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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y 18. 2019

참으로 아쉬웠던 만남이었구나

좌현 윙 브리지 선교 출입문 위의 스피커 부근에 꿀벌들이 집을 이루려 하고 있다.


어느새 입항한 지 한 달째로 달려가고 있던 오늘, 배에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2013.01.17


 아침에 오래간만에 쨍하게 나온 태양에 당직 중이던 저와 실항사, 마침 선교에 올라와 계시던 선장님까지 해바라기를 위해 포트 쪽 윙 브릿지로 나가서 오랜만에 나온 태양 빛을 들이마시며 만끽하고 있었는데, 뭔가 꼬물거리는 시커먼 덩어리가 선교 출입문 위쪽에 자리한 것을 보게 된 것이죠.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곤 셋다 기겁해서 도로 선교 안으로 뛰어들어와야 했습니다. 사진에 보내드린 것이 바로 그것의 정체였죠. 

분봉한 꿀벌 무리가 하필 자리 잡은 곳이 본선 선교 문짝 위였던 것입니다.


 마침 provision crane을 도색하느라 여념이 없던 갑판 부원들에게 벌떼의 정체를 알리고 절대로 좌현 윙 브릿지로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를 해둔 후, 기관실에도 같은 경고를 전파했죠. 


 최근 들어 핸드폰 전자파나 여러 가지 환경오염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우리는

잠시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녀석들을 살려서 옮겨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죠.


 딸기잼을 덜어서 살금살금 윙 브리지 주변에 가져다 놓고 smoke detector test kit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다른 쪽으로 흩어버리려고도 해봤지만 그들은 요지부동. 


게다가 쫓아내려던 O/S가 꿀벌에게 쏘이는 일을 겪고 나선 녀석들의 처지는 안타깝지만 본선 선원들의 안전을 위해서 실력(?) 행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해야 했죠. 


 그래도 녀석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HOLD CLEANING용 WATER JET를 이용, 녀석들의 집을 날려버리고 여왕벌이 식별되면 녀석을 붙잡아서 다른 곳으로 날려버리기로 하고 작전(?)에 들어갔죠. 


 순식간에 대오가 흩어진 꿀벌 떼. 


하지만, 이미 수백, 수천을 헤아리는  작은 무리들로 변해버린 녀석들은 우리의 바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여왕벌을 그 사이에서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고요. 


 결국 '인도적인 고려'에서 '적극적인 토벌'로 바뀐 방침에 따라 WATER JET로 녀석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진공청소기를 사용해서 모조리 쓸어 담아버리는 것으로 작전은 마쳤습니다.


 물론 지금도 몇몇 녀석들은 여전히 처음 모여있던 지역을 어슬렁거리며 날고 있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여왕을 포함한)의 녀석들은 전멸한 상태죠. 


 선원들의 안전을 고려한 조처이긴 했지만 작전(?)을 마치고 다들 우울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살생이 즐거운 일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이제 저녁 당직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아침의 소동을 생각하면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이래저래 우울한 하루였네요.


 본선은 여전히 앵커리지(묘박지) 한 복판에서 언제 접안할지도 모르는 상황 아래 앵커링(투묘) 중입니다. 이래도 한 세월, 저래도 한 세월이지만 오늘처럼 꿀벌들이 하필 배에 자리 잡는 그런 일은 앞으로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습니다. 


.... 여전히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중이라는 소식이 이곳까지 들리고 있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길 기원하며.


2013년 1월 17일,

ORINOCO RIVER 162M INNER ANCHORAGE에서,

둘째가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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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대기 중인 시간에 정신 버쩍 나는 일을 겪었구나!               2013.01.18


  먼저 큰 피해 없이 무사하게 일 처리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부터 가지는 내 에고를 떨쳐낼 수가 없구나.

그렇게는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꿀벌 들과의 인연이 참 아쉬운 일이니까 말이다.


 어쩌다 물 위에 떠 있는 커다란 철판 덩어리일 뿐인 너의 배 위의 한 구석에 둥지를 틀려고 했던 그 벌들이지만 그래도 살만한 곳으로 옮겨주고 싶었던 너와 너희 배 선원들의 마음이 이토록 내 심정과 똑같은 상황이었음에 고소를 짓게 되는구나.


 사실 새 벌통을 준비하고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꿀벌을 길러 본 경험이 있는 양봉가라도 있어서 알맞은 시간대에 그네들을 옮겨 줄 수 있게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한들, 육지와는 당장 어찌 소통해 볼 수 없는 떨어진 위치의 고립된 배 위에서 너희가 취한 행동은 어쩔 수 없는 가장 올바른 안전을 위한 행위였다고 나는 믿는다.


 그 자리에 너의 선장님도 계셨지만, 만약에 내가 선장으로 있었다 해도 너희가 취한 마찬가지의 행동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단 의미란다.


 이따금 해외토픽 뉴스 등을 통해 사람이나 가축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남미가 원산지라는 <살인 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우리의 감성으론 우선 무서운 공포를 안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이해하기에 너희 배에서 벌어졌던, 결국 <꿀벌 퇴치 작전>이 되어버린, 일이 그냥 무사히 끝난 것에 안도했다는 뜻이란다.


 하찮은 미물의 꿀벌이라 여겨지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 태어난 고귀한 뜻은 가지고 있었을 것일진대, 그런 뜻을 펴 보지도 못한 채 고압의 WATER JET가 내뿜는 바람과 물줄기 아래 떠 밀려 버린 녀석들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


 어쩌면 세상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태어난 온갖 꽃들에게, 마치 제 뜻대로 움직이며 살아가게 해 주듯이 그들의 꽃가루를 대신 전파해 주는 일을 해주어 동반자 노릇을 하는 벌들이, 힘들게 분봉하여 태어났던 형편 이건만, 단지 사람만을 편안히 만들어 주기 위한 약육강식의 논리에 밀려, 생존이란 고귀한 뜻이 강제로 꺾여버림 당해야 했다는 점이  너무나 측은한 마음 되어 내 주위를 뱅뱅 맴도는 듯 하구나...


 그렇긴 해도, 

어느 여름날 하루 덧 없이 찾아왔다 덧 없이 사라지는 남가일몽( 南柯一夢 ) 같은 일로 치부해버리고 더 이상 마음 아파하지 말기를 바라며, 그런 게 인생사의 한 토막 에피소드이라 여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니 이제 치열한 너의 선상생활로 다시 돌아 가자, 


간당 거리게 모자라는 나날의 지나침을 셈하고 있는 주부식의 모자라는 현실을 보충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 무지막지한 폭리(?)를 취하려는 현지 선식 업자와도 밀리지 않는 적극적인 타협으로 전 선원이 영양 있고 꽤 괜찮은 주부식을 보급받을 수 있도록 선장님을 돕는데 너의 모든 힘을 쏟아줌이 나을 것 같구나.


 비록 성인군자라 해도 먹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평범한 일반인인 장삼이사(張三李四)중 한부류인 선원들이 주부식을 대하여 불평할 수 있는 태도를 무어라 할 수는 없는 일.


 까딱 잘못하면 선내에서 서로 간에 오해의 구렁에 빠져 들게 만드는 가장 첫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일이 이런 일이란 것을 셈하여 앞으로 사관으로 살아가야 하는 네 입장을 충분히 살려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는 것을 권하는 내 심정이다.. 


 투명하게 그리고 모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가진 주니어 사관이 많은 배 일 수록 건강한 따뜻한-선내 분위기로 차분한- 그런 화목한 분위기의 바람직한 모습이 될 수 있단 점을 짚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란다.


 하여간 기다림이 미덕일 수밖에 없는 현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는 스스로 찾아서 잘  대처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경험은 어디서 돈 주고 살 수 있는 그런 싸구려의 일이 아닐진대 너의 각별한 대처 능력이 이번 장기간의 투묘 대기 기간 중에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건강하거라. 


집에서 우리 가족 모두의 응원을 더해서 아버지가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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