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Apr 16. 2019

앙골라 루안다에서

 도시 곳곳에 30층이 훌쩍 넘는 건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르완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산업화'의 그림자가 그 건물의 높이만큼 드리워져 보입니다.


 부정적인 시각일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있던 배들과 교신하다 보니 상륙했다가 당한 이런저런 봉변들과 구걸하는 이들의 물결이 도시 주변에 넘실댄다는 이야기들만 떠들더군요. 예전, 우리나라도 겪었을, 하지만 지금은 깨끗이 잊어버린 그런 악몽들이 아직도 이곳에서는 진행형입니다. 


저희가 접안한 시멘트 부두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TIDE는 고저차가 1미터 정도밖에 나지 않지만 조류가 강해서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세 배가 부두에서 떨어지는 봉변을 만나게 된다더군요. 


 사막 기후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해안사구의 모습, 특히 그 꼭대기에 자리한 바오바브나무를 보니 이곳이 아프리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 눈에는 거대한 브로콜리처럼 보이는 바오바브나무의 모습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처럼 별을 부숴버릴 정도로 엄청나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볼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 

 

                                    이 주변에서 볼 것이라고는 저 나무 하나뿐인 듯싶습니다만. 

 Port Luanda, Angola

Photo By Skyraider  2011.11



  어느새 접안 보름째에 접어듭니다만 49,000톤의 짐 중 30,000톤밖에 풀지 못했습니다.

딱 봐도 상태 안 좋아 보이는 컨베이어가 매일 문제를 일으키는 데다 우기에 접어든 앙골라의 날씨 탓에 짐을 풀만 하면 내리는 비에 방해를 받고 있죠. 


 이렇듯 하역작업이 지지부진하여 일이 바삐 진행되는 다른 포트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지내기로 한다면 심신 모두가 편한 곳이 되겠지만, 상륙이 자유로운 깔끔한 포트도 아니고 부식 보급도 안 되는 곳인 데다, 싣고 온 화물조차 시멘트이고 보니 사방팔방이 죄다 먼지 구덩이로 다들 어서어서 출항하기만을 기다리는 심정들입니다. 먼지 탓에 사진기를 꺼내기가 두려운 것도 좀 그렇고요.ㅎㅎㅎ 


 접안 중의 2 당직제로 돌아가는 일상 탓에 항해 때보다 심적으로는 더 많이 피곤하고, 잠을 자는 시간도 불규칙하게 되어 여기저기 탈이 나는 곳이 생기고 있습니다. 첨에 몇몇 선원들이 피부 트러블을 호소했었는데 저 역시도 시멘트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피부발진이 일어나서 그 가려움증으로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처음 지은 집에 들어간 이들이 호소하는 새집증후군과 흡사해 보이는(어쩌면 동일한)이 증상에 대해 준비된 약품이라고는 가려움증을 완화시켜주는 연고제뿐이라 빨리 짐 풀고 나가기만을 더더욱 기다리게 됩니다. 


 긴 하역작업이 좋은 것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좋은 화물이나 항만의 사정이 받쳐주어야 좋은 것이지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서는 몸은 몸대로 부대끼고 스트레스는 또 스트레스로 받는 악순환의 연속이더라고요. 정말 딱 죽을 지경입니다. ㅠ.ㅜ


 저만 가려움증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기관장님부터 이항사에 갑판장까지... 거기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갑판 부원들까지 가려움증의 대열에 들어섰으니 이쯤 되면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보이네요. 


예전 TV에서 시멘트의 폐해에 대해 고발한 고발성 프로그램 속에서 국내 업체들이 석회석뿐만 아니라 폐타이어와 아스팔트까지 동원해서 시멘트의 양을 늘이는 행태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새삼 그 악영향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중입니다. -_-;;


 그나마 JETTY주변에 어선들이 출몰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 하루에 한 마리는 꼭 대형 도미가 잡혀 올라와 미식가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있어서(어젯밤에도 OS가 1미터 가까이 되는 참돔을 한 시간 가까이의 실랑이 끝에 잡아 올렸습니다. 조리장이 회를 만들어 내놓고 탕까지 끓여내서 맛나게 한 끼 식사를 마칠 수 있었죠) 그나마 무료하고 짜증스러운 상황에 청량제가 되고 있죠. 


손바닥 둘을 합친듯한 크기의 고등어는 거의 한 시간이면 큰 페인트 캔 하나를 채울 정도로 올라오니 낚시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괜찮은 포인트라고 낚시광 기관장님이 입에 침이 마르시더군요. 


우리나라의 고등어와 정말 완전 판박이로 똑같이 생긴 탓에 물고기만 보면 여기가 아프리카인지 우리나라인지 헷갈릴 정도랍니다. ^^


 아직도 용선주는 차항에 대한 정보를 보내주지 않아서(정보를 보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들도 아직 확정된 스케줄이 안 나와서 그런 것이겠지만요)다들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년 10월에 처녀항해를 시작한 배라 1년 계약으로 승선했던 인도네시아 선원들 전원이 다음 포트에서 하선을 진행하게 되고 사관들의 경우도 일항사부터 저, 지난 항차에 승선한 삼 기사를 제외한 기관사 전원이 두 달 사이에 하선을 진행하기로 되어있어 이곳의 일이 마무리되고 찾아갈 다음 포트가 대부분의 선원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곳이 될 예정이거든요.


 처음에는 이틀거리에 자리한 가봉의 OWENDO가 차 항의 목적지가 될 것으로 알려주더니 그것이 어그러졌는지 브라질을 들러 극동을 향하는 코스도 고려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브라질에서 극동을 향하는 코스가 가장 해피한 셈이죠. ^^ 브라질까지 가는데 12일, 웨이팅과 선적작업 10일, 브라질에서 극동으로 되돌아오는데 40여 일... 정확히 두 달이 소요되는 장기 항차... 이것이 마무리될 쯤이면 바로 귀국행에 오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올해는 겨울을 서울에서 맞이할 수 있을 듯해서 몹시 기대됩니다. ^^ 지난 3년 동안 겨울은 구경도 못하고 더운 곳만 주야장천 돌아다녔는데.. 이번에 귀국하면 그동안 벼르던 제주도 올레길 도보 종단도 시도할 생각이죠. ^^ 청춘사업도 이번에야말로 가부간 결정을 낼 생각입니다. 여의치 않으면 지인들이 시켜준다는 '선'도 볼 생각이죠. 


요즘 2항사 업무를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실항사 초기에 잠깐 배우고 일 년이 넘도록 잊고 살다 다시 배우려니 이것저것 헷갈리고 모르고 있던 부분도 왕왕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집에 돌아가면 이것 때문에라도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게 될 듯싶어요.


 아젤리아의 김 OO 일항사도 봄까지 푹 쉴 거라며 부산에 한 번 내려오라고 전화까지 해주셨던데...


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하려면 정말 바쁜 휴가기간이 될 듯싶습니다. ^^ 


그래도 여전히 배에 묶인 몸이니 아직은 그저 생각뿐이지만요.


오늘은 여기까지 조금 긴 메일을 적어봤습니다. ^^ 


모쪼록 추위가 닥쳐오는 서울의 환절기를 우리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넘을 수 있길 기원하며.


또 컨베이어 벨트가 고장 나서 26시간째 작업이 안되고 있는 앙골라 루안다항에서, 둘째였습니다.

2011년 11월 18일, 

------------------------------------------------------------------


 둘째야!                                       2011.11.19


 네 눈에 들어서는 모든 사항을 그대로 적어 보낸 편지를 받아 놓고 보니 마치 내가 그 자리에 너와 같이 있는 듯한 마음이 드는구나.


 지지부진한 하역 작업의 진행에다가 짐 풀기가 재개되면 휘날리기 시작하는 시멘트 가루로 숨쉬기조차 빡빡한 환경에서 이 모든 작업 상황을 살피며 진행해야 하는 갑판사관 일의 어려움을 은근히 비쳐 보이는 내용 또한 이해가 가는 모습이로구나. 그리고 이 모든 네 일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겠지.


 하나 모든 일의 진행은 대처하는 사람의 생각하기 나름으로 어찌 받아들이냐에 따라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될 수 있는 거라 느껴본다.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처음으로 상선에 승선 근무를 시작한 무렵 타일랜드의 방콕에 기항했을 때의 추억이 새삼 떠오르는구나.


 내가 승선했던 3,000톤급 전시 표준선이었던 제주호는 당시 우리나라 해운 형편으론 큰 축에 드는 외항선으로 동남아를 열심히 돌아다니던 정기화물선으로 방콕에서 싣던 화물은 주로 농산물이었지.


  그 날밤은 무더운 열대 역의 후덥지근한 밤으로 각창별로 싣는 짐이 다른 좀은 까다로운 하역작업의 진행을 살피기 위해 비 오듯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갑판을 누벼야 했었지. 사실 아빠의 땀 흘림은 정평이 나 있는 내 생리작용이긴 했지만...


 어쨌건 그렇게 열심히 일한 적은 없었다고 느껴질 만큼 다른 아무런 사심 없이 당직시간 다웁 게 행동하는데 빠져 있었다고 말할 수 있던 그 날이었지. 그도 그럴 것이 군 생활의 생체 리듬이 아직도 남아 있는 상태에서 사회에 첫발을 디딘 각오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임하리라는 각오를 다져야 했기에 그런 열심한 태도로 갑판을 누비고 다녔던 것 같구나.


 어느새 3 항사 당직이 끝날 시간인 밤 12시가 다 되어 갈 무렵 선장님이 나를 찾아오시더니 당직 끝나는 대로 외출할 준비를 하고 기다리라는 명령을 하시더구나. 


  당시 하늘 같아 보이던 선장님께서 직접 오시어 함께 외출할 터이니 준비하라는 말을 하였으니 그냥 황송한 마음에 허둥거리긴 했지만 어찌어찌 외출 준비는 끝내고 기다렸었지.


 선장님이 방에서 내려오시더니 나를 옆에 세우고 나란히 걸어서 부두가 앞의 작은 스낵 바로 들어서시더구나. 찬 맥주를 한잔씩 시켜 놓고 우선 목을 축일 때쯤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건성으로 들리게끔 선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경청하느라고 신경을 썼었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갑판을 순찰하는 내 당직에 임한 태도를 칭찬해주시며 앞으로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라는 말이 요지였지만, 그 순간 나는 나를 알아주는 윗사람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를 순수하게 생각하며, 앞으로 어떤 상사가 내 위에 오더라도 똑같은 생각을 나에 대해 갖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던 것 같구나.


 한 밤 중의 그 미팅이 있은 후 나의 그 배에서의 생활은 그냥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 같은 기억으로 요지음의 추억은 남아있단다. 막말로 내 상선 생활이 이일을 스타트로 오늘날까지도 무사히 이어져 올 수 있게 한 계기로 주어졌다는 믿음이 드는구나. 그야말로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이야기이겠지.


 세상의 모든 일은 정반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부정적인 反面만을 앞세울게 아니라 어쩔 때는 뒤로 살짝 숨어 있는 正面까지 찾아내 보는 긍정적인 태도로 생활하는 게 바람직하고 유익한 일이란 걸 덧 붙이고 싶어 중언부언하는 내 모습을 보이는 것 같구나. 아빠 나이를 생각해서 이해해라.


 그리고 때가 되어 하선하는 다른 동료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너도 집에 가고파 하는 마음이 일더라도 네게 주어진 계약된 하선 날까지는 동요 없이 선상생활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이런 태도는 승선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란다. 사실 가깝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조차 한정되어 있는 선상 생활에서 그 분위기를 떠난 생활을 찾게 된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하지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더욱 큰 어려움을 가중시키게 되는 것이란다. 


 하지만 그렇게 중도 하선할 경우에 받아야 하는 불이익은 여러 면에서 많을 수밖에 없단다. 하루라도 빨리 윗 직급으로 진급해야 하는 네 나이와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밑져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점잖게 기다리는 모습을 갖추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란다.


 갑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피부 트러블은 시멘트 가루와의 접촉이 주원인임이 틀림없어 보이는구나. 그러니 첫 번째로 할 일은 시멘트 가루와의 접촉을 될수록 막는 것이란다.


 갑판으로 나갈 때는 일차적으로 시멘트에 노출을 최대로 줄이고, 조금이라도 묻었을 경우 즉시 씻어 내주는 일을 하며, 피부를 항상 뽀송뽀송하게 유지하도록 하고, 피부 트러블이 생겼을 때는 연고를 발라주고 될수록 건조하게 유지하는 게 좋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아픈 사람 모두들 그곳을 떠나게 되면 나아질 것이라 믿어진다.


 어서 빨리 차항이 결정되어 새로운 항차에 대한 부푼 기대가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도록 되기를 기원해며 오늘의 회신 여기서 줄이겠다.


 집안 식구 모두 건강하며 막내는 네가 부탁한 일 모두 잘 처리하였으며, 지금은 대만을 거쳐 수일 내로 홍콩으로 갈 예정을 갖고 있단다. 


 서울 집에서 아버지가

매거진의 이전글 포트 엘리자베스 남방 45마일 해상을 지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