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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17. 2019

루안다에서 보고들은 소식

우리 집 대문 안에 늦게 열린 호박.

                                                   

 루안다 항에서 보고 들은 소식


어느새 배를 떼고 떠나기로 되어있던 날이 되었지만 여전히 짐은 10000톤가량 남아 기약 없이 늘어지는 스케줄만 한탄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라는 곳이(남아공을 제외하고는) 예정대로 일이 마무리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애초에 알고 있었지만 입항하고 20일이 지나는 지금까지 여전히 작업 중이라는 사실은 여기가 아프리카가 아니라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같은 곳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늘여주고 있네요. 


 다들 긴 접안에 피곤하고 상륙도 안 되는 상황에 투덜거리며 지내다 요즘은 그런 푸념도 거의 잦아들어갑니다. 거의 포기하고 끝나는 날만 기다리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죠.


 요즘 세계를 뒤흔드는 한류의 열풍을 여기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작업이 진행 안되면 크레인을 움직이는 오퍼레이터들이나 포맨, 포트 노동자들이 갑판 위에 삼삼오오 모여서 카세트를 틀어놓고 쉬곤 하는데 우리나라 걸그룹 포미닛의 '거울아 거울아'가 갑작스레 튀어나오더군요.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이지만 고개를 끄떡거리며 흥얼거리기까지 하는 모습이 한두 번 들은 곡이 아닌 것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어지는 곡들도 원더걸스, 소녀시대까지...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듣는 한국 아가씨들의 목소리, 정말 새로운 느낌이더라고요. ^^ 


새삼 '한류'가 흘러 흘러 이곳까지 제대로 도착했음을 깨달았습니다. ^^ 


본선 대리점 친구가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접속하곤 하는데 부탁해서 한국 뉴스를 보기 위해 접속했더니 브라이트 루비호가 남지나해에서 침몰했다는 뉴스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3년 전, 소말리아 근해에서 해적에게 납치되어 갖은 고초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라 그 배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죠. 


 9명의 한국 선원과 미얀마 선원들이 승선하고 있었는데 한국사람 3명과 2명의 미얀마 선원만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구조된 이들이 침몰 직후 주변을 지나던 선박에게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보면 악천후가 원인은 아닌 것 같다고 우리들끼리 나름의 원인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황천 중이었다면 지나던 배의 도움을 받는 일은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죠. 한마디로 배 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화물창 침수가 원인이 되었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을 때, 그런 노후선에 올라 악전고투했을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디 구조작업이 원활히 진행되어 실종된 이들 모두 생환할 수 있는 기적을 바라봅니다. 브라이트 루비는 본선을 매닝 하는 OO상운에서 관리하는 선박이라 저희와도 엄밀히 말하면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배이기도 하고요. 


 하긴, 가족들을 떠나 전 세계 바다를 떠도는 모든 선원들이 우리와 관련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한 배를 타지는 않았지만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는 이런 일들을... 제발 앞으로 만날 일 없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도, 막내도 해외로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좀 심심하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모쪼록 빈자리 꽉 찰 날이 곧 다가 올터이니 너무 휑한 마음 가지시지 않기만을 기원해보며, 아프리카 앙골라 루안다항에서 둘째가 보내드립니다. 


2011.11.22


사진:상사화(양평 세미원에서)


Photo by Capt.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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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에게


 그래 그곳 루안다 항에 머무르며 무작정 시간 만을 축내야 하는 것 같은 접안 생활을 하며 힘들어하는 너를 위시한 모든 네 동료 선원들에게 우선 위로와 격려의 말부터 전하고 싶구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항구 접안 시의 금쪽같은 시간들인데, 보람 있거나 알차게 즐길 수 있는 일에 투자하질 못하고 허송세월 보내듯 지내야 한다는 환경이 정말로 아쉽기 그지없구나.


 이제 그런 틀 안이지만 네 나름 대로의 너에게 보탬이 되는 해결 방안을 꼭 찾아내 주길 바란다. 아프리카의 다른 항구들의 경우도 모두가 비슷한 상황 일터이니 다음에 기항할 예정이라는 프리타운에서도 비슷한 일을 당할 것에 대비해야 할 것이니 말이다. 


 불평이나 불만만 표출하다가 결국은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면 너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젊음의 어느 순간을 너무나 허무하게 소진해버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곳에서는 낚시가 잘 되고 있다니 너도 그 낚시에 열심히 참여하여 강태공이 빈 낚시 담그던 뜻을 오늘에 헤아려 보는 척이라도 하며 즐기는 건 어떻겠냐? 이 나이 되어 지나간 내 세월을 반추하다 보니, 그 시절 왜 그렇게 멍청하게 행동했지? 하는 후회감을 가진 적도 여러 번 있었음을 떠올리게 되며 당시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못하여 포기하고 지나쳤던 분위기의 세월이 새삼 아쉬워졌다는 뜻이다.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감이 자랑스럽고 우쭐해지는 기분마저 드는 요즘인데, 아프리카 현지에서 전해지는 생생한 현장 상황의 전달은 다시금 으쓱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구나.


 그런 기분 좋은 소식이 국외에서부터 들어와 기쁘기는 하지만, 요새 국내 사정을 보면 예전 조선조의 망국 풍토였던 당쟁의 재현이 현재에 이르러 극에 달한 것 같은 씁쓸함에 좀 우울해지는구나.


 정치라면 여야가 있고, 내 의견과 타인의 의견이 공존하는 이유가 있으며, 이 모두를 어우르는 해결 방안을 도출하려는 협의와 양보가 있어야 할 건데, 말로는 타협과 상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속내로 보면 다음을 기약하여, 나 아니면 안 되는 아집과 무조건 상대방은 깔아 뭉개려는 행태가 팽배한 우리네 정치풍토가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는 어쩌면 자신의 욕심에만 치우쳐 있는 정치인의 자질 때문이 아닐까? 종종 생각해 보는 명제이다.


 자신이 감추려고 하거나 모르고 있는 스스로의 속내 앞에 무릎 꿇어 반성하는 순수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진 후 그 결과에 따라 새롭게 정치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참 정치가가 이 나라에 탄생이 된다면 현재의 정치풍토는 자연스레 타파될 게 아닐까?


 정치란 <나>와 <너>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제삼의 나머지 사람들>을 위한 행사이지만 그 위에 <나와 너>를 더해주거나 뺄 수 있는 판단과 행동으로 명예를 얻는 행위라고 정의 짓고 싶은 내 마음이다.


 당쟁의 소용도리 속에서도 꿋꿋하고 바른 행동으로 임했기에 후세에도 그 명예로운 이름을 보존하고 있는 정치가들을 우리는 역사 안에서 배우고 있지 않느냐?


그런 민생을 위하고 국가를 위해 노력한 분들의 노고를 다시금 상기해보며, 정치적 행보를 바르게 나가주길 현재의 정치인들에게 조언해 보자꾸나.


 한 길 발아래를 지옥으로 구분하며 조심스레 살아가는 뱃사람으로서, 쉼 없이 움직이든 생활 발판이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지며 모두가 목숨을 잃어가야 하는 일에 봉착한 동료들의 가장 슬프고 어려운 현실이 우리 가슴을 저며오는구나. 


네 말대로 가족들을 떠나 전 세계 바다를 떠도는 모든 선원들이 우리와 관련은 있지만, 더하여 이번에 화를 당한 분들은 우리와는 같은 회사였든 인연도 있는 것 같구나. 


이는 다 같은 친척에서 한가족으로 더욱 가깝게 분류될 수 있는 이번 전손사고를 당한 선원 모두가 어떻게라도 생명에는 이상이 없는 상황으로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하는구나. 


브라이트 루비호의 구조된 선원의 수가 네가 알고 있는 숫자보다는 늘어나 있는 뉴스를 보며, 더욱 기쁜 소식이 전해지길 두 손 모아 간구하고 있다.      해난사고, 2011.11.22. 14:05

 서울 등 축제에서(청계천) 만난 불사조의 뜨거운 입김이 브라이트 루비호의 선원 모두에게 불어넣어 주기를 간절히 원하며 그 사진을 첨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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