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신 조선소 전경 (현대비나신 인터넷 사이트에서 퍼옴
이곳에 입항한 후부터 미적거리다가 결국은 하지 못했던 새벽 운동을 오늘은 한번 해보리라 작정하고 좀 늦은 시간이 되긴 했지만 5시 40분에 배의 현문 사다리를 내려섰다.
다만 며칠이라도 매일같이 운동삼아 걷는 코스를 정하기 위해 조선소 구내의 구석을 살펴보며 걷기 시작한 것이다.
부두에서 곧바로 조선소의 경계선까지 가보니 담장으로 구분된 마을과는 개구리가 우는 작은 습지를 끼고 건너다보이게 떨어져 있었다.
처음 이곳에 조선소가 들어섰을 때는 동네의 주민들도 포함되어 있음직 한 좀도둑들이 극성을 부렸단다.
그 임시 철조망을 쉽게 넘어와 눈에 보이는 기자재들을 마구 해체하여 훔쳐가는 일도 많았다고 하였기에 그 담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미 그런 일은 할 수 없게 담장들은 철저히 보강되어 있어 개구멍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보인다.
뒤돌아 방향을 틀어 이번에는 바다를 매립하여 나가는 끝단까지 가기로 한다.
매립지 가운데 아직 남아 있는 바닷물의 색깔을 멀리서 보니 대부분 진청색인데 한쪽에 연초록의 에메랄드 색조를 띠고 있는 곳이 깨끗한 바다를 느끼게 하여 호감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황토로 된 매립토의 흙이 물에 풀리어, 점점 잠식되어 가는 매립지 내에 남아있는 진청색 바닷물과 섞이며 색깔을 희석해 주어서 나타난 현상이다.
멀리서 보기에는 마치 맑은 물감이 서로 어울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색을 연출한 모습이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체로 에메랄드 빛 연초록의 밝은 바다 색깔은 산호와 함께하는 열대의 얕은 산호초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에 여기 그런 산호의 군락이라도 있어서인가? 했던 일말의 기대는 그대로 어그러졌다.
설사 산호의 군락이 있었다 해도 이미 매립으로 사라져가는 상황이니 차라리 아닌 것이 훨씬 나은 것이겠지만.
허허로운 눈길을 매립지 끝단 바깥쪽 바다 위로 보내었다.
마침 출근하는 모습의 현지인들로 가득 찬 기다란 배가 빠른 속력으로 나타나더니 나와는 30 여 미터쯤 떨어진 바다 위까지 접근하며 지나친다.
그런데 타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좁고 기다란 배에서 앞쪽을 향해 한 줄로 앉은 눈길이 모일 곳은 당연히 비슷한 한 곳일 것이고, 마침 그런 곳에 내가 서 있기에 쳐다보는 것이리라.
마치 사열하는 기분이 들도록 그들의 눈동자는 계속 나에게 고정시키고 있어 배의 움직임에 따라 그들의 목도 같이 돌아주기까지 한다.
날이 밝으며 구름 속에 숨어 있던, 떠 오른 아침 햇 빛이 구름을 헤치며 슬슬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하는 배경 때문에, 달리는 그 배와 사람들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본다. 문득 그런 내 얼굴 눈가의 표정이 미안해져서 손을 들어 아는 체하며 흔들어 줬다.
열대의 더위가 태양의 등장과 함께 소문도 없이 옆으로 다가오니, 별로 힘들게 뛰거나 걸은 것도 아니건만 저절로 땀이 솟아나서 이마를 점령하며 흘러 넘치기까지 한다.
이제는 조선소 안쪽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있는 창고에는 도난 방지를 위한 조치로 묶거나 잠가둔 여러 가지 장치가 다른 독크 야드와는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배로 돌아오는 길로 들어섰다. 어디선가 여자들의 떠드는 음성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조선소 내에 웬? 여자들이? 하는 시선으로 돌아본 곳에는 월남인 근로자들의 간이식당에서 아침식사 장만을 하고 있는 여자들이 저희들끼리 뭐라고 이야기하며 부산을 떠는소리였다.
우리 배의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7시 10분이 지나고 있다. 한 시간 반 가량의 시간을 들여서 도크를 돌아본 것이다.
배로 올라오니 도크에 들어온 우리 배 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아침 시간부터 회사의 공무감독이 조선소 측에다 독촉과 항의하는 이야기를 한바탕 진행하고 있다.
이윽고 미진한 점을 보강하기 위해 떠나는 출항 계획을 7월 1일에서 7월 3일로 이틀 늦추기로 합의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