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보낸 편지(2)
어느새 콜롬비아를 출항한 지 닷새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파란만장(?)했던 본선과 나의 콜롬비아에서의 나날은 짧은 기간이지만 책으로 써도 될만큼 사건, 사고가 있었던 시간이었죠. 상륙도 안되고 허구헌날 이런저런 선물을 기대하는 콜롬비아 친구들의 낯두꺼움도 일조를 했지만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사건은 배에서 떨어져서 물에 빠지는 두 번은 하기 싫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배 프로펠러에 엉킨 Mooring Wire까지...이래저래 올해 남은 액땜은 모조리 했다고 저나 본선이나 말해도 될만합니다.
먼저 물에 빠진 사건을 살펴보면....
사건은 지난 8월 6일 아침 여섯시로 되돌아갑니다. 늘상 아침에 Draft를 읽고 본선에 실은 화물량을 계산하는 것이 아침 당직 첫 번째 일인 관계로 아침 당직 인수인계후 바로 포트 쪽에 접안한 바지로 옮겨타기 위해 Ship's Office를 나섰죠. 앵커리지에서 짐을 싣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양현과 뒷쪽까지 Jacob's Ladder를 늘어뜨리고 살펴야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본선에는 그렇게 긴 Ladder가 없는데다가 이쪽 친구들이 친절하게도(?) 아침마다 서비스 보트를 내주기 때문에 바지에서 보트로 옮겨타서 배의 여섯 군데 Draft를 모두 읽고 다시 배로 올라와 화물량을 계산하곤 했죠. 앞의 이틀간, 별탈은 없었지만 대양 쪽에서 밀려오는 Swell이 심상치 않아서 Draft를 읽는데 적잖게 애를 먹던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죠.
그 날따라 주머니의 휴대폰과 워키토키까지 실항사에게 넘겨주고 헐렁하게 풀려있던 안전화의 끈도 바짝 쪼여서 Ladder에 올라 바지로 옮겨타고 있었습니다. Swell때문에 바지와 본선 사이의 팬더(초대형 타이어)로 먼저 옮겨가서 바지로 옮겨가기 위해 뒤로 돌아섰을 때, 바지와 본선을 연결해둔 Mooring Wire가 갑작스레 튀어 오르더군요. 반사적으로 와이어의 탄성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틀자마자 튀어든 와이어에 얻어맞고 바로 물로 쳐박혔습니다. 빠지자마자 갑작스레드는 짜증...-_-;; 일단 팬더와 본선 사이에 끼어서 오징어가 되는 일은 피해야 했죠. 하여 팬더에서 벗어나 바지로 올라가려 했지만 따로 족장이나 로프가 설치된 것이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던차에 바지쪽 선원들이 알미늄 라다를 내려줘서 그걸 붙잡고 올라오는데 성공했죠.
그 뒤부터 한 두어시간여를 Port Authority와 Security들에게 시달리느라 Draft는 읽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다친데가 없는데도 일단 바지선에 눕혀놓고(!)의사를 부른다, 뭐한다 넋을 빼놓더니 의사랍시고 온 친구는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의료관리자' 수준의 친구더군요.
양쪽 팔에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진 것을 보면 당시 저도 경황이 없기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이런 난리를 당하고 배로 올라오니 다들 여기저기 찔러보며 괜찮냐고 물어보더군요. 원래 이런 일들을 겪고나면 그렇듯 죽을 뻔 했던 당시에는 전혀 신경도 안쓰던 일이 올라오니 얼마나 쪽팔리던지. -_-;; 위에서 지켜보던 타수와 실항사, 포트 시큐리티들도 모두 한 목소리로 바지선의 Mooring Wire관리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낮에 다시 내려다보니 와이어를 도르레 같은 것에 고정시키고 튀어오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놨더라구요. Port쪽에서 사고원인을 바지쪽에 압박했던 모양입니다.
사고를 겪고 얼마 지나고 나니 온몸이 쑤시고 결리고...긁힌 곳은 또 왜 그리 쓰라리는지... 배에서도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괜찮느냐? 어디 아픈데는 없냐.' 해명하고 다니는데 아픈 것만큼 부끄러워서 몸둘바를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살아서 쪽팔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새삼 깨닫는 기회가 되었지만요. 사고 이후에 그 사고에 대해 복기를 해보자면 애초 위험해보이는 상황에서 Ladder에 올랐던 제 불찰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며칠째 Swell에 오락가락하던 차였음에도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 또한, 원래 바지쪽에서 내려오는 이들을 잡아주던 Stevedore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걸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사고의 이유 중 하나가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일단 내려가기에 앞서 구명조끼와 안전화, 안전모를 착용하고 Ladder앞에서 복장과 안전장구를 다시 확인하고 내려갔다는 것은 사고가 그저 '준사고'로 끝나는데 일조를 했다고 여겨집니다. Floating Crane(Barge)의 무게도 2,000여톤에 달하고 본선의 덩치도 만만치않은 상태에서 그 사이에 추락했을 때, 구명조끼가 없다면 바로 배 아래로 빨려들어가는 불상사를 만날 수도 있었다는 전언에선 새삼 진땀이 났습니다. 또한, 와이어에 얻어맞은 것도 구명조끼 위였죠. 나중에 올라와서 확인을 하니 와이어에 맞은 자리가 찢어져있더군요. 구명조끼가 없었다면 그 자체로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떨어지면서 본선 외판에 머리를 부딪혔지만 역시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고, 평소에 풀어놓던 안전화 줄을 바짝 쪼이고 내려온 덕에 울퉁불퉁한 구조용 알미늄 사다리에 오르면서도 맨발 신세를 면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도,
사고를 예측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런저런 준비를 잊지 않고 큰 사고를 모면한데는 가족들의 기도와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본선에서도 선장님이 이번 사고을 타산지석 삼아 안전장구의 착용을 생활화하자고 사관들을 따로불러 교육까지 했을 정도니...이래저래 마루타가 된듯한 느낌입니다만 이후로 모든 이들이 안전장구의 착용을 번거로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된다면 그것이 또 전화위복이 아니겠습니까.
Mooring Wire로 생긴 일이 저뿐만 아니라 출항하던 본선의 프로펠러까지 휘어감는 웃을 수 없는 일로 마무리 된 것은 덤입니다. 콜롬비아는 출항 때마다 잠수부까지 동원해서 배 바닥까지 살펴서 혹시나 마약을 숨겨둔 곳이 없는지 살피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마약 탐지를 위해 들어간 잠수부가 찍어온 사진에는 저를 후려갈겼던 똑같은 규격의 와이어가 프로펠러를 휘감고 있는 웃을 수 없는 장면이 담겨 있더군요. 프로펠러부터 샤프트까지 둘둘 말려있는 와이어를 모르는채로 출항했다면 샤프트를 타고 들어와 기관실이 침수되거나 프로펠러의 블레이드가 파손되어 바다 한 복판에서 배가 서버리는 대참사를 당할 수도 있었을테니 콜롬비아가 마약의 왕국인 것을 감사해야하는 일인지 잠깐 헷갈렸습니다.
하여간 저를 후려갈 긴 와이어가 배의 발까지 잠시 묶어두었으니 이래저래 콜롬비아에서의 날들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고 할 수 있죠.
어느새 대서양 한 복판, 우리가 지나온 카리브해는 연달아서 달려드는 허리케인 때문에 몸살이라는 소식이 들리지만 저희는 평온하기 이를데 없는 조용한 바다를 달리고 있습니다. 모쪼록 더위가 기승이라는 모국의 땅에서 우리 식구들도 평온한 나날들 보내시길 간구합니다. 파란만장 둘째의 콜롬비아 기행(?)소식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죠.
2012년 8월 14일,
북대서양 한 복판에서,
둘째가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