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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19. 2019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프리타운에서


어느새 시에라리온에 입항한지도 일주일이 넘고 있습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니 아마도 12일에는 다시 대양으로 나가 지중해로 향하게 될 듯싶네요. 여기서 급유지인 지브랄탈까지 6일, 지브랄탈에서 목적항인 루마니아의 콘스탄차까지 7일 정도 소요될 예정이니 12일 출항으로 봤을 때,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콘스탄챠에 도착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유럽 국가들은 난리가 난다던데 EU의 가맹국인 루마니아도 역시 그럴지 살짝 걱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맘때만 되면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러 떠나는 대부분의 유럽인들처럼 그들도 그러할지, 아니면 1월에 성탄절이 자리한 동방정교회가 국교인 국가인만큼 12월 성탄은 조용히 지날지 이래저래 고민이네요. 


 예전, 벨기에를 크리스마스에 맞춰 도착했다가 연말까지 앵커리지에서 다른 배들과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만 하며 무료하게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걱정(?) 중이죠. 


동해 출항 후, 석 달 동안 땅 한 번 못 밟아 본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니 말입니다. ^^


북한보다도 못 사는 나라인 시에라리온의 첫인상은 정말 기나긴 식민지 시절과 바로 몇 해전까지 내전에 시달린 나라라는 선입견이 대부분 그대로 들어맞는 상황의 나라였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본선에 요구한 경유를 빼내어가는 장면. 후진국으로 갈수록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연히(?) 입항 때부터 이런저런 억지로 아예 본드 스토어와 부식창고를 거덜 내는 공무원들과 에이전트들에게 시달리고 나니 '역시 아프리카'라는 생각을 재확인하게 되며 아주 징글징글해졌죠. 


하지만, 그 파렴치한 공무원들이 지나가고 나니 대부분 선량하고 욕심 없이 사는 본선 일꾼들이 그 자리를 채우더군요. 늘 웃으며 인사도 먼저 건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걸어오는 호기심 많은 그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밉상인 본선에 상주하는 에이전트가 성질을 건드리기는 하지만(본선 부식 냉장고를 자기 집 곳간으로 여기는) 그 외의 대부분 친구들은 인상도 좋고 그 인상만큼 선량한 사람들이죠. 없이 살아도 낙천적이고 늘 밝게 생활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좋은 세상, 좋은 나라에 태어나 호의호식하고 살아온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도 하더라고요.


 전화로 말씀드렸던 것처럼 본선의 부식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지만 오가는 어민들이나 채소를 싣고 배에 와서 흥정하는 농민들에게 생선과 각종 과일, 야채를 구입하며 부식창고를 채우고 있습니다.

 * 어민들이 올려준 바나나를 들고 있는 본선 Cook Samsu. 


무게가 거의 20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이 바나나의 가격은 5불이었다.



수십 개의 바나나가 매달린 바나나 나뭇가지는 5불, 민어로 보이는 커다란 생선 6마리에 15불, 잘 익은 파파야 30kg에 10불,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듯한 코코넛 10개가 5불에, 여기저기 찌그러져 못생기기는 했어도 커다란 크기에 맛도 일품인 파인애플이 40개에 10불....


에이전트를 통해 받아 들었던 부식 금액에 경악했던 지난주와 달리 정작 앵커리지에서는 마음껏 현지의 음식들을 싸게 즐기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 주먹 두 개를 합친듯한 자몽(크래이프 후르츠)을 한 자루에 5불에 사서 전선원이 맛나게 즐겼습니다. 


농약칠 돈이 없어 그저 뿌리고 거두기만 한 탓에 생긴 것도 못생기고, 색도 우리가 마트에서 만나는 그것처럼 반짝이는 노란색과는 거리가 먼 푸르댕댕한 게 사뭇 다르지만, 크기와 향기, 맛은 정말..... 덕분에 온 거주구에 자몽 냄새가 가득하죠. ^^ 


 이 친구들은 껍질을 벗겨서 먹는 우리와 달리 한쪽 귀퉁이를 이로 베어내어 쪽쪽 빨아먹고는 마지막에 뒤집어서 과육을 베어 먹더군요. 

 *흥정 후 대략적인 수량을 파악 중인 본선 조리장과 조리수. 


이렇게 매일 그들이 가져다주는 음식들을 꼬박꼬박 사들여서 비었던 본선의 냉장고도 점점 풍족해졌다. 


 '좋은 거래'를 파는 쪽과 사는 쪽 모두 만족하는 거래라고 한다면 배에 와서 과일과 생선을 팔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가는 이곳 사람들이나 좋은 음식을 좋은 가격에 구입했다고 만족하는 우리들이나 모두 그 '좋은 거래'를 늘 하고 있는 셈입니다. 


 장사하면서 그들이 말해주더군요. 이곳 투묘지에서 부터 자신들의 물건을 팔려고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시장까지는 배로 달려 8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 데다 그나마 가격도 배에서 우리가 계산해주는 가격의 절반도 받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배에 올라와서 Watch man으로 근무하는 친구들이 한 달에 50달러를 월급으로 받는다고 하니 그들의 소득 수준이 대충 감이 왔습니다.

자신이 이 나라에서는 중간 정도의 수준이라고 하니 정말 못 먹고 못 사는 이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는 것인지...


 하여간, 어느새 이곳에서의 생활도 막바지가 보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더위와 2 당직제로 대변되는 피곤함과 싸우고 지내는 중이지만 그래도 연말연시의 즐거움이 이곳까지 전해져 오는 중이라죠. 게다가 오늘은 즐거운 월급날이 아니겠습니까. ^^


할머니 생신잔치와 함께 하신다는 아버지 생신 잔치에 참여 못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먼 곳에서나마 형과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의 생신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 다시 메일 보낼게요. ^^


2011년 12월 10일,

시에라리온 프리타운에서, 둘째가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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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 초겨울에 수확한 우리 집 감들. 맛은 일품인데 금년 수확량은 이것밖에 없어 남겨둔 게 없구나. 


 피곤한 2 당직제 하역 당직 근무에 수고가 많구나. 2011.12.10


 부두의 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이기에 항내에 투묘하고 하역작업을 하는 데다가 상륙도 안 되는 상황이라니 오죽하겠냐 그 무료함이...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 어쩌면 시에라리온이란 나라의 또 다른 모퉁이에서 진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계기가 된 것이라 생각해도 될 것 같구나.


게다가 그들의 심성이 그럴 수 없이 착해 보이고 순한 모습으로 느껴지는 모양인데, 현재 세계적인 해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소말리아는 차한에 부재(此限不在)라 치더라도, 어쩌면 그건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의 소시민이 사는 모습일 거라 여겨지는구나. 



그 안에서 그들의 사는 모습이나 관습을 무심하지 않게 관찰하며 너의 알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생활을 누리다가 다음 목적지로 향하길 바란다.


 자몽의 껍질을 벗겨서 먹는 우리와 달리 한쪽 귀퉁이를 이로 베어내어 쪽쪽 빨아먹고는 마지막에 뒤집어서 과육을 베어 먹는 모습을 무심히 보아 넘기지 않고 관찰한 것 같이 말이다. 하기야 그 과일을 우리보다 더 먼저 가깝게 만났을 그곳 사람들이 먹는 방법이니 그게 옳은(?)것 인지도 모르겠구나.ㅎㅎㅎ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 듣고 있는 숙명가야금 연주단의 <Let it be >의 음률 마저 내 마음을 더한층 포근하게 해주는 느낌을 받쳐 주니, 밝은 표정으로 팔고 만족한 마음으로 사는 <좋은 거래의 정의>도 그 거래만큼이나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사항이었다. 


 이제 너는 루마니아 콘스탄챠에서, 막내는 프랑스 파리에서 성탄절 즈음을 지내게 될 것으로 여기며 집안 모두는 너희가 언제나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잘 지내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강원도와 서해안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으며 네가 있는 그 뜨거운 곳에 이 시원함이 전해지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서 자리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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