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지나해 항해기

월남에서 호주 동부를 향해서

by 전희태


JJS_3788.JPG BALABAC STRAIT에서 만난 섬



* 7월 3일 1750시 :

비나신 조선소의 한국인 도크 마스터(*1)가 하선한 후, 교대하듯 승선한 월남인 항만 도선사의 도선 아래 출항이 이어졌다.


드디어 도선사의 하선 구역에 도착하여 안전하게 내려준 후, SOUTH CHINA SEA 거의 한가운데에 있는 DANGEROUS GROUND를 좌현 쪽으로 돌려세우며 남하를 시작하면서 곧 Rung up Eng. 을 걸어주었다.


베트남에서 동부 호주로 가는 항로는 남지나해를 서에서 동으로 비스듬히 관통하여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 남쪽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택해야 하는 이유는, 남지나해 중앙부에 무수히 깔려있는 위험한 천소를 피하기 위해서 비나신을 빠져 나 온 후 약간 남쪽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이렇게 달려가야 하는 필리핀 쪽 해역은 나로서는 오래간만에 항해해보는 곳도 포함한 낯 설은 고장이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좁은 수로에서는 꼭 브리지에 올라가서 조선에 임하기로 한다.


*7월 4일 2250시:

DANGEROUS GROUND의 남단에 도착하여 동진(090도)으로 침로를 바꿔서 항해를 계속한다.

*7월 5일 1015시 :

동경 113도 52분 북위 7도 10분 위치에서 081도로 선수를 조금 쳐들어 달리다가


* 7월 6일 0119시:

BALABAC ISLAND 남단 BALABAC STRAIT에 도착 081도로 오던 침로를 030도로 변침 하며 DANGEROUS GROUND를 완전히 빗겨 난 본격적인 연안 항해를 다시 시작한다.

결국 연 이틀 새벽을 브리지를 지키다 보니 새벽잠이 없는 주제이긴 하지만, 조금은 피로감을 느낀다.

오늘 밤마저 마지막 필리핀 해역을 떠나는 민다나오의 동쪽 하방을 지나야 하는 일이 남아 있어, 해적 출몰도 염두에 두는 번거로움을 안고 하룻밤 더 수고해야겠다.


약 19 마일을 달렸을 때 NASUBATA CHANNEL을 빠져서 본선과 서로 반대로 항행하는 한국인이 승선한 작은 케미컬 탱커를 만났다.


좌현대 좌현으로 항과 하도록 약속하며 조기에 060도(원 침로는 066도)로 변침 하여 안전하게 지나치니 이미 SULU SEA의 서쪽 끝에 진입하고 있다.


보르네오에서 팜유를 싣고 싱가포르 옆 파당파실로 간다는 케미컬 캐리어인 상대선에게 이 근방의 해적에 대한 정보를 물었더니 자신들은 가까이 접근하는 작은 배들을 경계하며 항해를 한단다.


이곳은 총기류를 소지한 해적이기 보다는 도검류를 들고 있는 좀도둑이 대부분이라며, 사전에 못 올라오도록 서치라이트를 비추면서, -우리는 당직을 잘 서고 있다.-는 과시를 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아울러 말라카나 싱가포르 해협은 배의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는 좁은 길목에서 해적들이 달려들어 꼼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도 부연한다.


상대는 수출선 선원이므로, 고국 소식에 대한 그리움이 많아서겠지만, 통화가 그 정도로 무르익어지니 이제 이쯤에서 본격적으로 고국 소식이나 동료들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 졌음이리라,


-귀선에 혹시 해양대 부설, 해전 출신의 해기사는 없는지요?

라고 물어온다.


-없어요!

하는 그들에게는 쉴 틈도 안 준 무뚝뚝한 대답이 평소의 그 다운 본선 2 항사로부터 즉각 튀어나온 거다.

지금껏 잘 응대하고 있던 2 항사였는데.... 갑작스러운 응답이 옆에서 듣기도 귀에 거슬리는데, 보는 것 없이 말소리로만 대화하던 상대방은 오죽이나 민망하고 기분이 나빠졌을까?


-저런. 이제 통화는 저절로 끝이 나는구나!

하는 나의 짐작에 부응이라도 하듯 상대방은 기분이 나빠진 목소리지만, 그래도 한껏 톤을 낮춘 차분하고 정중한 목소리로,

-예, 그럼 안전 항해하시고 이만 끊습니다.

두말없이 통화를 끝내면서 이쪽 대답은 듣지도 않고 들어가 버린다.


그런데 정작 2 항사는 그런 미묘한 감정의 교감이 한밤중 자신 주위에서, 자신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을 전연 깨닫지 못한 태도로 해도실을 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무뚝뚝한 사나이는 경상도 출신이라 했지만, 2 항사는 덩치도 우람하고 목소리도 저음의 남자다운 사람이지만, 경상도가 아닌 토박이 제주도 사나이이다.


서로가 낯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한밤을 넘어 새벽에 걸친 얼마간을 즐거운 대화로 지내다가. 한 사람의 순간적인 무심함으로 인해 언짢은(?) 분위기로 변한 채, 멀어져 가게 된 그 배의 안전항해를 속으로 빌어 준다.

*7월 7일

0215시:

SULU SEA의 동쪽에 이어진 필리핀의 MINDANAO섬 서쪽 하방과 BASILAN 섬 사이의 북위 06도 49,6, 동경 120도 00분의 BASILAN STRAIT 중앙의 변침점에 도달해 099도로 하여 17.8마일을 빠져나왔고


0350시:

북위 06도 47분, 동경 122도 17.5분 위치에 도착 149도로 변침, 14 마일을 달린 후 2 항사는 1 항사에게 당직을 넘겨준 후 브리지 떠날 준비를 한다.


0500시:

다시 북위 06도 35분, 동경 122도 24.7분 위치의 변침점을 통과하며 115도로 정침을 하니 좁은 수로를 모두 빠져나왔고 어느새 CELEBES 해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어지간히 좁은 구역은 모두 빠져나와 대해로 들어도 섰고, 1 항사가 당직을 서고 있으니 믿고 맡겨 놓은 후 방으로 내려가 우선 다리 뻗고 한 잠 푹 자야 되겠다.


*주 1 : 비나신 도크 야드 내에서 신조선이나 수리선의 도크 진출입 및 안벽 간의 장소 이동을 위해 근무하는 해기사. 당시 비나신에서는 베트남인 도크 마스터를 교육 수습시키기 위해 한국인 도크 마스터가 근무 중이었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나신 수리조선소를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