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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8. 2021

두리에게 가는 길

스물여덟 살두리의 마지막 항해 - 1

이 이야기는 12년 전인 2009년 4월 한 달 간에 걸쳐 제가 겪은 승선일기입니다. 그즈음, 정년퇴직으로 반평생을 지낸 승선 생활을 끝낸지 7년이 지나고 있던 때였지만, 촉탁계약을 통해 다시 승선의 기회를 부여받았고 그 사이 고철로 팔려가는 선박을 그 폐선 해체장까지 데려다주는 이런 악역(?)을 맡게 되었죠. 하지만, 인간사에도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듯 배도 태어난만큼 언젠가는 이런 운명을 맞게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겠습니까. 하여간,  배를 타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다 경험할 일이 아닌 특별한 일이었지요.


내 생애의 반이 넘는 승선의 세월 중엔 조선소에 발주되어 새로 만들어지는 신조선 인수나, 해운 시장에서 구입 한 중고선박 인수를 위해 외국 선원으로부터 건네받은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 같이 타고 있던 선박을 해체하기 위해 마지막 가는 길을 동행해주며 선박 해체장까지 따라 가준 일은 처음 경험한 일이었다. 


두리 호는 그렇게 야릇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나이 많은 CAPESIZE BULK CARRIER로서 앞으로 한 달여의 기간을 밤낮없이 같이 보내다가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해안가 선박 해체장에 떼어 놓고 돌아서면서 영원히 이별하게 된 배다. 


두리 곁으로


배를 탄다는 예정은 늘 그렇다. 이번에도 승선 일자는 회사와 미팅을 가진 그날부터 당겨진 고무줄 같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속성을 남김없이 보여주며 출국 일을 밀고 당기다가, 어느새 내일 오전에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할 예정까지 로 바짝 당겨졌기에 저녁때 아내와 아이들이 착잡한 심정인 아버지의 장도를 축하해준다는 명목으로 열어 준 급조의 조촐한 가족 파티는 결국 잠이 모자라는 밤을 만들어 주고 말았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났다. 잠을 제대로 뭇 잔 푸석함을 달래 가며 떠날 준비를 할 때 아내는 모처럼의 일요일도 없이 먼 길 떠나는 남편을 위해 공항까지 같이 따라나서겠다는 고집을 꺾으려 들지 않았다. 기어이 따라나섰지만 나이가 있는 피곤함은 어쩔 수 없는지,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녀는 잠깐씩 곤한 쪽잠에 빠져 들곤 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을 잠시 이번에 타게 될 배에 대하여 살펴보는 기회로 삼았다.


국적선으로 DURI라는 영문명을 가진 이 배는 얼마 전까지의 해운 경기가 좋았을 때 모 선사에서 사들였던 배로서 그간에는 제법 돈도 벌어주었지만 해운경기가 바닥을 뒤져갈 무렵이 되면서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선주가 파산하며 우리 회사로 들어오게 된 배다.


1981년 일본 히타치 조선소에서 신조로 인수받은 CAPE SIZE 선박으로 이미 28세라는 나이는 배로서는 환갑, 진갑 다 지난 노령의 배이기에 요즘 같은 해운 시황에선 얼른 폐선 처리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일이 될 수 있는 현실에 맞닥뜨렸고, 이제 그 최후의 현장으로 데려가 주는 역할을 내가 맡기 위해 집을 나서게 된 것이다. 현재 승선 중인 선장이 그 일까지 마무리 짓고 떠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되지만 타고 있던 동안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도저히 그 일까지는 못하겠노라 고사하였다는 회사 직원의 표현을 전해 들으며 교대에 나서 주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그가 당했을 형편을 동료 뱃사람으로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 심정에 나는 회사의 제의에 그대로 응하기로 하였고 이제 그 당사자들을 만나러 중국으로 가는 길이다. 그 배는 지금 자신의 생애 마지막으로 지워진 철광석을 선적하고 중국에 기항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새 리무진 버스는 공항에 도착하였다. 같이 떠나기로 된 3기사를 만나려고 출국 수속을 미루고 기다렸다.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두리호에 승선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올라탄 여객기

시간이 좀 지난 후 궁금증에 그의 휴대폰에 전화를 건다. 받는 사람이 가족이라며 3기사가 집을 나설 때 전화기를 집에 두고 갔단다. 얼핏 무슨 대꾸를 해야지? 잠깐 궁리에 말이 끊겼다가, 그에게서 집으로 전화가 오면 내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를 알려주도록 청하며 전화를 끊는다. 


젊은 사람이 너무 덤비다가 그런 일을 했나 어찌 그리 칠칠치 못한가?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런 게 아니지 필시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리 되었겠지 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며 기다리기를 계속한다.

어쨌거나 아내가 같이 있는 시간이었기에 지루하거나 걱정되는 일이 없으므로 편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30분쯤 지나니 전화벨이 울린다. 3기사가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는 집이 부산 쪽이라 김해공항에서 떠나 오는 중이었다. 랑데부할 약속 장소를 다시 알려 주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에서 첫 눈길이지만 서로를 알아본다. 

공항에서 만난 3기사

공손히 인사하는 3기사와 그대로 창구로 가서 티켓팅을 끝냈다. 이번에는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해야 할 차례가 된 것이다. 버스 길을 배웅하려고 일층의 공항버스 정거장으로 내려갔다. 5분여쯤 기다렸을 때 우리 동네 쪽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온다. 간단히 이별의 인사를 나눈다. 잠깐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 후 나도 떠나기 위해 출국장을 향해 다시 3층으로 올라간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기다리는 동안 두리의 이력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본다.


두리는 1980년 5월 18일 일본 ARIAKE의 히타치 조선소에서 YARD NUMBER 4.642로 KEEL LAID 하며 태어났고 그 해 10월 5일 물 위에 띄워진 후, 마지막 의장 작업 및 선박으로서의 단장을 마무리하며 1981년 1월 29일 선주에게 인계되어 M/V WORLD DULCE라는 첫 이름을 가진 CAPESIZE의 BULK 선으로서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화려한 생애를 시작한 것이다.


두리는 태어나 지금까지,

M/V WORLD DULCE (PANAMA) 1987년 06/08까지 

M/V DALTON (U.K) 1988년 07/24까지

M/V NAVALIS (HONG KONG) 1997년 10/23까지

M/V CAPE OF GOOD HOPE (MALTA) 2004년 11/16까지

M/V GREAT GALAXY (KOREA) 2008년 10/04까지

M/V DURI (KOREA) 2009년 현재까지

라는 이름으로 개명해가며 여러 나라의 선주와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지만, 그런 그녀의 생애에서 변하지 않은 단 한 가지는 7925948이란 IMO NO. 뿐이다(*주). 

우리나라 사람들로 치면 주민등록 번호인 이 중요한 인식번호는 관련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배 이름에 앞서 쳐도 이력이 줄줄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주) IMO Number -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에서 배를 식별하기 위해 표시하도록 하는 선박 고유의 일련번호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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