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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y 31. 2019

남자와 여자의 인연 찾기

연가로 집에서 쉬고 있는 둘째의 페이스북에 올라있는 아래와 같은 푸념(?)을 읽으면서 나도 무언가 보태지 않을 수 없어 더하여 본다.


M/V CK ANGIE 브리지 내부 모습. 항해용 전자장비가 총천연색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함께 승선했던 필리핀,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틈만 나면 제게 '왜 장가 안 갔냐?'를 물어왔습니다.  


처음엔 '내가 별로 생각이 없었다.'라고 대답하다가 요즘은 그것도 귀찮아서 그냥 한국 여자들은 뱃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얘기해주고 있었죠. 


 사실 뱃사람이라는 일보다는 제 개인적인 문제점들이 발현된 이유겠지만 그냥 여러 소리 하기가 귀찮아 그렇게 대답해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그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던 모양이더군요.


 동남아시아에서 선원들은 각자 그들의 나라에서는 상당히 '능력 있는 신랑감'으로 꼽힙니다. 대졸 공무원의 평균 월급여가 200~300달러인 상황에서, 승선하고 있는 선원들의 평균 급여는 그것을 훨씬 상회하고 있으니까요.


  보통 세일러의 월급이 400달러 이상, 조타수의 월급은 1200달러 인근에서 형성되는 만큼 그들의 상황에서는 고임금을 받는 직업군으로 분류되고 있는 형편이지요. 


 만약 기관사나 항해사와 같은 사관급으로 올라서면 그 임금은 이들 보다도 훨씬 넘어서게 되니 자신들의 눈에 '능력 있는 신랑감'이 그냥 총각으로 지내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 요즘 facebook으로 알지 못하는 동남아 아가씨들에게 친추되고 이런저런 쪽지들도 날아오고 있습니다. 나를 어찌 알고 연락을 했냐는 물음에 그들은 '누구누구의 친구'혹은 '누구누구의 동생'이라고 소개를 하는데 그 '누구누구'들이 죄다 저와 함께  승선했던 친구들이더군요. -_-;; 


이 상황을 고마워해야 하나 아니면 괜한 짓을 하고 있다고 얘기해줘야 하나 무진장 고민 중입니다. 


  모 방송국의 저녁 시간대의 프로그램인 'Love In Asia'가 요즘 배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볼거리입니다. 그 주인공 도전이나 한 번 해볼까 생각도 가끔 들긴 드네요. ㅠ.ㅜ 에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한강이 되는 곳.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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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로 봐서는 누가 봐도 능력 있는 대한민국의 총각 이건만, 배에 승선하는 직업인으로서 결혼 하기가 은근히 어려워 보이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느끼고 있는 섭섭한 마음을 푸념까지 곁들여 뱉어낸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장기간에 걸쳐 배를 탔던 선박 승조원(선원)이었지만, 그 시절에서는 현재와는 달리 제대로 된 연애도 하였고 결혼에도 골인하며 오늘에 이르도록 순탄하게 혼인 생활을 이어 왔기에 그런 내 형편에 비추어 보면 -비단 뱃사람들만의 어려움이 아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의 꼬임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때에도 그랬지만 그 후에도 같이 승선 중인 동료들과는 여러 가지 잡담이나 이야기를 나누는 화두에서 처녀 총각의 사귐이 자주 떠 오를 경우를 가지곤 했던걸 보면, 인간사회에서 어쩌면 제일 중요한 일이 남녀 간의 일이 아닐까? 수긍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여간 남녀간의 이야기가 파장에 이를 때쯤 되면서, 상대가 자신의 배우자로 맘에 들었다면 (결혼을 염두에 두게 된다면) 아니다 싶은 행동을 해서라도 확인 도장을 찍어 두는 행위로 결판을 내야 한다는 식의 좀은 구린  농담 같이 마무리 짓는 이야기로 끝을 장식하곤 했다.


 사실 배에서 이렇듯 동료들 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때는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이거나, 같은 팀원으로 일 하다가 쉬는 시간이거나 인데, 사관과 일반 선원들 간에는 식탁을 엄격히 구분한 환경으로 생활을 하는 관계로 그들 간에는 그만큼 대화의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는 실정도 있다. 


  그러나 일항사와 갑판장은 직책상 한 부서인 갑판부의 부서장-일항사-과 직장-갑판장-으로 근무하므로 오히려 식사시간을 빼고는 누구보다도 자주 그리고 많이 접촉하는 상대이므로 자주 의견의 소통을 하고 농담도 하며 세상살이를 두루 의논해가며 생활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에서 소대장과 선임 하사관 같은 위치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어느 배에서 있었다는 갑판장과 일항사의 이야기가 참으로 남의 이야기 같지 않게 내 맘을 파고든다.


 아직은 미혼인 젊은 일항사와 아버지뻘 나이를 가진 갑판장이 같이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두 사람도 나이를 떠나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정을 도탑게 쌓아가며 생활하는 가운데 흐르는 세월은 그들이 연가를 받아 쉬어야 하는 -헤어져야 하는- 때에 이르게 되었단다.


-일항사! 이번 연가 중에는 틀림없이 알맞은 처자를 도장 찍도록 해서... 좋은 소식 전해주길 바라요.


-예, 갑판장님 저도 이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 일을 벌일 겁니다. 그러니 좋은 소식 기다려 주세요. 하하하.


그들이 연가로 헤어져야 하는 하선의 순간에 서로를 격려해가며 농담까지 섞어서 주고 받은 말이 그랬다. 그렇게 일항사는 배를 떠났고 다시 한 항차가 끝나갈 무렵 이번에는 갑판장의 집에서 바쁜 연락이 왔다.


-"여보 큰애가 결혼하겠다는데 당신이 와서 선을 봐야 되겠어요. "


갑판장은 속으로 고민 뭉치처럼 갖고 있던 큰 딸의 혼사 이야기에 불야불야 하선 신청을 하여 내릴 준비를 서둘렀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 따스한 봄날, 


큰 딸 애가 남자 친구를 아버지한테 보이겠다고 약속했다는 다방을 찾아 좀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이런저런 생각을 골똘히 하며 걸어가고 있는 갑판장에게 누군가 아주 친한 것 같은 음색으로 아는 체하며 접근한다.


-갑판장님, 오랜 오래간만입니다. 근데 언제 하선하셨어요? 


  지난 항차 먼저 하선했던 일항사였다.


-어! 일항사 아직 연가 중인가요? 난 엊그제 내렸지요. 근데 어쩐 일로?


반갑기도 하지만 괜스레 자신의 형편이 난처한 것 같아서 우물거리며 말을 받아 주는데.


-예, 저 오늘 선을 보려고 외출하는 겁니다. 


 일항사가 씩씩한 어투로 응대한다.


-그래요? 아주 잘 되었네요. 나도 지금 좀 급한 볼 일이 있어서 나왔는데...


 갑판장은 자신도 같은 일을 보러 나온 걸 깨달으며 멋적은 대답을 해준다.


-예, 오늘은 바쁘시니, 그럼 나중에 꼭 연락해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두 사람은 자신들 일이 바쁜 마음에 얼른 헤어지는 인사를 주고 받으며 악수한 손을 풀었다. 


넓직한 다방에는 손님이 별로 없어 한산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무료한 느낌이 드는데,


안으로 들어선 일항사가 아직은 약속한 사람들이 도착하지 않은 걸 안심해 하며 자리에 앉았다.


여자 친구의 아버지를 처음 만나뵙고 인사를 드리기로 한 모임이다. 늦지 않게 도착한 것에 안도하며 허리를 꼿꼿하게 펴주고 어깨도 활짝 벌리면서 천천한 심호흡으로 숨을 들이쉰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것이다.


-아버지 저쪽이에요.


여자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길을 보내는 일항사의 앞에 어느 새 도착한 상대방이 말을 더듬는다.


-어어 일항사가 여긴 어떻게....


- .......................... !


 이야기는 여기까지에서 끝내기로 하고, 

: 최근 3년 동안 둘째가 배를 타고 기항했던 곳을 표시한 세계지도.

             

  그 후일담은 그야말로 결혼식도 잘 치러내었고, 지금은 아들 딸 잘 낳아 건강하게 오손도손 잘 살고 있다는 덧붙임으로 또 하나의 해운 가족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말로 마감합니다. 


  연가로 집에서 쉬고 있는 둘째의 페이스북에 올라있는 푸념(?)을 읽으면서 나도 무언가 보태지 않을 수 없어 더헤 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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