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묻히게 될 세월호 사건이지만, 잊지 않을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1.
오늘로서 지난 4월 16일 오전에 맹골수도에서 발생한 청해진해운 소속의 여객선 세월호가 속절없이 물속으로 누워버린 침몰 사고가 어느새 만 엿새째를 넘기고 있다.
지금도 그들 실종자들이 차가운 물속의 배 안이지만, 어느 한구석 안전한 에어포켓에서 꼭 살아 있다가 잠수부들에 의해 구조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지기를 기원하는 가족과 온 국민의 염원은 계속 현장 부근이나 방송매체 앞을 지키고 서성이며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추억을 만들어 받을 즐거움 속에 수학여행을 떠났던 안산 단원고교 학생들과 또 다른 탑승객들의 학부모나 가족들이 피붙이의 생사확인을 못하여 애타게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밤 새우며 기다리고 있는 애달픈 사연은 온 국민, 아니 전 세계인들에게 까지도 도달되어 희망의 응원은 이어지건만 붙잡을 길 없는 매정한 시간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마냥 흘러가고 있다.
이미 청춘의 수많은 새싹을 모질게도 앗아갔건만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더 보내야 할지 모르는 현실에서 지금의 슬픔이 크면 클수록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원인을 철저히 밝히어, 개선할 사항은 하나도 빠짐없이 바꾸어 주어서 앞으로는 이 나라에서 같은류의 사고가 없어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맘으로 나만이라도 비정한 냉정을 되찾고 싶다.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려면 꼭 필요한 선체 인양 작업의 시작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구조 상황을 완벽하게 끝내고 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니, 아직까지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으로 계속 미뤄지고 있다.
가족들의 애절한 바람과 더불어 전 국민의 염원이 되어 있는 생환의 기적이 진심으로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며 우리들은 이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언 사고 발생이 일주일 째를 넘어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늦어지는 구조상황에 점점 희박해지는 생환의 바람은 더욱더 실낱같아 지건만 그래도 버리지 못하는 가족들의 아픈 현실이 너무나 처절하기만 하다.
이렇듯 흐르는 시간은 희망을 거두려 하건만 우리들은 아직도 생환의 기적을 맘속에서 밀어낼 수가 없구나!
하지만 하지만 실종자들의 평온한 수습을 위해 정조의 물 때면 최대의 잠수 인원을 투입하며 잠수를 계속하는 잠수부들의 어려운 형편에 응원을 보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조바심은 슬픔을 곱씹어 보게 만들고 있다.
남아 있는 실종자들이 생존자로 바뀌어질 기회는 더욱더 어려워 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끝까지 행방불명으로 남겨져 부모와 가족에게 더욱 치유하기 힘든 큰 멍에를 지워주는 일만큼은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조용히 바랄 뿐이다.
2.
직업이 선원이었던 나의 경험이 판단을 흐리게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제 사고의 현황을 가장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물 위에 뜰 수가 있다고 모두가 다 선박은 아닐 것이다. 사실 제대로 된 선박이라면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부력을 유지하며 계속 떠 있어야 할 것이다.
스스로 부력을 상실하여 비스듬히 넘어져 짧은 시간 안에 침몰해 버린 이 사고 선박의 행태는 제대로 이해해 주기가 쉽지 않은 人災가 내재된 원인이라는 판단을 굳히게 한다.
회사나 본선에서나 돈벌이를 위해 비뚤어지고 잘못된 관행으로 굳어버린 과적 조치를 위해, 선체 안전 부양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과학적인 계산근거를 무시한 채 운항을 계속하던 것이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그간 선사나 본선 양쪽 모두 그런 운항 패턴을 되풀이하면서 더욱 안전불감증은 증폭되었을 것이고, 그 자체가 사고나 이상이 없는 당연이란 착각을 쌓아왔을 것이다.
드디어 극에 달한 안전 무시가 이번 항차 운항 중에, 배라면 언제 어디서나 당연히 실행 가능한 변침 중에 돌이킬 수 없는 선체 경사를 일으켰고 곧바로 그 후의 사고로 서서히 이어진 것이리라.
그야말로 어떤 힘에 의해서 기울어지는 일이 생겨도 오뚝이 마냥 되짚어 똑바로 일어서야 하는 숙명을 가져야 하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과학적 구조물인 배에서, 배라는 의미를 기본적으로 지탱해주는 복원력을 무시한 데 대한 큰 벌을 애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빼앗겨가며 덮어쓴 것이다.
나는 정녕 진정한 배라면 신조 후, 운항중 만나게 되는 태풍 조우 같은 숱한 역경에서도 적절한 복원력을 가졌기에 끝까지 물 위에 떠있을 것이고, 어느새 나이 들어 은퇴가 결정될 때면, 선박다운 종말을 위해 어느 바닷가(선박 해체 소)를 찾아가 스스로 육지로 올라가 승양(BEACHING)하는 폐선 과정에 들어가 하나하나의 철판 조각으로 분해되면서 새롭게 탄생할 후배 선박의 밑거름이 되어주는 생으로 마감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야 말로 바람직한 선박의 일생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헌데 본분의 삶을 망각하여 항해 중 가해지는 조그마한 힘도 이겨내지 못하고 그냥 전도되어 뒤집어져 버린 것은 그 배가 원천적인 구조적 결함을 가졌거나 또 그런 결함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런 점을 이용하고 있는 미필적 고의가 의심되는 눈가리고 아옹식의 운항을 한 선사에게 원천적인 잘못을 따져야 할 것으로 믿어진다.
그간 난무하는 여러 소식들 가운데 그 배를 만든 일본 조선소에서 세월호보다 일 년 늦게 건조되었던 선박이 경사로 인해 침몰한 사건이 있었다는데, 아마도 시리즈 도면으로 만들어졌을 것인 그 배의 침몰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은 그런 내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이 배를 국적선사가 중고선으로 도입 후 상가 하여 대대적인 개장 수리하면서 선미 쪽의 갑판을 선실로 확장 개조하는 등, 배의 톤수를 불리려고 선체 상부 측에 큰 수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수리사항을 감독하여 각종 선박증서를 발급해주는 선급에서는 불어 난만큼의 톤수를 감당할 계산된 발라스트를 꼭 더 싣고 운항하도록 단서를 붙여 발급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어떤 이유가 있어, 정해 준 그 규정을 지키지 않고, 화물의 선적 보고를 실제량보다 적게 하였다. 이럴 경우 실제 침하하여 표시될 흘수 표시를 거짓보고에 맞추기 위해서는 규정된 발라스트 양을 줄이거나 아예 싣지 않고 흘수만을 맞추고 출항하는 편법 - 아니 불법 - 을 저질러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과적한 화물과 규정된 발라스트를 다 함께 실었을 경우엔 그만큼 선체 침하량이 많아져 이마저 안전 흘수를 넘긴 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될 것이고, 침하량이 늘어난 만큼 선속도 떨어지는 약점 또한 있다.
이 모든 과적을 커버하기 위해, 선적 안전의 기본인 발라스트의 적절한 주입을 볼모로 만들어 버린 현실은 이미 선원의 건전한 상무를 포기한 만용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듯이 복원력을 현저히 저해하는 나빠진 무게 중심의 상승을 눈감아주며 출항했을 때, 더하여 항해 중엔 선체 하부에 있는 연료유의 소비까지 겹쳐져 더욱 불량하게 가중될 무게중심의 상승 상태는 조그마한 변침에도 슬그머니 옆으로 기울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반작용인 복원력의 작동을 점점 더 없애주게 했을 것이다.
보태지는 나쁜 조건이 또 있었으니, 출항 몇 분 전 까지도 화물 선적이 있었다니 - 이는 제대로 된 화물 고박을 하지 않고 출항했다는 뜻 - 선박 안전을 태만히 여겼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항해 중 황천을 만나는 등 선체 동요가 일어날 경우 한쪽으로 기울어진 경사 상태에서 고박되지 않아 미끄러지며 움직인 화물 - 자동차, 컨테이너 등 - 이 더욱 경사를 부추기며 휩쓸리게 되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순식간에 돌아올 수 없는 경사 한계를 넘어서게 되어 결국 침몰이라는 극한 상황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사고는 모든 사항이 그 사고를 위해 함께 도와주는 복합적인 형태가 되었을 때 발생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렇게 열거한 작은 원인들이 서로 돕고 보강해가며 사고를 향해 달렸음을 알아야 한다.
위의 사항 중 한 가지라도 철저히 대비가 되어있었다면, 이번 사고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3.
그런데 여기서 선원들은 왜 일을 이렇게 까지 하면서 승선한 것일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짐작하건대 이들은 지금껏 주위의 동료들도 그렇게 행동하며 승선을 했고, 그렇게 했다고 해서 아직 까지 별다른 일도 없었으니 괜찮겠거니~ 하는 나태한 무사안일 주의에 빠져 직무수행을 하였던 것은 아닐까?
사실 지금 그들에게는 열심히 해야 할 동기도 없어 보이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상황이 지금 보다 더 나아질 향상도 보이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생활한 것이라는 내 짐작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는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이들은 아무도 정식 직원으로 고용되어 근무하는 사람이 없다. 이 회사가 나의, 우리의 회사라는 소속의 일체감은 생각할 수도 없는 임시 고용직으로 근무하는 것이다.
배에 승선함으로써 고용이 성립되고 그 후 연가기간이 되어 배를 내리는 순간이 되면 바로 그날로 고용해지가 되어 실업자가 되어야 하는 계약직이란 관례가 선원 사회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전통은 아니다.
내가 승선 생활을 시작한 1960년대에는 선원-사관과 부원 모두 포함하여-은 해운회사에 입사하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그때부터 호봉을 갖고 급여를 받았다.
근무연수에 따라 호봉도 승급하는 내 회사 우리 회사라는 친근감을 가진 평생직장으로 근무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승선 중에 어지간한 어려운 일에 봉착할지라도 당연히 내 할 일로 받아들이고 자진해서 앞장을 설 정도로 회사와(근무 중인 선박과) 일치감을 가진 풍토로 승선 생활을 하였었다.
나도 당연히 그런 마음으로 승선 생활을 하면서, 선내 화물창 화재, 타선과의 충돌, 산호초에 좌초, 실족에 의한 선내 추락사 같은 험한 일들도 경험해 가며, 최선의 안전 대처를 배워나가는 어쩌면 필요한 경험을 쌓으며 생활해 온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세기말 - 여기선 20세기 - 이 되면서 선사들의 분위기는 선원의 임금이 많이 높아져 경영자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면이 있다고 생각했음일까?
국적의 메이저 해운 선사들도 그동안 잘 유지하던 평생직장 개념을 털어내고 앞다투어 자신의 산하에 새로이 자회사로 매닝(선원 관련 사무 만을 취급하는) 회사를 차리어 선원들을 그 회사에 소속시킨 후 필요시마다 개별적으로 고용하는 임시직으로 전환시키며 선원관리를 시작했다.
마치 짝사랑은 했지만 그래도 훈훈한 정이 알게 모르게 소통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좋은 결말을 꿈꾸며 살아오던 사이었는데, 어느 날 난데없이 나타난 불한당 같은 놈에게 짝사랑을 빼앗긴 처량한 모습 되면서, 저항 한번 변변히 못하고 팽개쳐진 스스로의 모습에 자조하는 사람의 심정이라면 이랬을까?
좀은 허망하고 씁쓸한 자괴감에 그 후 한참 동안은 선내 생활을 의욕 없는 마음으로 지내야 했었다.
사실 그 당시는 정년퇴직도 걱정 없이 내 회사로 믿으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반강제적으로 갑과 을의 크나큰 입장 차이를 절감하며 받아 들어야 했던 그런 처사에 내가 받았던 서러움, 괘씸함,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했던 배신감이란 아직도 그때를 반추할 때면 새삼스런 아픔 되어 다가서는 일이다.
새로운 갑과 을의 입장으로 계약하며 승선 생활을 하고 있는 이 나라의 선원들에게 최고의 매너와 최상의 행동만을 요구함은 너무 일방적인 갑의 횡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선원이었기에 그들 속사정을 알고 있어서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
4.
그렇다고 해서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특히 선장과 해기사들이 보여 준 행동이 바늘 끝만큼이라도 옳은 판단에 의한 행동이란 변호는 입이 열개라도 결코 할 수가 없는, 아니해 줄 생각도 전연 없다.
아무런 변명도 통 할 수 없는, 승객들과 배를 다 버리고 남 먼저 구조된 그런 비겁하고 치사한 행동을 그들은 벌려 놓은 것이다.
비난받아 마땅한 그들이 보여준 행동 때문에 이 나라의 해운을 오늘에 까지 끌고 온 수많은 해기사들이 얼마나 가슴을 치며 분통해하고 있는지 주위를 살펴봐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을 뿐이다.
지금도 세계의 어느 항구 어느 해역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한국 선원과 한국적 선박들에게 이일로 인해 가해질 유무형의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생각 안 할 수 없게 된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서 만약에 친지 중에 선원으로 일하는 분이 계시거든 이번 사건으로 위축되고 죄송해하며 힘들어하는 그분들의 마음을 함께 나누며 위로해주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5.
배에서 선장이란 직책은 법으로도 열거한 고유의 권리와 권한이 여러 가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육상 - 회사 등 - 과도 시간차 없는 통신이 가능하고, 통신사 직무 마저 항해사들에게 맡겨버리고 세계의 어느 곳 어떤 시간에서도 회사의 지시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현실에서, 고유한 선장의 권한이나 의무는 이미 예전 같은 권위는 가질 수 없는, 어찌 보면 일개 피고용인의 지위로 강등당한 듯싶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바다에 나서서 자신이 지휘하는 선박에 승선한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하며, 실려진 화물과 선박 자체에 대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킴이로 목적한 곳까지 안전하게 운송하고 보존해 줄 의무는 모든 것에 앞서야 하는, 아직도 변할 수 없는 선장의 권위를 지켜주는 근본적인 명예로운 일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걷잡을 수 없는 위험에 빠져 들고 있는 배에서 판단을 잘못하여 본선을 떠나지 못하게 방송으로 발목을 붙잡아 둔 승객들까지 유기한 채, 부화뇌동하여 제일 먼저 배를 탈출하는 파렴치함의 극치를 보여준 선장과 얼떨결에 그를 따라 준 선원들의 현장대처는 생각할수록 내가 해기사였고 선장이었음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들은 해운사에 길이 남게 비겁한 사람으로 치부시켜 살아남은 세월이 부끄러워 제일 먼저 탈출한 일이 길이 후회되는 사안이 되어도 할 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명령계통을 세워야 하는 배에서, 따라야 하는 일로 배운 초급 해기사들이나 부원 선원들에 대해서 만큼은 정상을 최대로 참작하여, 위축될 수 있는 선원 세계를 돌보는 의미로서라도 선처가 있어야 한다고 조심스레 부연하고 싶다.
항양선에서는 배를 직접 운항하는 라인을 총칭하여 선원이라 하지만, 그중 여객선에서는 직접적인 운항 당직에는 관여치 않지만 별도로 승객들을 상대로 특별히 승선 근무하는 그야말로 속칭하는 뱃사람일 수가 없는 뱃사람이 있다.
헌데 이번 사고에서 이런 분들 중에 자신이 입어야 할 구명동의 조차 아이들(학생 승객)에게 양보하며 끝까지 구조를 위해 애쓰다가 그대로 난입하는 물살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젊은 여성 승조원의 이야기가 있어 우리 모두에게 감동과 애잔한 아픔 그리고 선한 마음을 스스럼없이 남겨주고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무책임하게 버리고 떠나는 우두머리가 있는 반면, 그런 사람 아래에서 조차 목숨을 바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낸 젊은 살신성인의 귀감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고 길이 기려주어야 할 것이다.
6.
육상에서, 바다에서, 또 하늘에서, 심지어는 땅 속에서 까지 대량의 인명이 살상된 사고의 역사를 우리는 손가락을 다 꼽아가며 채워 줄 수 있을 만큼 많이도 가지고 있다.
예전에 시랜드 사건이라고 어린 유치원생들을 컨테이너 숙소에서 재우다가 모두를 불길 속에 가두게 되어 죽게 하였던 끔찍한 사건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급기야는 희생된 아이의 학부모였던 어떤 부부가 국가가 준 체육훈장도 반납하며 이런 나라에서는 살 수 없다며 남은 가족 모두가 이민을 떠나버린 일도 있었는데, 이번 사고 뒤의 형편 역시 다시 그런 사안이 안 나온다는 장담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어있음을 인지해 본다.
되돌아보건대 우리나라의 대다수 평범한 국민들은 사회적인 쇼크를 갖게 하는 어떤 사건, 사고가 났을 때 그 사연을 두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떠들썩하는 당시 분위기에는 익숙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잊어버리는 속성 때문에 얼마쯤 지나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경험도 참 많다.
큰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나쁜 일이면 두 번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좋은 일은 길이길이 전해주어, 모두가 현재를 조심하고 미래를 펼쳐내는 도움이 되는 역사를 갖도록, 이번만큼은 합쳐진 좋은 결말을 도출하는 의지를 갖자는 이야기를 그래서 꼭 덧붙이고 싶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이제는 슬픔을 털어내며 의지를 세워 반면교사의 장이 새롭게 펼쳐지기를 갈망하면서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본다.
사고의 전말을 세세히 기록, 취집 하여 우리 후손 대대로 전해질 유산으로 모은 복구 설립 기념물을 만들어, 후인들의 마음에 언제라도 필요할 때면 찾아가 볼 수 있고, 상기해 낼 수 있는 기록 기념물로 영구 보존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사고 선박인 세월호는 인양하여 수리한 후, 사고지와 가까운 육지의 편안한 자리에 영구 선석을 만들어 그곳에 영구 접안시키거나 아예 육상구조물로 전환시켜주고, 선박 내부는 사고 상황을 알려주는 교육장을 겸한 해운, 해양 박물관으로 만들어 해난사고에서 인명의 손상을 경계하는 경각심도 키워주는 시청각 교육장으로도 할용 하였으면 생각해 본다.
만들어질 부두나 선박 구조물 주위는 이번 사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공원을 만들어 고인들의 못다 이룬 꿈을 기려주며, 특히 바다를 향한 꿈을 가진 청춘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며 해양사고의 심각성을 깨우치고, 심신도 단련할 수 있는 체육 교육장도 겸한 다목적 메모리얼 파크로 만들어 주었으면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장소를 선택할 때 이번 사고 장소와 가까운 곳이거나, 가장 큰 인명 피해 그룹인 단원고교생들의 학교 부근인 안산이나 그에 가까운 곳을 선택하는 것도 메모리얼의 의미를 더욱 부각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 본다.
어쩌면 너무 선하게 말을 잘 들어서 영원히 잠들게 된 그들의 억울한 마음을 위로하고, 또 우리들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며 앞으로 태어날 후손을 위해, 살아남은 우리들이 국민적 관심을 모두어서 해 줄 수 있는 일로서 이만한 공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간절한 소망을 해 본다.
7.
아직도 세월호 사고의 수습은 계속 중이다.
빠르게 또 바르게 일의 뒤처리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이번 사고로 돌아가신 모든 분들의 영령 앞에 다시 한번 더 삼가 머리 숙여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또한 깊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 여러분의 남은 여생이 행여 이 일로 인해 더욱 불행해질 수는 없습니다.
부디 힘을 내시어 돌아가신 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서 이뤄주시길 응원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