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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30. 2019

목숨 걸고 겪은 사고였더군요



어느새 콜롬비아를 출항한 지 닷새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파란만장(?)했던 본선과 나의 콜롬비아에서의 나날은 짧은 기간이지만 책으로 써도 될 만큼 사건, 사고가 있었던 시간이었죠. 


상륙도 안되고 허구한 날 이런저런 선물을 기대하는 콜롬비아 친구들의 낯두꺼움도 일조를 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사건은 배에서 떨어져서 물에 빠지는 두 번은 하기 싫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었죠.

거기다가 배 프로펠러에 엉킨 Mooring Wire까지... 이래저래 올해 남은 액땜은 모조리 했다고 저나 본선이나 말해도 될만합니다. 


 먼저 물에 빠진 사건을 살펴보면....

사건은 지난 8월 6일 아침 여섯 시로 되돌아갑니다. 늘 아침에 Draft를 읽고 본선에 실은 화물량을 계산하는 것이 아침 당직 첫 번째 일인 관계로 아침 당직 인수인계 후 바로 포트 쪽에 접안한 바지로 옮겨 타기 위해 Ship's Office를 나섰죠. 


 앵커리지에서 짐을 싣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양현과 뒤쪽까지 Jacob's Ladder를 늘어뜨리고 살펴야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본선에는 그렇게 긴 Ladder가 없는 데다가 이쪽 친구들이 친절하게도(?) 아침마다 서비스 보트를 내주기 때문에 바지에서 보트로 옮겨 타서 배의 여섯 군데 Draft를 모두 읽고 다시 배로 올라와 화물량을 계산하곤 했죠. 


 앞의 이틀간은, 별 탈이 없었지만 대양 쪽에서 밀려오는 Swell이 심상치 않아서 Draft를 읽는데 적잖게 애를 먹던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죠.


 그 날따라 주머니의 휴대폰과 워키토키까지 실항사에게 넘겨주고 헐렁하게 풀려있던 안전화의 끈도 바짝 쪼여서 Ladder에 올라 바지로 옮겨 타고 있었습니다. 


 Swell 때문에 바지와 본선 사이의 팬더(초대형 타이어)로 먼저 옮겨가서 바지로 옮겨가기 위해 뒤로 돌아섰을 때, 바지와 본선을 연결해둔 Mooring Wire가 갑작스레 튀어 오르더군요. 


반사적으로 와이어의 탄성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틀자마자 튀어 든 와이어에 얻어 맞고 바로 물로 처박혔습니다.


 빠지자마자 갑작스레 드는 짜증...-_-;; 


 일단 팬더와 본선 사이에 끼어서 마른오징어가 되는 일은 피해야 했죠. 하여 팬더에서 벗어나 바지로 올라가려 했지만 따로 족장이나 로프가 설치된 것이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던 차에 바지 쪽 선원들이 알루미늄 래더(사다리)를 내려줘서 그걸 붙잡고 올라오는 데 성공했죠. 


 그 뒤부터 한 두어 시간여를 Port Authority와 Security들에게 시달리느라 Draft는 읽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다친 데가 없는데도 일단 바지선에 눕혀놓고(!) 의사를 부른다, 뭐한다 넋을 빼놓더니 의사랍시고 온 친구는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의료관리자' 수준의 친구더군요.


 양쪽 팔에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진 것을 보면 당시 저도 경황이 없기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이런 난리를 당하고 배로 올라오니 다들 여기저기 찔러보며 괜찮냐고 물어보더군요. 


원래 이런 일들을 겪고 나면 그렇듯 죽을 뻔했던 당시에는 전혀 신경도 안 쓰던 일이 올라오니 얼마나 쪽팔리던지. -_-;; 


 위에서 지켜보던 타수와 실항사, 포트 시큐리티들도 모두 한 목소리로 바지선의 Mooring Wire관리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낮에 다시 내려다보니 와이어를 도르래 같은 것에 고정시키고 튀어 오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더라고요. Port 쪽에서 사고 원인을 바지 쪽에 압박했던 모양입니다. 


 사고를 겪고 얼마 지나고 나니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 긁힌 곳은 또 왜 그리 쓰라린지...

배에서도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괜찮으냐? 어디 아픈 데는 없냐.' 해명하고 다니는데 아픈 것만큼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살아서 쪽팔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새삼 깨닫는 기회가 되었지만요. 


 사고 이후에 그 사고에 대해 복기를 해보자면 애초 위험해 보이는 상황에서 Ladder에 올랐던 제 불찰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며칠째 Swell에 오락가락하던 차였음에도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 


 또한, 원래 바지 쪽에서 내려오는 이들을 잡아주던 Stevedore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걸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사고의 이유 중 하나가 될 듯합니다. 


 하지만, 일단 내려가기에 앞서 구명조끼와 안전화, 안전모를 착용하고 Ladder앞에서 복장과 안전장구를 다시 확인하고 내려갔다는 것은 사고가 그저 '준사고'로 끝나는데 일조를 했다고 여겨집니다. 


 Floating Crane(Barge)의 무게도 2,000여 톤에 달하고 본선의 덩치도 만만치 않은 상태에서 그 사이에 추락했을 때, 구명조끼가 없다면 바로 배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불상사를 만날 수도 있었다는 전언에선 새삼 진땀이 났습니다. 또한, 와이어에 얻어맞은 것도 구명조끼 위였죠. 


 나중에 올라와서 확인을 하니 와이어에 맞은 자리가 찢어져있더군요. 구명조끼가 없었다면 그 자체로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떨어지면서 본선 외판에 머리를 부딪혔지만 역시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고, 평소에 풀어놓던 안전화 줄을 바짝 쪼이고 내려온 덕에 울퉁불퉁한 구조용 알루미늄 사다리에 오르면서도 맨발 신세를 면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도, 사고를 예측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런저런 준비를 잊지 않고 큰 사고를 모면한 데는 가족들의 기도와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v 목숨 걸고 겪은 사고였던 거죠.


 본선에서도 선장님이 이번 사고를 타산지석 삼아 안전장구의 착용을 생활화하자고 사관들을 따로 불러 교육까지 했을 정도니... 이래저래 마루타가 된듯한 느낌입니다만 이후로 모든 이들이 안전장구의 착용을 번거로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된다면 그것이 또 전화위복이 아니겠습니까. ^^


 또 Mooring Wire로 생긴 일은 저뿐만 아니라 출항하던 본선의 프로펠러까지 휘어 감는 웃을 수 없는 일로 마무리된 것은 덤입니다. 


 콜롬비아는 출항 때마다 잠수부까지 동원해서 배 바닥까지 살펴서 혹시나 마약을 숨겨둔 곳이 없는지 살피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마약 탐지를 위해 들어간 잠수부가 찍어온 사진에는 저를 후려갈겼던 똑같은 규격의 와이어가 프로펠러를 휘감고 있는 웃을 수 없는 장면이 담겨 있더군요. 


 프로펠러부터 샤프트까지 둘둘 말려있는 와이어를 모르는 채로 출항했다면 샤프트를 타고 들어와 기관실이 침수되거나 프로펠러의 블레이드가 파손되어 바다 한 복판에서 배가 서버리는 대참사를 당할 수도 있었을 테니 콜롬비아가 마약의 왕국인 것을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잠깐 헷갈렸습니다.


 하여간 저를 후려갈 긴 와이어가 배의 발까지 잠시 묶어두었으니 이래저래 콜롬비아에서의 날들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고 할 수 있죠. 


 어느새 대서양 한 복판, 우리가 지나온 카리브해는 연달아서 달려드는 허리케인 때문에 몸살이라는 소식이 들리지만 우리는 평온하기 이를 데 없는 조용한 바다를 달리고 있습니다. 


 모쪼록 더위가 기승이라는 모국의 땅에서 우리 식구들도 평온한 나날들 보내시길 간구합니다. 


파란만장 둘째의 콜롬비아 기행(?) 소식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죠. ^^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주님께 기도드릴게요.


 2012년 8월 14일,

북대서양 한 복판에서,

둘째가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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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보거라. 2012.08.15


 잠깐 너의 사고 소식에 가슴 철렁하는 순간도 가졌지만, 너와 전화로 대화하며 들었던 소식이었기에 그 당시에는 안전하게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며 자세한 소식은 이렇게 편지로 전해주길 바라며 전화를 끊었었지.


 근데 자세한 소식을 받고 보니 새삼 위험했던 상황이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구나. 정말 아찔했던 순간을 겪고 무사한 너의 현재에 감사할 뿐이다.


 사고를 당했을 순간은 힘들고 어려웠겠지만 이제 지나 놓고 보니 이야깃거리도 되고 더불어 안전교육용으로도 훌륭한 소재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혹여 당할 수 있는 비슷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 제공한 셈으로 생각하자꾸나.


 어쨌건 네가 주연으로 활약(?)한 펜더에서의 추락사고는 물에 빠진 후에도 뒤따르는 위험으로-배와 바지 사이에 끼이던가, 배 밑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비참한 두 번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형편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네가 살아올라 올 수 있게 풀려 나간 것은 따지고 보면 이런 거란다.


 비록 실족하여 물에 빠지게 된 데까지는 필연이었을지라도 그 후의 상황이 더 이상의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든 정황이 보살펴 준 이유를 갖고 있었던 것이란다.


 구명조끼, 안전모와 안전화 신발끈을 꽉 조이게 매 준 것이며, 즉시 알루미늄 사다리를 내준 바지선 선원들의 조치 같은 것들이 빨리 다시 물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만들어서-더 이상 사고가 커지지 않게- 한 그런 일들이겠지.


 이런 유의 사고 후일담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게 마련이란다. 40 년도 더 넘어선 옛이야기를 하나 해 보련다.


 예전 실습생 시절 반도호로 실습하면서 여수항에 기항하였을 때란다. 입항하여 부두에 접안 작업 중이었을 때 나와 같이 후부에서 2 항사 실습팀으로 있던 동기생이 어찌 덤벙대다가 지금 엔진을 쓰며 접안 중인 선미에서 물에 빠지게 되었단다. 고함치며 브리지에 알려서 즉시 엔진 스톱하도록 요청하면서 구조를 했지. 무사히 배 위로 끌어올려놓았는데, 그 친구의 제 일성이 무어라 했을 것 같니?


 아직 얼떨떨한 표정으로 젖은 몸을 가누면서 물에 빠지던 순간 머릿속에 떠 올렸던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아차! 손목에 찬 시계로 물이 들어오는 게 아닐까? 였다는구나.


 너는 물에 빠지자마자, 갑작스레 짜증이 확 밀려들었던 모양이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발생해도 이렇듯 생각지도 못할 방향으로 생각이 들어서는 게, 어찌 보면 냉철한 마음으로 풀어주어, 살아날 수 있는 길로 쉽게 들어서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다음에 생긴 출항 하며 곁 들여진 와이어로프의 프로펠러를 휘감은 사고는 참으로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한 거나 마찬가지의 대형사고가 미연에 방지된 일로 여겨지는구나.


 컬럼비아가 마약으로 악명을 날리고 있기에 그곳에 기항한 선박은 출항 전 선저부를 검사하여 혹시 범죄단이 선체 외판에 부착시켜 밀수출하려는 마약류가 있는가 검사하는 게 통상적인 일이지. 


 여기서 검사하러 물속에 들어간 잠수부가 와이어가 스크루를 휘감고 있는 상태를 발견하여 출항 전에 안전하게 제거하고 떠날 수 있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하지만 나는 여기에 덧붙여 한 가지 더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어쩌면 와이어를 물속에서 걷어내는 그 시간을 이용하여 그들이 선저 부근에 그야말로 마약을 밀수출 할 어떤 구조물이라도 부착시키려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 번쯤은 하고 넘어감으로써 다음항인 영국에서 피치 못 할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라는 이야기이다.


 마약거래자들은 인류 최악의 마지막 가는 범죄인들이므로 그들이 마약거래를 위해 벌이는 일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그들의 술수를 앞설 수 없다고 여겨지는구나. 


 그러니 일부러 본선을 지체시키며 합법적으로 물속에 들어가 시간 들여 그들이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려-또는 만들려- 한 것이라고 한 번쯤은 의심하고 살펴둘 필요가 있겠다고 여겨지는구나.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 하면, 모든 사고는 그 사고 원인들이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그 사고를 도와주는 형태를 이룸으로써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그 원인 중 하나라도 삐끗하니 벌어지게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사고는 당연히 불발이 되는 것이란다. 여기서 사고 방지를 위해 세세한 데 까지 살펴보고 주의함이 마땅하다고 깨우쳐 주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사고에 시험 들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길 바란다. 우리는 무더위로 한 보름 고생했지만 너의 고생에 비할 수야 있겠니? 


오늘은 그동안 참아왔던 비가 장대 같은 순간적인 폭우로 가을맞이 준비를 재촉하는 형상이구나.


 큰 사고를 안전하게 피해 간 너의 준비태세에 격려를 실어 주며 늘 건강하거라. 오늘은 여기까지이다.


집에서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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