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 복판에서 쌍둥이를 만나다
선명 CHRISTINA BRAVO. 국적 SINGAPORE.
철조망을 둘러치고 남하하고 있는 우리 배의 왼쪽 편으로 5마일 정도 거리를 두고 우리 배와 반대로의 코스로 지나가려는 배가 나타났기에 쌍안경을 들어 살펴보기 시작한다. 헌데 배의 실루엣이 너무나 우리 배와 흡사하여 자세히 알아보려고 AIS정보를 들쳐 본다. 배의 길이 189.9미터, 폭 32미터, 깊이 12.8미터이다. 뭐 우리 배의 PARTICULAR 수치를 한자 한 획도 틀리지 않게 그대로 옮겨다 넣어준 것 같은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행선지를 보니 지난 항차 우리가 들렸던 인도의 HAZIRA를 향해 가고 있다.
어쩌면 같은 조선소에서 같은 도면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시스터 쉽이 맞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VHF 전화로 불러서 물어본다. 예상했던 대로 우리 배가 신조선으로 나왔던 중국 정허 조선소에서 작년 4월에 신조되어 나온 배라고 알려 준다. 그야말로 예상이 빗나가지 않은 자매선임에 얼떨떨한 기분이 든다.
-그 배의 콘스탄트는 얼마나 됩니까?
-.....500톤에서 300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일항사에게는 지옥같은 배죠.
그런 문답을 주고받으며 상대방도 웃었고 물음을 던졌던 우리도 똑같이 웃었다.
사실은 이 만남이 난생 처음인 배이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왜 이런 이심전심의 감정이 통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을까?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신조선이면 당연히 자신의 형편에 알맞게 만들어 갖는 LOADING MASTER(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는 기본 수치들이 있는 데 본선에서는 그 숫자들이 어딘가 현실과 동 떨어진 구석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가만있어야만 하는 부동의 UNKNOWN CONSTANT가 매 항차 달라지는 화물의 종류나 선적량에 따라 들쑥날쑥하는 변화를 보이어 애를 먹는 현실에서 시스터 쉽이라 판단되는 저 배는 제대로 되어 있을까? 만약 그렇기만 하다면 그 정보를 얻어 우리 배에서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던 것인데, 그대로 되돌아 오는 답변으로 봐서는 우리와 별다를 바 없는 상황이란 걸 서로 알아채 버린 그런 상황을 보였으니.....
짧은 문답 안에서 우리 배와 흡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걸 깨달으며 몇 마일의 공간을 두고 하는 대화였지만 거의 동시에 같은 웃음소리를 내어 통화하게 되었으니, 잠깐 동안이나마 동병상련의 또 다른 친근감마저 느꼈던 것이리라. 좀 더 이어진 대화에서 헤비 발라스트 선적 홀드인 3번 창에 발라스트 해수를 선적했다가 덕트 킬(DUCT KEEL)로 물이 새어 나오는 바람에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허허~ 우리 회사의 또 다른 시스터쉽인 D호가 겪은 일을 가장 새 배인 그 배도 같이 반복했음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스위치 하여 지나치는 상황에서 우리 배의 지난 항차를 그대로 답습한 것 같은 태국 THA SALA에서 FELD SPAR를 싣고 인도의 HAZIRA로 간다는 이야기에 시스터쉽의 각별한 인연이 한번 더 가미된 것 같은 느낌에 친근감을 더욱 북돋우며 그 배가 항상 안전항해하기를 빌어주는 말을 보내주며 통화를 끝내었다.
그들 중국 조선소가 좀 모자라는 실력으로 만들어 준 본선이기에 승선한 후, 신조선만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여러 가지 소소한 일들의 발생으로 바쁘고 어수선한 선내 생활을 하게 되어 은근히 심통이 나있는 것도 우리 배 모두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은 중국 조선소가 2010년도에 보여준 조선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이며 우리나라의 조선 실력과 비교하여 약간의 안도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근래 들어 모든 분야를 통틀어 우리를 추월하려는 저력을 발휘하여 만날 때마다 달라지는 그 나라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그냥 갸우뚱 고개만 주억거려 주는 걸로 끝내기에는 어딘가 미흡한 앙금이 남는 중국의 발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