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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혼 나비 되어 날아갔는가

9번 창에서 인명 안전사고 나다

by 전희태
9번선창.jpg 물끝이 닿는 윗쪽높이에 족장을 설치하고 윙탱크 점검및 수리를 한 후 족장을 철거중에 사고가 남.


점심 식사를 본선에서 냉면으로 대접하겠다는 초청을 조선소 측에다 며칠 전에 하여 두었기에 조선소의 사장, 부사장, 영업본부장, 기획본부장, 도크 마스터, 본선 담당 SRM 두 사람 등이 본선 모임에 찾아올 시간을 대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작업복 차림으로 수리 작업을 지원 독려하느라고 미팅 룸에 있다가 나만이라도 통상복으로 입어 아무리 작업 중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에 와서 옷을 갈아입으며 우연히 앞창을 통해 갑판 쪽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마침 9번 창 좌현 쪽 족장을 아슬아슬하게 철거하는 인부를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군, 실족해서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지. 하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었었다.

그런 마음 때문에 한 번 더 유심히 그 인부를 살폈는데 마침 허리에 안전벨트는 매고 있지만 고리는 걸지 않고 작업을 하는 걸로 보여 왜 안전벨트를 제대로 안 맸지? 하는 마음에 급히 소리쳐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하지만 소리침 자체를 당장 그쪽에서 당장 들을 수도 없는 상태이고 또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 절차가 매우 난감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그곳까지 내려가기에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어쩔 수 없이 그냥 미팅 룸으로 내려갔다. 마침 대리 점원이 승선하였기에 세관에서 체크하려는 페인트 관계사항을 이야기하며 9번 창에 대한 관심은 접어버리게 되었다.


1035시.

임시 미팅룸으로 사용하는 발라스트 컨트롤 룸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우리 배의 수리 담당 SRM인 S차장이 느닷없이 뒤로 돌아 서며 소리친다.


-사고가 났어요. 말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들어 사무실로 급하게 연락을 한다.

-작업자가 홀드로 추락하는, 안전사고가 발생하였어요. 급히 앰뷸런스를 수배해주세요.


마침 대리 점원과 독크 기간 동안 사용한 페인트의 남은 양에 관한 세관에 보고할 사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든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내 방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리며 섬뜩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아! 추락 사고가 났구나. 하는 감을 즉시 눈치채고 창쪽과는 등을 돌리어 앉아있던 대리 점원에 사고가 났음을 알렸을 때, 그 역시 내 이야기를 황당해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았는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S차장은 선창에서 족장 철거를 하고 있던 조선소의 인부가 자신이 철거하던 족장의 발판 한쪽이 밑으로 떨어지는 것과 함께 그대로 추락하는 사고 광경을 창밖을 보던 중 우연찮게 생생하게 포착하였던 것이다.

사고는 본선의 9번 선창에서 난 것이다. 족장이 설치돼 있던 곳에서 바닥까지는 22미터 높이로 아래 바닥은 탱크톱 위 다블보톰의 철판이다.


해치 코밍 등의 선체 구조물이 가리고 있어 미팅룸 창을 통해서는 탱크톱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쿵> 하니 떨어져 부딪치는 소리는 들었단다.


나도 얼른 창가로 다가서서 밖을 내려다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우울한 표정으로 9번 창 햇치 코밍 사이드에 둘러서서 홀드 내부로 눈길을 고정한 채 내려다보고 있다.


예전 2 항사 시절,

어둠 속의 트윈 데크 홀드에서 실족으로 인해 로워 홀드 바닥으로 떨어져 1 항사가 사망한 사고를 당했던 적이 있다.


그때 자세히 살폈던 끔찍한 기억이 새삼 눈에 선해지니, 밖으로 나가서 선혈이 낭자한 사고 현장인 홀드의 밑바닥을 내려다보고 싶은 생각은 아예 덮어버렸다.


그냥 창을 통해 9번 홀드를 보고 있으려니 부근에 있던 인부들이 해치 코밍에 허리를 대고 길게 늘어서서 침통한 표정들로 선창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보일뿐이다.


잠시 후, 연락받은 조선소 안전팀에 의해 선창 내로 내려지는 들 것이 모두의 눈길을 붙잡아주고 있었다.

바로 이때, 9번 선창 아래에서부터 갑자기 우리나라의 배추흰나비보다는 조금 커 보이는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불쑥 너울거리며 떠오르더니, 마치 사방을 휘휘 들러보기라도 하는 듯 몇 번을 가로로 세로로 날다가 이윽고 해치 코밍 밖으로 천천히 솟아올라 바깥바람에 휩쓸리듯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내 뇌리에 각인된 그 나비는 사고를 당한 베트남인 작업자의 넋이 유체를 빠져나와 하늘나라로 가는 영혼의 현시 인양 느껴지게 만들어,


-아! 사고자는 명을 달리하여 저 세상으로 갔구나~ 하는 불행한 사고의 결과를 현실로 남겨주는 듯하다.

더욱 묘한 것은 그렇게 흰나비가 선창 밖으로 날아 어디론가 가는 순간에 즈음하여, 사고자를 실은 들것이 두 사람의 동료에 의해 곤돌라에 태워져 30톤 크레인으로 천천히 들어 오르며 내 시야 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고자는 연락을 받고 달려와 부두에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지만 소문은 이미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나의 이상한 관심이 맞아떨어져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라고 나에게 주어진 경고를 놓쳐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심기가 불편해진다


S차장도 이틀 전에 이곳에 부임하여 본선 담당을 인계받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부임 초에 안전사고가 났으니 안 되었다는 마음도 들었다.


우리 배에 올라온 인부들은 내일 오전의 본선 출항 시간에 맞추려고 바쁘게 움직이던 중이었다.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잠시 일이 중단되며 숙연한 분위기로 변했음을 감지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느냐 싶게 다시 자신들의 일에 복귀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조선소에서 이런 식의 인명 사고가 나면 그 순간 모든 작업자가 일손을 놓고 적어도 하루는 모든 작업이 중단되는 게 관례이란다.


이곳은 아직 그런 전통이 생기기에는 일천한 조선소라서인지 자신들이 하던 작업에 계속 복무하므로, 내일쯤 출항하려는 본선 입장에서는 무척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비정하기는 하지만 본선에 무관한 사고라는 점을 관계부서들에 알리며 사고의 뒷수습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그 사고로 인해 본선의 출항이 늦어지거나 영향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우선은 비나신 조선소 측에, 본선이 잘못 하거나 책임이 없는, 이 사고로 인해 본선 운항에 지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이야기를 건네었다.


그렇긴 하지만 사고가 본선에서 났으니 사고에 대한 보고는 즉시 회사로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승선 중이던 감독 역시 우선적인 간략한 보고서를 회사로 보냈다.


나는 이 사고에 본선의 책임이 없으니 조선소에서 모든 책임을 가진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여 담당 SRM인S차장의 서명과 회사 감독의 서명을 받도록 하였다.


사고자가 실려나간 선창의 현장은 그대로 작업이 중단된 상태로서 관의 현장검증이 있을 때 까지는 그 상태대로 현장 보존토록 조치되었는데 내일 오전 중에 나트랑으로부터 경찰관이 온다는 예정이며, 아마도 30분 정도면 끝이 날 것이란 이야기도 전해진다.


작업자의 신원은 이곳 HVS의 외주 업체인 SOLAR VIEW(사장은 한국인 KR S 사장) 소속의 공원으로서 일차적인 모든 뒷감당은 그 한국인 사장이 해야 하기에 보상에는 HVS가 상관없는 상황인 모양이다.


하나 이곳 지방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조선소가 일단은 뒷수습을 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여야 될 것으로 보인다.


사고자는 27살 난 청년으로 결혼하여 아이도 있으며, 자신의 사장인 S 사장이 세 들어 살고 있는 같은 동네에 사는 청년이란 말도 나온다.


현장의 상황이나 남겨진 작업 현장을 돌아보건 데 본인의 실수이기 보다는 해치 폰툰 위에서 함께 작업을 하던 동료가 잘못하여 일어난 사고라는 생각이 대부분의 현장 부근에 있던 한국인의 의견이었다.


왜냐하면 족장을 묶어두었던 철사 줄은 한 가닥이 2파이의 굵기로서 한국에서 그 파단력을 실험한 수치가 1,2톤이나 되는데 그런 철사 줄 6개를 함께 하여 묶어 준 족장이 작업자의 무게로 떨어져 내린 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또한 상부 갑판에서 지탱하고 있던 철사가 끊긴 상태인걸 보면 밑인 선창 안에서의 작업자 위치를 확인하지 않은 위의 작업자가 철사를 끊은 것으로 나타났고 추락된 위치도 바로 직하방이 아니라 비스듬히 뒤쪽으로 비껴간 곳이다.


떨어지는 순간을 보고 있던 S차장도 작업자가 허리에 매어있는 안전벨트를 차고서 작업을 이끌어 오던 작업 광경을 계속 유심히 보던 중, 추락하는 현장을 목격하는 순간 작업자가 손으로 잡으려고 하던 모션과 흰 줄이 뻗히는 걸 보면서, 안전벨트가 걸려 있으면 살 것이고 아니면 죽을 것이란 생각과 함께, 밑으로 떨어지더라도 혹시 바닥에 샌드 브라스트 한 모래가 많이 쌓여있는 곳에 떨어지면 살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까지 순간적으로 했었단다.


결과적으론 두 가지가 다 이루어지지 않고 안전벨트의 줄이 매어진 철사에서 빠져나오며 그대로 추락하게 되었고, 밑에도 충분한 모래가 없어 그냥 맨 탱크톱의 철판 위로 떨어져 순식간에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셔, 추락 즉시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때 그 선창 안에 들어가 있던 흰나비가 다시 밖으로 날아오르던 타이밍이 내 눈에는 남다른 극적인 장면으로 보이게 한 것일 게다.


사고자와 흰나비가 무관함을 설명하려고 그런 과학적인 추리를 해보지만, 그냥 본 대로 느낀 대로의 그날 그 시간 그곳의 상황은 지상을 떠나는 한 영혼의 비상으로 보여 내 가슴을 착잡하게 파고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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