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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ug 14. 2019

중국, 강대국은 될 수 있겠지만...

아니 이미 강대국이 되었지만,결코 선진국은 될 수 없다는 느낌이

Chiba Anchorage - Inside Tokyo Bay


 지난 10월 20일경 집을 떠나 바다로 나갔던 둘째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배를 내려서 집으로 온 것은 맞지만 연가를 쉬려고 배를 떠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상위직 승선을 위한 해기 연수 교육을 받기 위해 조기에 하선한 것이다.


집만 떠나면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을 너무나 철저히 시행하고 있는 녀석이기에, 이미 부산에 입항하기 전부터 하선하면 회사에 들렸다가 집으로 오게 될 모든 예정을 수시로 전화로 일러주고 있었다.


지난번 집을 떠날때만해도  몸 상태가 비만쪽으로 줄을 서야했던 몸매였는데, 이제 집에 들어서는 첫 모습에서 어딘가 달라진 감을 느끼게 하는 날렵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는 듯 싶어보였다.

-몸이 많이 빠졌는데? 재회 인사를 대신하며 걸어 본 말에,

-7Kg쯤 체중 감량이 되었어요. 라는  대답을 한다.


언제나 녀석의 좀은 과체중인 건강한 몸을 걱정 아닌 걱정으로 대하던 심정이기에 재회의 순간에도 절로 튀어나와 주고 받은 인사였다.


-그래 이번 배는 탈만 하더냐?

 녀석의 몸매를 다스려 준 환경에 은근한 기대를 가지며 이번 배에 승선한 분위기가 어땠는지 알고 싶어 묻는 말에,

-예,배가 작아서 그랬겠지만..., 흔드는 게 많아  좀 힘들긴 했어도, 뭐 괜찮았습니다.  즉시 대답을 준다.

M/T Towdah Hana


 지금껏 어지간한 파도에도 조용히 대응하던 좀 육중한 VLCC 급 광탄선만을 주로하여 승선했기에, 선체 크기가 훨씬 작은 이번 같은 Chemical Carrier의 승선은 선내 분위기부터 다르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대답은 역시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문제인 황천으로 인한 선체 요동이 힘겨웠다는 이야기부터 나온다. 



Nagoya Bay 모습


 경험상 뱃사람이 승선하면서 제일의 관심사로 꼽는 것이 평온한 항해임을 둘째 역시 입증해주는 대답을 한 것이다.


-이번에 다녀 본 항로는 좀 어땠었니?

항차내내 일본,중국,대만을 거쳐 온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항지에 따라 마음을 끌어 당기는 매력 또한 제 각각이기에 바람직한 순항 항해기를 기대해 보며 물었다.


-예, 온산(울산항)에서 MX(Mixed Xylene)를 싣고 일본 나고야에서 양하해주고, 동경만으로 가서 가와사끼, 지바를 거쳐 중국의 창슈(CHANGSHU,상하이 인근), 동관(광저우),대만의 마일리아오를 차례로 기항한 후 다시 가와사끼, 지바를 거쳐 부산에 와서 내린 것이지요.


대답을 들으면서 내 머리 속에는 상하이 인근의 창슈이란 곳을 빼 놓은 나머지 다른 곳들은 한번 이상 입출항 했던 경험이 있었음을 상기해 본다. 또한 그 각각의 항구들을 가기 위한 항로나 그곳을 거치면서 경험했던 여러가지의 일들도 두서없이 머리 속에 떠 올라진다. 


물론 그런 내 기억 속의 상황은 최소한 몇년전에서 길게는 내 인생의 초년병 시절로 돌아간 수십년 전이란 시차를 가진 세월 저편에서 생겼던 일이기도 하다.


-아버지, 이번 배를 승선하면서 되풀이하여 느끼게 된 일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둘째의 어조가 이번 항해와 정박을 거치면서 머리에 각인 된 생각을 떠 올리며 좀 격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뭔데? 

 궁금증을 품으며 얼른 되 묻는다.

-우리와 가까운 이웃인 일본,중국과 대만을 다녀 보면서 비교된 게 있는데요.

-일본은 선진국의 매너를 가진, 강대국일 수 있는데, 중국이란 나라는 강대국은 될 수 있지만(아니 이미 강대국이 되었지만),결코 선진국은 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하는 응대를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내 맘속에서도 그 말을 받아들이는 감성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교역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그곳을 출입항 하였을 때 내가 겪었던 불편했던 일들이 조목조목 떠 오른다.


그리고 둘째가 이야기를 풀어내며 설명하는 일들이 예전에 내가 그들 중국을 출입항 하면서 느꼈던 불편함이 아직도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알겠으며 그래서 선진국 운운하는 말로 표현하는 심정도 새삼 알아주겠다.

Dongguan Bridge, China


 둘째가 금년 한 일년을 쉬고 난 후 이번 항차를 시작하여 제일 먼저 찾아 간 외국이 일본이며 항구로는 나고야와 동경만 안의 항구들이었는데 그곳들을 출입항 하면서 갖게되는 일본에 대한 감상은 현재 한일간의 정치판 때문에 여러모로 껄끄러운 유대가 있어 경코 이쁘게만 봐 줄 수 없는 애증이 교차하는 국가이긴 하지만, 그들이 외국선원들을 대하는 태도로서는 흠잡을 데가 없는 얄미울 정도의 깨끗한 대응을 해와서 그게 기분 나쁘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을 정도란다.


그런데, 중국이란 나라는 그들의 수도인 북경(베이찡) 과의 지리적 거리가 멀어질 수록 자잘한 부패의 척도가 불어난다는 느낌에 턱없이 빠져들었고 그로 인해 선진국에 들지 못 한다는 단언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배가 외국항에 입항하면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에 파일로트(도선사)라는 직업인이 있다. 이들은 입출항을 하는 선박을 상대로 안전한 운항을 할 수 있게 유로로 수로 안내를 하는 도우미로서 모두가 선장 출신이다. 

그런데 이들이 본선에 오르자마자 모든사람들 위에 군림하듯 행동하는 모습은 후진국으로 갈 수록 심화되어 있는 형편이 세계적인 현실이라고 여겨진다.


이번 광저우를 들렸을 때의 파일로트도 중국의 다른 항구의 파이로트와 마찬가지로 담배를 요구하였고, 처음으로 입항 수속하여 올라온 검역관 역시 취하는 태도로 봐서는 파이로트와 다를바 없었단다. 아니 관(공무원)이란 직책으로 인해 더욱  으쓱거리는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배의 승조원들은 배가 다니는 항로에 따라 열대지역을 다니는 배에 승선할 때는  10년 기한의 황열병(Yellow Fever)예방접종을 받아 증빙서(접종증서)를 수급받아 가지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둘째가 탄 배는 열대해역을 주로해서 다니는 배가 아니기에 황열병 예방 접종도 강제적으로 지녀야 하는 배는 아니다. 그런데 황열병 예방접종카드를 선원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트집잡아 금품을 요구하더란다, 그것도 봉투에 넣어서 달라는 주문까지 덧붙여서.  


그렇게 금품을 받았으면 예방접종을 해 줘야 마땅 할텐데, 그건 주말인 휴일중이라서 해 줄 수 없으니 그냥 자신이 검역미비사항을 발견했지만 봐 준 것으로 돈을 받는다는 식의 그야말로 눈꼽 만큼한 권력을 남용하여 부정한 금품을 얻어내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부패의 모습을 보이더란다. 


그런 식의 대민 창구부서에서 그것도 외국인을 상대로 금품수수를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는 점은 그들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는 명명백백한 증거란 결론을 내었다는 둘째다. 


외항선이 항해 후 육지(항구)에 도착하여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인-검역관,세관,출입국관리,도선사,대리점원-등과의 접촉에서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금품이나 선물을 요구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정부패의 몰골이 존재하는 한 그 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논리로 말을 하는 둘째를 보며 나 역시 그런 일들을 경험했었던 옛생각에 그냥 동조해주는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무언가 요구하는 풍토가 당연한 일로 자연스럽게 자행 된다면, 그 일을 당해야 하는, 그야말로 을(乙)의 입장이 되는 측이 갖게될 감정은 결코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일에 대해 현장에서 항의나 시정을 요구하는 식의 반발이라도 받게 될 경우, 그들은 해당 선박의 그 부서는 물론이고 다른 부서의 일에 까지 월권적인 간섭을 자행하는 것으로 보복을 하는 것이다. 만약 그 배에 대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자신들이 물러나게 되었다면, 다음 번 그곳에 들어오는 그 회사의 배라던가 그도 안되면 그 선박과 같은 기국선박을 붙잡고서 라도 더 큰 압박이나 해꼬지를 주는 보복성 제재를 가하는 공무원들이 존재하는 나라가 중국이란 관념을 우리들 선원들은 어찌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도 그런 모양이다.


현역 시절 광탄선을 주로하여 승선했던 나 역시도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결코 긍정적일 수 만은 없었던 게, 중국향 화물을 싣고 필연적으로 중국 연안에 접근하여야 할 때에 만나게 되는 중국 어선군들의 횡포에 가까운 항로침범이라던가 항법을 무시한 접근으로 인해 그야말로 피 말리는 신경 소모를 하며 조선하던 때를 결코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어느 해에 우리나라 남해안을 따라 서진하게 된, 중국의 발해만을 종착지로 한 항해를 하던 때에 아직 대한민국의 영해를 벗어나지 못한 해역인데도 떼로 몰려 있는 불법적인 중국의 어선군과 만났던 한밤중의 기억까지 반추하게 만들곤 한다.


근래에도 중국 어선들이 우리나라 영해에 까지 침범하여 어로작업을 하는 횡포에 해경대원이 순직하는 일까지 발생되는 걸 보면서, 그들의 무법이요 불법적인 행위가 중국을 이웃나라에게 선한 이웃됨을 부정하게 만드는 일로 만들어, 궁극적으론 그들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음 까지 방증하는 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불법적인 일이 발생하는 덜 익은 국민들의 준법 수준도 문제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무법(불법)을 보면서도 관리나 간섭을 제대로 하려고 나서지 않는 그들 중국 행정당국의 사고 방식이나 정책이나 모든 것이 선진국으로 들어 갈 형편과는 먼 태도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일본의 항구에 입항해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은 모든 서류를 철저하게 검사하지만 순리대로 메뉴얼에 따라서 처리를 해주기에 힘든 줄 모르고 점잖게 응대하면서 출입항 수속을 마칠 수 있다. 어떤 면에선 일본이 가진 이런 매끈한 매너가 선진국의 표상으로 보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와의 내면적인 관계로 살펴볼 때에는 무서운 무기 같다고 느껴진다. 너무 옹졸한 내 내면의 걱정 때문일까?


하여간 가와사끼에서는 그곳에서 싣게되는 화물인 IPA(Iso-propylen Alchol)가 인화성 화물이기에 화기의 원천적인 접근을 막기 위해서 선적 작업중에는 배의 주방(조리실)을 사용 못하게 막고 있었다. 따라서 식사시간을 맞이한 선원들을 위한 도시락을 공급해 주는 안전조치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도시락을 공급해주기 위해 대리점에서 본선으로 건네준 입항 안내서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전략~

REMARKS: Will arrange Lunch Box /Cannot cooking at Loading Time.


(캐미컬 탱커의 경우, 인화성 화물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서 포트에 따라 화기 사용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곳이 자주 있으며 가와사키의 경우에도 그런 기준이 명확한 포트 중 하나였음.)

Port Of Kawasaki

 안전을 위해 시행하는 이런 조치의 과정은 유럽의 선진국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방법의 일이니 어찌 그들을 선진국에 들지 않았다고 외면 할 수가 있겠는가? 


결국 우리는 이런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 열심히 보고, 배우며,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내어야 할 것이다.


60 년대만 하여도 우리나라의 관해관청의 담당자들도 선원이나 선박을 대하는 태도가 위에 열거한 이야기와 비슷하였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어느새 그런 추태가 없어진 우리나라는 이미 중진국을 넘어선 선진국에 진입한 상황으로 여겨지기는 한다.  201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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