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신 도크. 담장 바깥쪽의 수풀 속에 마을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사진은 인터넷 현대 비나신 조선소 사이트에서 퍼옴)
이발을 하러 조선소 뒷동네를 찾아 나섰다.
조선소 정문을 나설 때면 저마다 자기의 오토바이를 타라고 대들 듯이 밀고 당기는 자가용 오토바이 운전수들의 공세가 있는 데, 오늘은 조선소의 차를 타고 나가기 때문에 그런 번잡이 없어서 좋았다.
허름한 어촌의 한적한 동네였던 이곳은 조선소가 들어서고 나서 조금씩 발전해가며 자연스레 영악스러워져 가는, 단계에 들어서 있어 장사치들이 차차 득세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가는 그런 마을이다.
길옆에 있는 이발소를 찾아들었다. 별로 밝지 못 한 형광등 아래에서 방금 머리를 깎고 면도를 끝낸 후 귀지 청소로 느긋하니 눈을 감고 있는 청년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곳 이발소의 특별한 서비스 중의 한 가지가 바로 귀지 청소이다. 민들레 꽃 씨의 바람 날개를 닮은 보드라운 낙하산 같고 동그란 불꽃놀이 문양마저 빼닮은 귀지 떨이개를 귓속 깊이 넣어 후비고 비벼주며 귀지를 털어내는 서비스이다.
지금 그 귀지 청소를 마지막으로 하면서 이발의 끝맺음을 하고 있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마침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조발을 담당한 아가씨가 이발기와 가위를 양손에 나눠 들고 다가와서 펼치는 날렵한 손놀림에 감탄하는 중에 순식간에 내 머리카락도 툭툭 베어져 나오고 있다. 어느새 옆면이 바짝 치켜서 깎여진 변환된 모습의 내 얼굴이 길거리의 어두움을 배경 삼은 거울 속에서 스스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서비스를 계속하여 오래 받다가 베이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기분이 찜찜한 면도는 뒷면도만 하고 더 이상의 서비스는 사절한 후 10,000동(우리 돈 약 1천 원)의 돈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옆에서 흥얼거리며 귀지 청소를 받고 있던 반바지 차림에 샌들을 끌고 있는 청년은 이곳 말과 한국말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도 이곳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청년으로 짐작된다.
벽면에 붙어있는 그림들은 전형적인 이발소 그림과 잡지에서 오려내었음직한 여러 가지 머리 모양을 낸 남녀들의 얼굴 모습들로 꽉 차있다.
거울 앞 탁자에 놓여있는 화장품들은 조잡한 병 모양과 인쇄의 질도 떨어지는 라벨이 붙여진 이곳의 상품들이었다.
특이하게 우리나라에서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제 화장수의 병들이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열병식이라도 베풀어 주려는 듯 죽 늘어 세워둔 모습이 이채롭다. 한국인 고객들이 지참했던 화장품의 빈병을 거두어 진열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면도를 하면서도 연신 땀띠약 같은 분을 칠해주고 또 닦아주는 서비스가 있는데 어쩐지 불결해 보임은, 내가 결코 깔끔을 떠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로 불결해 보이는 느낌이다. 촉수 낮은 형광등 아래의 어두운 조명 때문에 더욱 그런 거 같다.
서둘러 조발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어두운 길 위에는 방금 지나간 살수차가 뿜어준 물로 축축이 젖어 들은 시원한 땅 냄새가 코끝에 진하게 스며들며 남국의 향기를 폐 속 가득히 채워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