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태 Mar 18. 2021

선상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4

주갑판 1번 창 크로스 데크에서 선수루를 본 모습


배의 나이만 생각해도 그렇고, 추위에 움츠러든 마음이 품게 된 부정적인 상황으로도 두리는 어딘가 모자랄 것 같다는 어정쩡한 모습이었지만, 나름대로 거주구역은 정돈하고 다듬은 모습을 보이어 첫인상을 그런대로 호감 쪽으로 돌려세웠다. 


세월 따라 화려한 역사를 만들며 지난 28년을 살아왔을 두리호. 


마지막이 될 그녀를 만나러 떠나든 날 하늘은 맑았지만 싸늘한 대기가 초봄을 무색하게 만든 환경이라 다시 귀국하는 때 만을 겨냥해서 준비했던 옷차림을 호되게 나무라듯 추위가 제법이었다. 

이제 그 추위를 다 떨쳐내고 포근한 잠자리를 파고 드니 편안한 마음이 되어 덜컹거리는 하역작업의  소음마저 자장가 삼아서 고른 숨에 빠져 들었다. 


습관대로 새벽에 일어난다. 간단히 세면을 하며 몸매를 고친다. 어둠이 물안개 마냥 슬며시 스러지며 여명이 자리 교대를 해줄 무렵 선실 밖으로 나왔다. 선내를 내 나름대로 한 바퀴 돌아보려는 발걸음이 아래층으로 옮겨 딛는다. 당직 중이던 낯선 얼굴의 미얀마 선원들이 공손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 온다. 그들은 이미 교대해 오는 새 선장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나를 향해 서슴없이 아침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만나는 대로 답례를 해주며 갑판으로 나갔다. 거의 모든 중국 바닷가 항구 특유의 흐릿한 안개를 품은 대기가 싸늘한 한기를 내뿜으며 대들듯이 다가선다. 밤새도록 쿵쾅거리며 퍼내 주던 철광석을 지금도 저 아래 더욱 깊어진 선창에서 퍼 올리는 GRAB의 분주한 모습이 흔들리며 떠 오르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이런 뿌연 날씨와 흙탕물이 뒤범벅이 된 양자강을 훑어 내리며 떠나야 하는 일만이 남는다.

  

밀물로 드는 물 따라 강 상류 쪽으로 열심히 올라가던 작은 배들의 모습이 점점 뜸해지는 게 아마도 물때가 바뀌는 모양이다. 쉴 새 없이 우리 옆을 스치듯 지나다니든 작은 선박들, 제 갈 길을 바쁘게 달리는 모습 위에, 들여다볼 수 없는 불투명한 장강 모습 닮은 알 수 없는 중국의 속내를 보는 듯도 하다. 

선수 쪽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돌리는 눈길 속에 퍼뜩 이 배의 한 가지 특징이 들어선다.


대부분의 CAPE SIZE 선박은 선수 갑판이 주갑판에 이어진 채 약간의 RISING FLOOR 형식을 도입한 갑판인데 비해 이 배는 FORECASLE  DECK가 한층 솟아 있어 그야말로 탄탄한 성곽처럼 안정감을 보여주고 있다. 고만큼 철판은 더 썼겠지만…… 


60년대 한국해양대학 연습선(실습선)이었던 당시 국내에서 몇 등 안에 드는 큰 배로 위용(?)을 자랑하던 반도호 실습을 하면서 친근해 있었던 쓰리 아일랜드형(*주)의 선수루를 보는 것 같은 다정함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위에 설비된 윈드라스(권양기)의 모습까지 그럴 싸 하니 든든하게 여겨지는 마음이 절로 든다.           

60년대, 한국해양대학의 실습선이었던 반도호. 전형적인 Three Islander였다.

(*주)

THREE ISLANDER : 배의 세 부분인 선수부와 중앙부 그리고 선미부에 각각 선수루, 선교루, 선미루를 만들어서 마치 밋밋한 선체 갑판상 세 곳을 솟아나게 설비하여 그 구조물들의 실루엣이 나란히 서있는 세 섬과 같은 모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5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전 03화 두리호에 오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