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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Jun 07. 2019

발 빠른 출항을 기원합니다.

지금 세바스토폴 항구에 머물고 있는 선원들을 응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 격변하는 지구 상 한 곳인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에서 발생한 정치적인 변혁으로 인해 애꿎은 선원들이 볼모 아닌 볼모로 되어 기약 없는 세월을 기다리게 된 형편이 그곳 세바스토폴 항구의 부두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전해 들으며 마치 내가 당하는 일 같이 걱정이 되는 싸한 속 쓰림을 맛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라고 이름 지어야 하는 걸까? 하여간 우크라이나의 한지역인 크림반도 지역 주민들이 주민투표로 그 지역 전체를 우크라이나에서 떼어내어 러시아로 합병시키는 나라를 바꾸는 찬반투표를 행했는데 과반이 훨씬 넘는 찬성투표로 국호를 러시아로 합병하자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세계적인 관계 당사국 간의 첨예한 이해가 걸리게 된 이 일의 진행과 결과를 놓고 EU와 미국은 합병 반대하는 국제 정세 몰이를 하지만, 러시아는 오불관언인 채 오히려 일사천리로 크림 지역을 러시아에 합병하는 발 빠른 행보를 취하고 있기에, 현재의 대세는 합병이 끝나가는 형세로 흐르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급히 모스크바로 날아가 합병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러시아 당국에 심히 우려를 표명하는 코멘트를 했다는 토막뉴스를 접하면서 텔레비전 화면을 본다.


 마침 푸틴과 만나서 악수를 한 후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는 반 총장의 모습으로 장면이 바뀌었을 때, 옆자리에 배석한 듯한 러시아 인이 흘기는 듯한 눈길로 반 총장 쪽을 쳐다보는 모습도 보인다. 


 어쩌면 북극의 곰이라는 별칭을 가진 러시아가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는데 너는 왜 걸림돌이 되는 일을 하느냐? 하 듯이 흘겨보는 사람으로 비쳐 보이는 장면이라 비록 유엔 사무총장이지만 힘의 한계를 가진 채 중재하는 반 총장님의 모습이 애잔하게 비치니 이 역시 순간적으로 씁쓸한 마음 품게 한다.


 그들 나라 간의 다툼과는 무관하게 단지 해상물동량을 그곳 크림의 크리스토폴 항구에서 내려주려고 입항하였고, 짐을 풀어준 후 출항시간을 받아 놓고, 출항 전에 주부식 수급을 끝내려고 하던 중, 이미 실린 주부식 대금도 챙기지 않고 황급히 소식이 끊긴 선식 업자나 역시 무소식인 대리점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리게 된 일이 그 배에서 발생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단다. 그만큼 현지의 어려움은 급박하고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일 것이다.


 그 배에 승선 중인 선원 중에 사관들은 모두 한국인이고 부원선원들은 필리핀이거나 인도네시아인으로 혼승 된 수출 선원들이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해상생활을 하고 있는 속칭 수출 선원이라고 불리는 외항선의 선원들이다. 


 그중의 한 사람과 어떻게 둘째가 소식을 주고받다가 뉴스를 접해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현실에 아무런 도움되는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에 마음만 답답할 뿐이다.


 전적으로 타의에 의한 일이지만 어쩌면 훗날 역사적인 사건의 소용돌이치는 한 귀퉁이에서 직접 그 역사적인 광경을 만나고 보면서 겪게 된 현장 증인이 되어버린 지금 그곳 부두에 접안하고 있는 배에 승선하고 있는 선원들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답답해하고 초조해 있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는 나 자신이 점점 더 초라 해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 

러시아에 날아간 김에 그렇게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어버린 크림의 세바스토폴 항에서 발목이 잡혀 있는 선원이 한국인임을 알려드리오니 그들이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 평화로운 항해를 이어갈 수 있게 조처해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이면 반기문 총장님께서는 이미 뉴욕으로 돌아가 계시겠지만.....


 이렇듯이 지푸라기라도 잡아 물에 뜨고픈 마음 닮아 어떻게 라도 반 총장님에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그런 고립된 속에 갇혀 제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선원이란 생활을 내 일생을 두고 해온 의리로서라도 안 할 수가 없어 보입니다. 


 그들의 배가 어서 빨리 묶어 놓았던 Shore Line을 거두어들인 후 차항으로 예정했던 항구를 향해 무사하게 출항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2014년 03월 22일


 


ps:

크리스토폴 항의 현재 상황은 어쩌면 1975년 4월 30일 월맹군이 사이공에 탱크를 앞세우고 입성함으로써 월남이 패망에 이르게 된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로 비교되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에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음을 첨언해야겠다.


당시 미국 등과 함께 월남 정부를 지지하며 국군의 현지 파병마저 하고 있던 중, 자주적인 정권으로 되었다고 판단하여 파병을 철수한지도 2년 정도 지날 무렵이었는데, 우리나라에겐 이 사건(사이공 함락)이 심한 좌절감을 맛 보이며 다가선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간 그곳에 파견이나 방문으로 거주하며 일을 하고 있던 우리 국민은 그날 힘들게 그곳을 빠져나오는 고역을 치러야 했었는데 물론 못 빠져나와 억류된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나는 S해운 소속인 M호의 선장으로 근무하며 포대 시멘트 4천 여론을 그곳 사이공 항에 실어다 주는 항차에 임하고 있었다. 


베트콩의 구정공세(뗏공세)가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가는 속에 어수선한 민심으로 불안한 치안에 겁먹어 상륙은 생각도 못하고 배 안을 지키며 짐을 다 풀어 준 후이지만 양륙 서류조차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출항을 하는 일을 당하였다.


그렇게 쫓겨나듯 출항했지만,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출항 후 며칠 지난 항해 중에 월남 패망의 뉴스를 전해 들으며, 조마조마한 초조감 속에 출항을 기다리었던 지난 며칠 간의 불안했던 상황이 새삼 지금에 떠 오르며, 크리스토폴 항에서 앞날의 일을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우리나라 선원들의 고뇌에 찬 모습과 오버랩되는 느낌을 가지기에 사족을 달아가며 이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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