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GSC
작성일 : 2014-09-17 오후 5:20:19
대한해운 선박, 표류 난민 387명 구조
지중해서 침몰 직전 배 발견
내전·분쟁 5개국 난민 구해
내전과 전쟁을 피해 난민선에 몸을 실었다가 보름간 표류하던 중동·아프리카인 387명을 국내 선박이 이탈리아 해상에서 구해냈다.
16일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대한해운 소속 AMS 페가수스 1호가 지난 12일 오전 8시 지중해 부근을 항해하다 시칠리아 섬 인근에서 조난선을 구조했다.
대한해운 관리 선박인 AMS 페가수스 1호가 지난 11일 이탈리아 인근 해상에서 침몰 직전의 조난 선박에서 387명을 구조하고 있다.
조난선에는 이집트인 177명, 시리아인 129명, 소말리아인 45명, 팔레스타인인 16명, 수단인 9명 등 385명이 타고 있었다. 지난달 말 내전이나 분쟁을 피해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난민들이다. 대부분 10~30대였고, 임신부도 타고 있었다.
조난선은 낡고 오래된 소형 목선으로 사실상 침몰 직전 상태였다. 정원을 크게 초과해 대부분 배 갑판에 앉아 있어야 했다. 또 식량이나 식수도 다 떨어져 있었다.
이들은 당초 바다에서 구조되기만을 바라며 목숨을 건 항해를 시작했던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 인근 해상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려는 이민·난민자들을 태운 선박이 침몰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페가수스 1호는 이들을 구조한 직후 이동하다 또 다른 난파선을 발견했고, 바다에 빠져있는 이집트인 2명을 더 구했다.
구조 직후 페가수스 1호 선원들은 병세가 심한 조난자들을 응급치료하고 임신부에게는 선내 객실을 내줬다. 구조된 승객 387명 전원은 13일 오후 이탈리아 당국에 인도됐다.
페가수스 1호는 화물을 싣기 위해 이집트를 출발해 지브롤터로 향하고 있었다. 선박에는 조명선 선장(51)을 비롯한 한국인 4명과 미얀마 선원 16명이 타고 있었다.
이번 구조과정에서 조 선장의 신속한 대처가 빛을 발했다. 조 선장은 이탈리아 해양경비대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자마자 회사에 구조 허가를 요청했다. 대한해운은 곧바로 비상대응팀을 가동, 체계적인 지시로 구조 작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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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과 사진은, 한국 조선 해양 기자재 글로벌 지원 센터(KOMEC, Korea Marine Equipment Global Service Center) 홈페이지의 News & Event 소식란에서 전재한 것이다.
내용인즉 현재 지중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상 난민들이 겪고 있는 쓰라린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 뉴스에 등장하는 387명의 난민들은 그나마 그들이 그리던 대로의 희망이 있는 중간결실을 맺는 장면으로 보여지고(구출되고) 있어, 이렇듯이 뉴스를 접하는 나의 마음도 한결 마음 편하고 있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전쟁과 내전 기아등의 절대적인 어려움을 피하려고 거의 목숨을 걸은 무모할 정도의 조건 속에 바다로 나선 중동,아프리카 출신의 선상 난민들을 두고 유럽국가들이 겪는 현실 역시 만만치 않아 난민 유입을 꺼리게 되는 형편이므로 이런 모양은 앞으로도 계속 될 전망을 읽게되는 마음 참 착잡하다.
어쨌던 이곳에 옮겨 놓아 좀더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시기를 바라는 심정은 이런 상황과 비슷한 내가 겪었으며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한 이야기를 해보기 위함이다. 이는 마치 고백성사를 보려는 마음과 다를바 없다고 여겨진다.
궁극적으로 이런 난민이 발생하는 큰 이유는, 인간이 뭉치기는 하지만 자신과 다른 편에 서는 상대방은 거의 무조건적으로 불신하여 자신만을 앞세우는 양보심 없는 평행을 이룬 대치상태로 세상을 꾸려나가려는 아집과 독선이 판을 치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내 이야기를 해본다. 월남전이 월남의 패망으로 인해 수 많은 보트피플을 양산하고 있던 시기의 남지나해에서 겪은 이야기이다.
이미 월남이 패망하고 몇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 동안 보트피플로 바다로 나온 난민들을 잘 받아 들여주던 주변 국가에서 난민의 누적으로 인해 자국의 사회 경제적으로 나빠지는 이유가 발생하면서부터 점점 보트피플의 유입을 막으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남지나해 월남의 해역과 가까운 곳을 항해해야 하는 선박들엔 그들 회사로 부터 절대로 월남 난민을 해상에서 만나더라도 피해서 항해 할 것이며 무조건 구조하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난민을 실은 상태로 항해했을 경우, 입항을 허가해주는 나라나 항구가 없으므로 그로 인해 발생되는 경비도 모두 회사가 부담해야 한다며 재삼재사 구조활동은 하지 말도록 지시해 오곤 했던 것이다.
당시 내가 타고 있던 G/H호는 공선으로 일본을 떠나 남아공화국에 기힝히여 석탄을 선적한 후 유럽으로 가는 항차로 외국회사에 용선되어 있었다.
본사와의 구두연락에서 용선주도 보트피플의 선내승선-구조 상황-을 원하지 않으니 절대로 보트피플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신신 당부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날 우리 배는 남지나해 베트남 반도의 끝단을 제법 멀리 벗어 난-육지가 보이지 않는 거리를 둔- 항로상에서 싱가포르 해협을 향한 침로를 가지고 남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3항사의 오전 당직 시간중인 10시경 브리지 당직사관으로 부터 선내 전화 보고를 받았다. 본선의 진행방향 가까이에 이상한 어선이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의아심을 품으며 올라간 브리지에서 점점 가깝게 접근하는 어선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아! 저것이 바로 보트피플들이 탄 난민선이로구나!" 하는 놀람어린 마음이 들었다.
우선 별다른 대책도 없이 너무 가까와 지도록 까지 접근한 형편임을 깨닫고 보니-그들은 결사적으로 본선에 접근하려고 행동했음-, 충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우선 그 배와 더 이상 가깝게 마주침은 피하기 위해 회피 동작으로 타를 하드포트(왼쪽 35도)로 돌리도록 지시했다.
우리 배가 서서히 선수를 돌리기 시작할 무렵 상대의 어선은 달라진 본선의 대응에 최대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려는 듯 갑판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동작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결 같이 매가리가 하나도 없는, 손을 들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흐느적거리듯 한 모습이다. 갑판에는 그런 사람들 말고도 얼기설기 줄지어 쳐있는 줄이 있고 그위에는 여러가지 옷가지며 수건 같기도 한 물건들이 빨래로 널려진 듯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는 내 머리속은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갈등으로 인해 실타래가 잔뜩 얽힌 듯한 가닥을 잡지 못한 생각들이 와글거리는 무논속의 개구리 마냥 들끓고 있었다.
아아!! 어찌하란 말이냐~
그러나 그런 갈등 속에 그냥 파묻혀 버리기에는 우리 배나 그 배나 모두 어떤 보이지 않는 인연의 한계가 있었는지 이미 옆을 지나 뒤로 돌아가버리는 상황에 들어설 무렵, 나는 더 이상 그곳에서 머뭇거리며 있어서는 안된다는 회사의 지시에 잘 따르는 순종적인 선장의 위치로 돌아가고 있었다.
만약에 구조하는 일로 들어선다면 이미 엔진을 사용하여 배를 멈추도록 해야 했는데, 그럴 순간도 놓쳐가는 현실에서 두 배의 사이도 제법 벌어져 버렸고, 더하여 구조했을 경우 앞으로 입항해야 하는 모든 항구에서 우리 역시 그들 난민과 같은 취급을 당하며 입항 거부등의 천대를 받아야 한다는 지레짐작에 그냥 벌어진 사이가 다행이라는 심뽀를 받아들이며 우리 배가 가야하는 침로로 다시 배를 정침시켜가며 지나쳐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른척 지나쳐 가버린 내 뒤통수에는 버림 받은자들의 애증이 범벅된 안타까움이 켜켜이 쌓여 지는듯 싶어 그대로 뒤돌아 볼 염두를 낼 수가 없었다.
브리지 당직을 서고 있던 근무자들도 나와 같은 여러가지의 생각으로 인해 멍해 있는 광경을 보며,
-앞으로 이 바다에서는 어선을 포함한 모든 부유물을 충분한 안전거리를 두고 미리 피해서 항해하도록 해라! 지시하며 브리지를 내려왔다.
방으로 돌아 온 후, 창의 커틴을 젖혀주며 바깥을 내다 보았다. 배의 전방 방향만을 볼 수 있게 구조된 선장방의 창틀이기에 눈에 들어 오는 것은 배 앞쪽에 펼쳐진 수평선과 본선 선수가 갈라내는 선수파가 양쪽으로 퍼지며 작은 너울되는 우리 배의 전반부의 모습이 평소나 다름없이 평온한 항해의 모습으로 내 눈 안에 들어서고 있을뿐이다.
문득, 이번 항차가 짐을 싣고 우리 나라로 향하는 항차였다면, 나는 무조건 저들을 구조하여 승선시켜서 갈 수가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을 떠 올리며 그래 그렇게 되었다면 틀림 없이 구조를 했을거야- 로 마음을 다시금 다독여 본다.
그렇게 구조요청을 하는 사람들을 모른 채 지나쳐 버리고 난 후, 혼자서 그리저리 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듯한 생각에 빠져든 내 자신의 우유부단한 못난 모습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난민들이 비록 나하고는 인연이 닿지 못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 의해 무사히 구조되어 바다를 빠져 나온 후, 나머지 여생은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보람찬 날들로 채워주옵소서!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날 하루를 보냈었다.
내가 배를 타고 겪은 갈등중에 아직 까지도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아쉬움이 묻어 남는 이야기이다.
* 이 이야기를 써서 처음으로 보여주었을 때,현직 항해사인 둘째애는 발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구해주지 못한 아쉬운 이야기이니 그렇게 생각 하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작은 역사라도 있는 사실은 사실 그대로서 기록에 남겨야 하는 거란다, 라고 나는 대답해 주고 있었다.*
2014년 09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