 소식 전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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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


앙골라 : 아프리카 서남부의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정식 명칭은 앙골라 공화국(Republic of Angola)이며, 대서양 연안 해안선의 길이는 1600㎞에 달한다. 면적은 124만 6,700㎢, 인구는 1,253만 1,357명(2008년 현재)이며, 수도는 루안다(Luanda)이다.


종족 구성은 오빔 분두족이 38%, 킴 분두족이 25%, 바콩고족이 13%, 기타 부족이 3% 정도이다. 공용어는 포르투갈 어이며, 토착 부족이 제각기 고유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종교는 인구의 47%가 토착종교를 고수하고 있으며, 가톨릭교가 38%, 개신교가 15% 정도이다.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성이며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강우량이 많다. 석유·다이아몬드·구리 등 지하자원은 풍부하지만 내전으로 산업활동이 위축되어 개발되지 못하고 있어, 아직도 주요 산업은 커피·매화·설탕·목재 등의 농업이다.


2007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613억 5,600달러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3,757달러이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220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 앙골라 완전 독립 연맹(UNITA) 등 28개 정당이 있다.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포르투갈인들이 15세기 말에 정착한 이래 앙골라는 계속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존속하다가 1951년 포르투갈의 해외영토로 편입되었다. 1956년부터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앙골라 전면 독립 연합(UNITA)·앙골라 민족해방전선(FNLA) 등이 조직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한 결과, 1975년 11월 11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여 앙골라 인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출범부터 무장 게릴라 투쟁을 하던 분파 간에 내전이 격화되었으나, 결국 앙골라 인민해방운동 측이 쿠바의 도움으로 승리하게 되었다. 독립 당시의 헌법에 따라 앙골라 인민해방운동·노동당(MPLA·PT)의 일당독재에 의한 사회주의 정책이 추진되었으나, 1991년 이후 다당제 민주정권으로의 전환이 추진되었다. 1979년 9월에 집권한 산토스(Santos) 대통령이 1992년 9월 재선 되어 집권하고 있다.


대외정책은 좌경 중립의 비동맹 중립외교를 펴고 있으며, 1976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한편 반정부 세력인 앙골라 전면 독립 연합(UNITA)과 정부군 간의 계속된 내전은 국제문제로 비화되었고, 양측 간 중개를 위한 UN 등 국제사회의 노력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앙골라와 국교를 맺지 않고 있다가 1992년 1월 6일에 외교관계를 맺고, 2007년 현재 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1993년 7월 경제과학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2001년 2월에는 외교부 간 협력의정서와 경제협력 증진에 관한 양해각서를 교환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앙골라 수출액은 2007년 현재 1억 7,366만 달러로 주종목은 자동차와 전기기기이며, 수입액은 3억 4,258만 달러로 주종목은 광물과 연료 등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45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7년 현재 현대중공업·삼성물산·대우조선·남광토건 등이 진출해 있고, 11명의 교민과 73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1975년 11월 16일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공관도 설치하였으나 2008년 현재 주 콩고 민주공화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1977년 5월에는 과학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1979년 8월에는 문화협력 협정, 1980년 12월에는 무역 협정, 1981년 10월에는 하였으며, 북한의 농업기술자가 상주하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이상의 상식적인 상황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본 내용을첨부한다. 항해 정박을 위한 직접적인 정보는 본선에 비치되어 있는 PORT ENTRY INFORMATION 책자를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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