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남자들 천국, 변명 그리고 흥정
현대 비나신 수리 조선소 야간 전경. (인터넷 현대 비나신 사이트에서 퍼옴)
비나신 단상 1.
비록 인명사고는 났지만 작업은 그대로 진행이 되어 마지막 청소를 위해 여자 인부까지 동원되어 선창을 청소시킨다.
샌들을 신고 온 그녀들을 그 복장 상태로 홀드 래더(선창 내부 사다리)를 통해 선창에 내려 보낼 수는 없으므로 곤돌라에 태워 크레인으로 내려 주고 있다.
먼저 곤돌라에 타고 있던 여자가 갑판에 떨어져 있는 동료에게 빨리 와서 같이 타자고 손짓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놀이동산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려고 할 때 먼저 타고 있던 친구가 같이 타자고 동료를 부르는 모습을 영판 빼닮아 있다.
단지 얼굴까지 수건으로 덮어쓰고 먼지를 피한답시고 온몸을 가린 상태가 이들이 쓰레기를 쓸어 담는 험한 일을 해야 하는 작업원이란 점을 새삼 일깨워 준다.
비나신 단상 2.
한국인들 같으면 인명사고가 나면 전 작업장이 손을 털고 동료를 위해 그날의 작업을 쉬는 관례를 지켜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마치 사고를 구경하는 듯한 모습들로 모였다가, 그나마 멀리 있던 사람들은 잠깐 쉬며 이야기를 나누더니-다시 작업에 복귀한다.
오랜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해 아직도 인명 경시 풍조가 남아 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
비나신 단상 3.
이 나라는 남자들의 천국인 것 같다. 여자들의 손은 거치른 노동으로 찌들어 있는데 남자들은 빈둥빈둥 술이나 먹고 건달 생활을 하는 것이 자랑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진 것 같고 여자들도 그런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양가집의 여자를 보고 느낀 것은 아니지만 조선소 주변의 마을에서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발소도 여자 이발사가 머리를 깎고 면도도 하고 모두가 여자가 하는 일이며 식당의 주인 여자도 손이 항시 물을 써서 험하게 되어 있는데 남자는 물 찬 제비 마냥 멋을 내고 있다. 같이 장사를 하는데도 말이다.
남자들은 전쟁하는데만 필요하고 이제 평화가 왔으니 필요가 없어진 것인가? 수개미나 수벌의 이미지를 그들을 보고 떠올린 내가 너무 비약한 것 같지도 않다.
비나신 단상 4.
베트남인들 앞에서 신경질을 내고 화를 돋우며 소리를 지르면 그들은 잠시 관심을 주는 것 같아도 그뿐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한국인을 비웃어 주며 즐기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된단다.
그렇긴 해도 작업의 결과를 검사한 후 미진한 점이 많아 다시 작업을 하라고 지시해주니 이번엔 시간만 보내고 있다가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다시 검사를 청하러 오는데 결과는 전번 검사한 곳에서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고도 버젓이 검사 요청을 하는 모습을 보면 뻔뻔하다는 말도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철판 깔기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단다.
그들을 대할 때는 화를 내지 말고 다시 시킬 때도 참고 오히려 능글능글하게 대하는 것이 그들을 이겨내며 일을 치러가는 방법이란다.
물론 검증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돈벌이를 하며 몇 년을 살아온 한국인이 하는 이야기이니 어느 정도는 믿을 수 있어 보인다.
비나신 단상 5.
일을 시키다 보면 베트남인들의 작업하는 양상은 시킨 일만 겨우 해내고 우리가 볼 때 얼마든지 해낼 수 있고 방법도 여러 가지인 일을 그들은 한 가지 방법을 고집하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으면 중간에 그만두고 안 하는데, 어떤 경우 <돈내기 작업>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부릴 수가 있단다.
평소의 하던 대로라면 결코 끝낼 수 없는 일로 보여도 일단 <이일만 끝내면 오늘 집에 가서 쉬어도 된다!> 하는 조건을 주며 일을 시키면 두세 시간 내에 일을 끝낸 후 집으로 간단다.
물론 자주 사용하면 그것도 통하지 않지만 한 달에 한번 정도라면 좋은 방법이란다. 하지만 공기업이나 큰 회사에서는 공식적으로 그런 조건을 내걸고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니 비나신 조선소에서는 다른 방법의 조건을 개발해야 할 것 같다.
결국 베트남인의 이유 대기를 위해 내뱉는 변명은 극치에 이르는 예술이라는 표현이 알맞다고 하며 절대로 베트남인에게 변명을 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들을 한다.
비나신 단상 6.
물건을 흥정하며 같은 물품을 많이 사면 대량 판매에 대한 에누리도 해주는 게 보통의 우리 한국 사람들의 상관습인데 월남인들은 일단 값을 매기어 가격에 대한 흥정이 끝나면 하나를 사던 열 개를 사던 똑같은 가격으로 판매를 고집하여 더 이상 깎을 수가 없도록 옹고집을 피운다.
(그런데 엊그제 조개껍질을 사려고 갔던 상점의 아주머니는 한국말도 잘하고 에누리도 잘해주는 편으로 문득 한국말을 하는 문화적인 습성이 그녀로 하여금 에누리를 해주는데도 인색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는가 묻는 말에 웃으며 사전으로 배웠다며 한글도 써 보여 주었는데 글씨도 반듯반듯하니 잘 쓰며 존대 말도 제대로인 한국말을 쓰고 있었다.
전직이 선생님이었다는 그녀는 14살 난 막내딸과 아들도 함께 가게를 꾸리고 있었는데 한국인들의 출입으로 제법 돈도 번 것으로 보였다. )
비나신 단상 7.
도킹 기간 중 미팅룸으로 쓰고 있던 발라스트 컨트롤 룸에다 안전작업화를 챙겨두고 필요할 때 바꿔 신고 나가던 2항사의 안전화가 낡은 베트남의 안전화로 바꿔치기된 걸 모르고 신을 찾던 2항사가 낭패를 당하였다.
그래도 그 친구가 슬그머니 안전화만 들고 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이 280짜리 큰 신발이 배에 여분으로 없는 실정이기에 그냥 벗어놓고 간 그 낡은 신발이라도 요긴하게 된 것이다.
이곳 외주업체의 한국인 사장이 자신의 월남인 작업자가 다 떨어진 안전화를 신고 있던걸 기억하여 그것으로나마 바꿔주고 싶으니 가져가도 되겠냐고 2항사에게 물어봤을 때, 우리의 항해장(2항사)님은 그나마라도 신어야 되겠다며 완곡히 거절하였던 것이다.
비나신 단상 8.
도둑들 8-1
조선소 내에서 잠깐만 한눈을 팔면 돈이 될 만한 물건을 훔쳐나가는 풍조 때문에 전기 파트에서 중요한 동선을 지키도록 특별 경비를 세워 놓았었다.
아침에 퇴근하던 그 근무자가 정문에서 절도 현행범으로 잡혔다 하여 알아보니, 지키라고 한 동선을 자신의 당직 근무 중 짧게 잘라내어 온몸에 숨긴 채 아침 퇴근 시간에 나가다 잡힌 것이라고.....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는 낭패를 본 것이다.
도둑들 8-2.
STOOL의 맨홀을 도크 주관 하에 열고 닫게 조처를 했는데 그 빼어 놓은 SUS BOLT를 공원들이 한 개 두 개씩 들고 가버려 모두가 없어져 버려 출항 전에 다시 닫으려다가 멈칫하게-출항 중지- 된 일이 발생하였다.
칠하라는 페인트 작업은 마다하고 서스 볼트(스테인리스 스틸 볼트)나 훔치는 도둑을 키웠나 싶은 생각에 현장 담당자의 씁쓸했을 심정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비나신 단상 9.
처음 가격을 결정하고 탔던 오토바이 뒷좌석이었는데-그것도 사실은 턱없이 비싼 운임이지만-밖에 나가서 중간에 다른 곳을 잠깐 들렀다가 왔으니 요금을 더 내라고 떼를 쓰는데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게끔, 땅에 앉아 두발을 버둥거리는 식의 떼까지 쓴다고...
그런 떼쓰기에 어쩔 수 없이 당해서 그들이 요구하는 요금을 물어야 했던 경험을 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