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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y 30. 2019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


출처 게시글 : 2012년 겨울, 북대서양




오리노코강에 정박 중인 본선을 놔두고 집으로 오기 위해 둘째가 통선을 타고 떠나던 날의 모습



 동영상은 대서양에서 만난 황천 중 잠깐 동안, 1분 정도, 찍은 것으로 바람소리와 함께 들으면 더욱 실감 난다. 수평선의 수평이 약간씩 울렁거리는 것은 어지럼증을 도발하는 일로, 딛고 사는 발판이 유동적인 뱃사람들의 형편을 잘 나타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동영상도 찍어 가지고 둘째가 집으로 돌아왔다.

개선장군만의 전매특허 같은 의기양양한 활짝 웃는 모습의 자신감을 보이며 둘째는 인천공항을 통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 10여 개월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보냈던 다사다난한 항적의 보풀이 그대로 덧붙여진 듯한 추레한 배낭을 메고 가방을 끌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야깃거리가 수두룩한 그간의 단편적인 생활의 편린들을 이것저것 쏟아 내듯 풀어내니 무용담을 방불케 하는 그 간의 소식에 우리 가족 모두는 찬탄과 웃음을 머금어 가며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 유일하게 동영상으로 표현해 준 북대서양의 황천 모습을 대하면서 나는 감회가 남다른 느낌에 몇 번이나 되돌려 재생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지난 세월의 해상생활에서 나 역시 헤일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황천의 순간을 만났었다. 이미 무디어진 기억이라 희미하게 지워진 것도 있어서 그때 그랬었나? 하는 순간이 대 부분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도 있다.


 그중에는 이미 슬어져 가는 쇠퇴기에 들어서 있던, 그래도 명색은 어쩔 수 없는 태풍으로 치부되던 황천과 어쩔 수 없이 조우해야 했고, 먼발치라지만, 150해리 정도를 지나치며 당했던 일도 포함되어 있다.


쇠퇴기라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폭력을 남겨 가진 태풍의 간섭 덕에 한밤중 대포소리를 무색하게 하는 굉음과 함께 부르르 떨어주던 내 몸에 각인된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날 밤 그 일로 인해 적재톤수 16만 톤짜리 선박의 아홉 개 선창 중 세 개의 선창 좌현 쪽 프레임이-사람으로 치면 갈비뼈가- 심각하게 휘어버리는 중대한 해난사고를 당해야 했으니 내 눈을 감기 전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결과로 남아준 것이다.


 이렇듯 뱃사람이면 수도 없이 만나지는 황천의 순간들이지만, 매번 받아들여지는 한계점은 당시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누구는 황천 상황에 겹쳐서 암초와 접촉하여 운항 불능이 된 배 안에서, 자신의 마지막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부하 선원들의 삶을 위한 퇴선을 끝까지 지휘하여 성공은 했지만, 자신은 파도에 휩쓸려 희생당한 선장 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자신만을 쳐다보며 애달파하는 선원들을 위해서라도 브리지를 끝까지 지키며 조선에 임해야 하는 의무를 팽개치곤 <나도 모르겠다!>며 황천에 항복하듯 휑하니 브리지를 떠났다는 선장 같지 않은 선장-아니 절대 선장일 수 없는 선장-의 에피소드도 갖게 되는 걸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둘째가 황천 속에서 찍어 가져 온 동영상을 보며, 그게 그렇게 심한 상태의 황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압적인 바람소리에 덧 붙여 이따금 선수를 치고 달려드는 Water Hammering의 둔중한 굉음이 주는 위압감과 선수로부터 다가오는 부르르 떨리는 선체의 진동을 느낄 때마다 스톰 레일(Storm Rail) 붙잡은 손에 힘을 줘가며 별일 없이 무사하게 지나가 주기를 바라든, 마치 기도하는 마음 되던 옛날의 순간을 기억해 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배를 탄다는 아니 타고 싶다는 청운의 꿈울 가져보는 사람들이 이런 동영상이나 내 이야기에 승선 생활은 힘든 거라며 포기하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얄팍한 마음을 가져보는 나를 되돌아봅니다.


 하여간 모두 털어내고 결론부터 말한 다면 이런 정도의 앎에 접해 놓고 승선 생활을 포기하려는 마음이 든 사람이라면, 맞아요 뱃사람 세계에서도 결코 필요가 될 수 없는 사람이므로 잘되었어요 그냥 떠나세요. 하고 소리쳐주고 싶은 삐딱함도 나는 가지고 싶다.


 이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던 건, 지나온 내 삶의 도처에서 그런 어려움이나 안타까움은 흔히 만날 수 있든 일이란 걸 터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나 그런 걸 전부 이겨내며 쌓아 놓은 것이 인생의 연륜이고 보람임을 새삼 깨닫고, 자신들의 결판의 날에 웃음 지으며 귀천할 수 있는 성공자는 어떤 황파나 어려움도 헤치고 뚫고 나가려는 의지를 해상에서나 육지에서나 모든 일처리에 꼭 같이 베풀고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어쨌거나 이런 황천과 황파를 이겨내고 항해를 완성했을 때의 그 어디에다가도 비교할 수 없는 성취의 쾌감은 지금껏 반생을 바쳐가며 떠나지 못하고 해상생활을 살아온 이유가 된 것이라 믿어지는 요즈음이다.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라는 영국 속담을 기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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