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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14. 2019

앙골라의 루안다, 이틀 거리에 두고

앙골라의 루안다를 이틀 거리에 두고

어느새 목적지 앙골라 루안다항에 이틀 거리에 접근하고 있는 지금, 본선은 꽤 높은 스웰과 바람을 받고 있지만 꿋꿋하게 북진 중입니다. 


지난번 인도양에서는 고생을 좀 했었지만 이번 바람과 스웰은 선미 방향에서 선수 쪽으로 흘러주고 있어서 오히려 선속에 큰 보탬이 되고 있는 상황이죠.


 다만 반대편에서 희망봉 방향으로 내려가는 배들은 정말 '꼴랑 꼴랑'이라는 말이 제대로 어울리도록 열심히 흔들리며 고생 좀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꽤 오랜 시간 웨이팅 하고 접안할 거라는 애초의 바람과 달리 3일 도착, 하루 엥커링 후 4일 접안이라는 스캐쥴을 받고 나니 왠지 맥이 쭉 빠지고 있습니다. 


 이번 항해 중에 밀린 숙제(?)들을 모두 끝내 놓기는 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뱃사람들, 특히 항해사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투묘 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하루 앵커링은 좀 아쉬운 감이 있네요. 


 다만, 접안 후 하역 기간이 열흘 넘게 걸릴 거라는 소식에 많은 선원들이 상륙 생각에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위안 삼고 있습니다. 저는 접안 때가 가장 피곤하지만 그래도 제 생각만 하면 좀 그렇겠죠? ^^


남아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렇듯 '접대'문제가 삼항사에게는 가장 큰 숙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한 달 넘는 항해로 그나마 가득 채워두었던 본드 스토어도 바닥이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만(사실 3000불 한도는 너무 모자라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 상황에서도 이것저것 빼앗길 수 없는 물품 몇 가지를 챙겨서 아무도 모를 공간에 숨겨두었습니다. 


 염치도 없고, 근성 또한 거지근성으로 무장한 아프리카 공무원들에게 귀중한 우리의 선용품을 속절없이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입항했던 녀석의 소식을 들으니 공무원부터 포맨까지 모두들 손을 내미는 그들의 거지근성에 그야말로 학을 떼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세계 각지에서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항만국 통제의 장벽이 아프리카에서는 순전히 금품을 우려내는 방법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전하 더군요.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늘어날 듯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간만의 접안이니만큼 긍정적으로, 즐겁게 열흘간을 보내고 싶은 바람입니다.


 사항은 아직 스케줄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봉의 OWENDO에서 망간을 싣고 유럽으로 향할 확률이 가장 높다는 소식입니다. 애초에 극동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환호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지 다들 이 소식 앞에서는 맥 빠져하더라고요. 


 AZALEA는 필리핀에서 광양으로, BRAVE는 필리핀에서 중국으로 CHAMP는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으로 향한다는 소식이지만 유독 본선만 WORLD WIDE에 어울리는 항로로 신나게 돌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동안 돈 거리만으로도 충분하니 제발 다시 극동, 그것도 동해나 광양으로 갈 수 있으면 하고 속으로 바라보는 중이죠. 


어찌 되었건 이번 차터러가 마무리되면 집에 갈 시간이 박두하게 될 터이니 극동이던 아니던 사실 별 차이는 없겠네요. ^^


막내는 유럽투어(?)를 떠났겠네요. 녀석에게 부탁해두었던 일들은 마무리해두고 나간 건지 솔직히 걱정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생애 처음으로 떠나는 유럽행인만큼 즐겁게 하는 일 잘 마치고 돌아오길 바라봅니다. 


 형은 지난번 메일에서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모양이던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대신 좀 전해주세요. 할머니는 고모도 오셔서 목소리도 힘이 들어가 계시던 느낌이었는데 모쪼록 계속 즐겁고 건강하시길 바라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건강하고 즐겁게 11월 시작하고 계시길 아울러 바라봅니다. ^^ 다시 메일 보낼게요. ^^ 아자아자 아자~!!!!


2011년 11월 1일,

밤 당직을 준비하며 CS DAISY호 제 방에서. 둘째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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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우리 집 담벼락에 그려 넣어진 그림. 



 둘째야! 소식 반갑구나. 2011.11.03


오랜 항해 끝에 이제 서서히 육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좀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선내를 지배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구나.


게다가 찾아가는 곳이 난생처음 만나게 되는 낯선 항구이라 모든 게 아리송한 걱정을 가지게 할 터이고-


더하여 곧 찾아 올 연가에 대한 기대 역시 부풀어지고 있음도 눈치채게 하니 무언가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구나. 우선은 너무 흥분하여 일을 그르치지 말고 바쁠수록 차분하게 모든 일에 임하라는 한마디 말을 덧붙이고 싶구나.


그리고 선내 접대 문제에선 가장 앞에 선 돌격대장 같은 네 입장이라 걱정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 역시 차분한 대처가 필요한 일임을 명심하거라.


 혹시 너의 열혈적인 기질이나 태도가 은근히 배어나는 응대로 인해 상대방의 심기를 그르치기라도 한다면 그 여파가 어쩔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 역시 너를 포함한 너희 배 선원들인 점도 잊어서는 안 되겠지.


 결국 그 일이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와 이해 협조 같은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되어 이루어지는 일이라는데 결론을 두면서 해결 역시 그에 따라서 물결 흐르는 대로 나가야 된다는 원초적인 말 밖에 해줄 게 없구나.


이렇게 접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처음으로 배를 타려고 나섰던 1960년대의 우리나라의 통선장 상황이 주마등의 그림처럼 떠오르는구나.


 당시는 해운공사에 속해있던 몇 척의 배가 우리나라 전 선박의 총톤수를 채우고 있던 시절이었으며, 이제 겨우 군소 해운회사가 한두 척의 배를 가지고 해운을 시작하려던 세월이었지.


2년간의 군소집 기간(현재의 NROTC)을 마치고 승선한 해운공사의 선박인 제주호에서 3 항사로 근무하며 처음 만났던 입출항 수속을 맡아하던 관리들의 너무나 기고만장하고 고답적으로 보였던 태도가 지금도 마음속에 앙금으로 남아있는 것 같구나.


 요즘도 흔히 만나게 되는 출입항에 관련된 후진국 공무원들의 모습 속에서 비교되는 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아니 그 보다도 더욱 쪼잔하고 얄밉게 느껴진 모습까지도 만날 수 있었다고 여겨지는구나.


세상이 그만큼 발전한 세월 속에 만나게 되는 현실의 후진국 관리들의 태도가 전의 우리네 관리들과 다를 바 없겠지만 그만큼 발전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듯 그들이 저지르는 비리-선원들에 대한 무시와 물건 빼앗기 등등-도 또한 더욱 교묘하고 악랄해진 느낌 역시 더해지는 현실이다.


그들이 이렇듯 뻐기며 내지를 수 있는 힘(?)-부패한 권력-의 원천은 각 나라가 보유한 법을 등에 진 공권력이다. 결국 부패한 공권력에 당하는 우리네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으로 체념하며 그 피해나 최소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접대로서 해결하게 되는 현실이 야속할 뿐이겠지만.


<아! 해 다르고 어! 해서 다를 수밖에 없는> 대인 관계가 가장 앞장서는 일이기에, 부드럽게는 하되 비굴해서도 안되며 그런 강온의 감정처리를 네 스스로 깨달아가며 접대의 길을 터득해 나가길 바란다. 


다음에 선적할 화물이 망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에 그것도 유럽으로 들어가는 화물이라면 모든 면에 주의를 충분히 하면서 선적/운송/양하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고가의 희토류 광물자원이므로 선적 전후에 지킬 일이나, 선적 중 주의사항, 그리고 선적/양하량에 유념하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전에 망간을 싣고 겪어 본 중국 측 바이어의 태도도 일반 철광석 같은 화물과는 비교가 안 되는 까다로운 광경을 연출하는 걸 봤기에 선적 전후와 운송 중 주의 사항에도 각별히 유념하여 취급하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요는 송수 화주가 요청하는 모든 사항에 열심히 부합하도록 일해주면 되는 것이겠지.


회사의 자매선 A, B, C호가 운항하고 있는 해역이 너의 배인 D호와는 다르게 바람직한 항로를 다닌다고 너무 부러워할 건 없다고 본다. 


세상사 <새옹지마>의 진리가 새씨 노인네가 살던 그 시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아직도 전해지는 진리 같이, 너의 배가 언제 다른 자매선을 제치고 바람직하고 신나는 항로에 들어설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느냐. 


현재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가다 보면 어느새 그럴듯하고 멋진 환경에 들어선 것을 알게 될 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자는 이야기이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기로 안녕! 한다. 아프리카 그곳에서 새로 보고 만나는 상황에서 네 앞으로의 생애에 보탬이 되는 그 무엇을 찾아보도록 하자꾸나!


ps:우리 집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은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프로작가의 그림이란다. 막내가 모든 걸 준비하여 실행한 그림인데, 아직 남아있는 담벼락에 어떤 그림을 더 그려 넣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게 요즘 일과이다.  


 집에서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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