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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안녕하십니까?

지난밤의 안부를 묻는 우리네 형편

by 전희태
131%C7%D7%C2%F7(8307)1.jpg 새벽마다 갑판 위를 돌고 도는 운동을 하던 배의 앞쪽 부분을 브리지에서 내려다 본 광경. 후부 갑판 까지 포함해서 배를 한 바퀴를 돌면 550미터 정도가 된다.



배가 바다로 나선 항해 중인 때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는 게 규칙적인 내 생활이었는데, 아무런 알림도 없이 이 규칙이 깨졌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새벽에 일찍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면서 결국 늦게 운동을 시작하여 생각해본 적 없는 이 문제를 꺼내게 된 꼬투리가 만들어졌다.


어차피 늦긴 했지만 그래도 안 할 수 없는 운동을 위해, 방을 나서기 전에 드리던 기도도 운동을 하며 같이 시행하기로 작정하고 서둘러 방문을 나섰다.


항해 중인 야간에는 해적 침입의 방지를 위해 외부 갑판으로 통하는 모든 문은 안에서 잠가두고 유일하게 밖으로 통하게 열어 둔 곳은 브리지에서 언제나 단속이 가능한 윙 브리지로 통하는 문만을 사용하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운동을 위해 갑판으로 나가려면 우선 브리지로 올라가서 다시 윙 브리지로 빠져나가야 한다. 오늘은 늦잠으로 인해 다른 때보다는 많이 늦어진 시간에 방을 나서서 위층인 브리지로 향하였다.


곧 층계를 밟아 한구비 돌아 오르려는데, 위에서 브리지 내부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아래를 향해 내려오려던 일등항해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일항사가 항해 당직 중에 임의로 브리지를 떠나려는 모습으로 보인 그 행동을 보며 의아한 눈길을 보내는데,

-선장님께서 여태까지 새벽 운동을 나오시지 않아 어찌 되었나? 궁금하여 방으로 가려던 참입니다!

말을 마친 일항사는 내려오려던 걸음을 되돌려 앞장서서는 자신의 당직 장소인 브리지로 되돌아간다.


일순 당직자의 금기사항인 당직 장소 무단이탈이 되는 <일항사가 당직 중의 브리지를 떠남?>을 염려했던 게 내 심정이었는데, 그것이 평소와 달라진 내 형편이 염려되어 확인하려던 일항사의 당직태세였음으로 확인받으니 다시 고마운 마음이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도, 아니 내가 벌써 그렇게 평소 때와 조금만 달리 행동해도 신경 쓰이게 되는 나이가 되었던 것인가? 드는 기분은 뻘쭘하니 묘하다.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지금까지는 이런 인사를 받을 나이란 걸 생각지도 않고 살아왔는데 문득 이 시간 일항사로부터 받은 대우가, 나이 먹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로 깨우침 받으며, 그게 이렇듯 곤혹스러운 은근한 일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 수고해라!.


더 이상 우물쭈물 운동할 시간을 늦출 수 없다는 태도를 지으며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채 성큼성큼 브리지를 통과하여 열 바퀴 돌기를 작정한 갑판상 경보의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배는 계속 반복되는 단조로운 주기관의 쿵덕임을 가진,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한 채 그저 제 달리기에 열심히 매달리고 있다.


선미에 그려진 기다란 항적의 꼬리가, 두고 가는 수평선과의 사이 중간 거리쯤 까지 자디잔 하얀 물거품을 머금은 일자를 만들며 이어주는데 그 뒤편으론 섬 그림자 닮은 구름의 무리가 우리들을 배웅이라도 하듯이 흐릿한 모습을 수평선 위로 드리운 채 아스라이 멀어져가고 있다.


달리는 배와 보조를 맞추어 앞으로 나서는 나를 찾아 귓가에 안녕! 인사라도 속삭이듯 따뜻한, 아니 약간은 후끈한 열기를 머금은, 선속이 일으켜 준 바람이 스치듯 지나친다.


그래, 아직은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인사를 계속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움직여야지...

하지만 땀이 나려면 수월찮이 몇 바퀴는 더 돌아야 할 걸.....


돌아야 할 바퀴수를 줄여가며 갑판상의 경보를 열심히 계속하는 오늘 새벽은 다른 날보다 많이 환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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