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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배 노래를 만들어 보자

성은 팬이요 이름은 디에스

by 전희태
DS-%B8%ED%B8%ED%BD%C4(8388)1.jpg 1985년 거제도 대우조선소에서 신조되어, 정식 이름을 받던 날의 DS의 웅자.


문 OO이라고 노래 부르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이미 여고생 시절에 메들리 카세트테이프 가요를 엮었다가 공전의 히트를 하였고 순조롭게 가요계에 입문했다는 여가수가 있다.


그녀가 정식으로 가요계에 등단한 후 불러서 히트한 가요 중에 <성은 김이요,>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어지는 가사 중에 <이름은 디에스>라는 문구까지 있다.


그 DS라는 이니셜이 사랑했던 남자의 익명이라고 나오는데,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과연 D.S라는 우리들 이름엔 어떤 게 있을까? 하는 장난 끼 섞인 의문이 들어 동수를 비롯한 여러 가지의 이름을 손가락 꼽아서 지어 보며 웃은 적도 있었다.


오늘 우연히 그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지금 승선하고 있는 배 이름인 <대우 스피리트> 와도 똑 떨어지게 맞는 영문 이니셜이라는 걸 발견, 아예 그 노래를 <대우 스피리트>의 선가(船歌)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치기 어린 마음을 품어 본다.


앞으로 이 배에서 누구든지 선내 노래방을 처음 열 때에 스타트로 시작하는 노래를 알맞게 가사를 개사하여 본선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이 노래부터 부르고 난 후, 편하게 오락시간을 시작하면 어떨까?


애국가를 불러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발상과 흡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직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긍정적인 생활 태도를 만들 수 있는 소소함은 있을 게 아닐까?

막연하지만 그렇게 믿어 보고 싶은 마음의 발로가 여기까지 흘러왔다고나 할까~


이렇게 우리 회사에 소속된 모든 배가 각선에 알맞은 노래를 만들어 그 배를 타고 있을 때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로 된다면 얼마나 그럴듯할까?


하지만, 생각을 잠깐 옆으로 비켜 세우며 살펴보기를 계속해본다.

그 여러 척의 배가 알 맞는 가요를 찾아내어 그 배에 합당한 가사로 개사하여 노래를 한다면, 그 노래의 원작곡자가 지적 사용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사용료를 내라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노래를 폄하하는 일도 아니니 애교로 보아 넘겨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내 편한 식으로 의구심을 무마해 본다.


사실 지적 사용권은 인정해야 할 마땅한 일이므로, 궁극적으론 지적 사용권에 대한 사용료를 물면서라도 이런 일은 추진할 만하다는 믿음을 남겨두기로 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며 부딪치는 사물들에 대해, 비록 그것이 자그마한 일 일지라도, 그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며, 즐기는 생활을 하다 보면 결국 그것이 자신들 생애를 살갑게 하며 따뜻한 정이 흐르는 보람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게 하는 방편이 되어 주는 게 아닐까?

스스로 그렇게 우기는 마음속에 개사된 가사를 적어 본다.


성은 김이요.


1) 성은 김이요 이름은 디 에스

알파벳 약자로 디 에스이지요

지금쯤 그 누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봐

차마 그 이름을 밝힐 수가 없어요

내 영혼까지 사랑하고 간 사람

내 전부를 사랑하고 간 사람

잊을 수가 없어요 잊을 수가 없어요

찾을 수도 없었어요

그러나 꼭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

성은 김 이름은 디 에스


2) 성은 김이요 이름은 디 에스

알파벳 약자로 디 에스이지요

지금쯤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까 봐

차마 그 이름을 밝힐 수가 없어요

내 모든 것을 사랑하고 간 사람

내 전부를 사랑하고 간 사람

잊을 수가 없어요 잊을 수가 없어요

지울 수도 없었어요

그러나 꼭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

성은 김 이름은 디 에스


[출처] 성은 김이요 - 문희옥 (1991년)



성은 팬이요.


성은 팬이요 이름은 디에스.

알파벳 약자로 디에스이지요.

지금도 동료들이 승선을 원하는 좋은 배이라서

차마 그 이름 밝히기가 겸연쩍네요.

내 청춘 바쳐 승선했던 배 이름.

내 모두를 함께했던 배 이름.

잊을 수가 없어요. 잊을 수가 없어요.

지울 수도 없구먼요.

그러나 꼭 한 번은 더 타고 싶은 배

팬오션 대우 스피리트 호.


* 팬은 팬오션(Pan Ocean 범양.)을 줄인 말.


대우 스피리트호가 태어날 즈음은 세계에 한국의 조선산업도 자랑하고 해운회사도 알리려는 큰 꿈이 실린 설렘을 품고서 거제도 대우조선소 신조선 도크에다 용골 거치하면서 잉태되었지만, 막상 신조선으로 탄생될 무렵 되면서, 나빠진 바깥세상 사정으로 인해 곧 이 회사 저 회사로 선주가 바뀌는 유랑을 시작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안착한 범양상선에 자리 잡으며 안정을 찾아, 한전과 포철의 석탄과 광석을 실어 나르는 국가 산업 발전에 은근한 이바지도 하게 된 배다.

어쨌거나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 해운계를 유랑했던 이 배의 책임 선장으로 부임하여 마지막 노년기의 몇 년을 같이 지내면서 죽음 곁에 나란히 서 있던 태풍까지 뚫고 나온 경험을 함께 공유하였지만, 내가 먼저 명퇴하면서 헤어지게 된 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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