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기항하며 베트남 전쟁 중의 베트남을 떠올리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 더 달려가면 월남 땅 중부지방인 나트랑 부근의 비나신에 도착할 것이다. 오랜만에 찾는 나라이라서 예전에 다녀봤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 오른다.
나와 베트남과의 첫 인연은 1968년 월남전이 한창이던 때, 해운공사의 제주호를 타고 사이공에 입항하기 위해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때로부터 시작된다.
현지인 도선사의 안내 하에 강을 타고 사이공을 향하여 반쯤이나 갔을까? 느닷없이 배의 왼쪽과 강가 사이의 물 위로 쾅하는 굉음과 함께 물기둥을 세워주는 베트콩의 로켓 포탄 공격을 받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고엽제의 살포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을까?
구불구불 흐르는 강물 줄기를 뺀 사방을 둘러보면 평원 같고 뻘밭 같기도 한 널따랗고 나지막한 잔디밭 같은 땅으로 이어져 있다.
웃통을 벗은 채 작은 스피드 보트 위에 기관총을 거치하고 무장한 미군들이 바쁘게 우리 배 주위를 돌면서 수행하는 에스코트를 받던 중에 공격을 받은 것이다.
강물의 휘어짐을 따라 배를 돌리어 어느 강둑-강가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곳-을 지나치면서 우리 배를 향해 로켓포를 쏘아 올리며 숨던 베트콩의 그림자를, 반사적으로 포탄이 날아온 곳으로 옮기던 눈길 속에서 발견하고, 쌍안경을 들어 그들의 그림자를 확인해 보려던 나를 선장님은 평소와는 다른 엄하고 강력한 투로 말리며 말하였다.
-2 항사 자네 죽고 싶어 그래, 어~엉?
그런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기는 순간이었지만, 힘들었던 6.25에서도 살아남았는데 기껏 이런 곳에서 죽을쏘냐? 하는 오기가 떠올랐기에 겁 없이 나서려던 내 치기일 수도 있지만, 제대한지 일 년이 채 넘지 않은 시기였으니 그럴 만도 하였으리라.
당시 우리 배의 뒤로는 월남군의 보급을 맡은 MSTS(미 해군 수송단) 선박이 바짝 따라붙어서 같이 사이공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배를 놔두고 우리 배를 공격한 것은 강물의 좁은 수로에서 앞쪽의 배를 제압하면 뒤쪽의 배는 그냥 거저먹기 식으로 손 안에 넣을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을 한 것이 아닐까?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그렇게 판단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5,000톤 급의 원양선이 드나들 수 있던 월남 전쟁 중의 이 강가의 나무들은 모두 고엽제로 처리되어 마치 잔디 풀들만이 있는 운동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두 번째의 베트남과의 인연은 그로부터 7년쯤이 지난, 지금으로부터 만 25 년 전인 1974년 3월 중순경, 월남 패망 한 달 전쯤, 역시 사이공이 무대였다. 쌍용시멘트의 수출용 포대 시멘트 4,000여 톤을 부려주기 위해 사이공을 찾았던 때였다.
그런데 접안하고 나니 부두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니 불안정된 상태로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 팽배해 있었다.
선원들 상륙도 말리고 있었기에 아무도 나가지 않은 채, 우리는 대리점의 제대로 된 협조도 없이 가까스로 본사와 연락을 가졌다. 무조건 시멘트를 부두에 풀어주고 출항하라는 지시에 의해 바쁘게 포대 시멘트를 부두에 내려놓자마자 별다른 하역 서류도 받은 바 없이 그냥 출항했던 것이다.
그렇게 떠나서 며칠이 지난 후, 바다 위에서 사이공 함락이라는 비운의 뉴스를 들으며, 우리가 베트남전 종전 후의 재건에 필요할 몇 천 톤의 시멘트를 보태주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자조 섞인 말들을 주고받으며, 몰라서 겁 없이 지내버린 겁난의 시간에 새삼 간담이 서늘했었다.
그때가 베트남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이고 내가, 내 뜻에 상관없이, 그들을 도와주었던 일인데, 이제 우리 배를 수리하려고 드라이 독킹을 위해 베트남을 다시 찾는 것이다.
강산이 변하긴 변한 것이다. 아니 무척 변한 것이다.
배의 수리라는 명제가 첫째로는 우리를 위한 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수리를 해주는 현지의 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찾아가는 수리선 독이 있는 비나신이란 곳은 사이공(이미 이름을 호찌민시로 바꾸었지만)보다는 좀 더 북동쪽인 월남 중부의 나트랑 교외에 있는 어촌 도시이다. 우리나라 현대그룹에서 드라이독을 파서 수리조선소를 만들어 주고, 수리를 위해 찾아오는 배들을 맞이하는, 아직은 현대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새벽 6시 현대 미포 조선소가 지은 이곳 월남 땅의 VINASHIN DOCK에 들기 위해 달려온 항정이 끝나간다.
예정상 6시에 도착하면 6시 30분에 도선사가 탈것이라던 시간이 그대로 흘러버리고 8시에 도선사가 탈것이니 도착 즉시 투묘 대기하라는 연락을 받는다. 입을 삐쭉이며 투묘하고 기다리는데 8시가 넘도록 소식이 없더니 또 30분 늦어 나타난다. 이미 날이 밝아오며 바깥 경치가 보이는데 뒷산이 높게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형세의 산세와 어울려 바닷가는 모래밭으로 산뜻한 풍경을 내보이고 있다.
도크 앞 투 묘지에다 닻을 내리고 잠시 있으니 법무부 직원과 세관원이 승선하는데 대리점까지 합해서 7명이다. 입항 수속하러 올라오는 관리를 따라서 무슨 일로 올라온 줄을 이해하기 힘든 그들 모두를 위해 작은 봉투 속에다 간단한 선물을 넣어 꾸러미를 만들어 내며 25년 만에 만나는 아직도 가난에 찌들어 있는 이들의 현재 생활에 궁금증을 품어본다. 양주 한 병씩의 선물을 보태주며, 수속을 끝내고 나니 이제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지낼 일들의 시작이 순조로이 시작됨을 알게 되겠다.
환한 태양 빛에 부신 눈을 들어 바라보니 독을 파고 남은 저쪽 담장 너머로 드문드문 서 있는 키 큰 야자수를 바람이 쓰다듬어 주니 열대의 뜨거운 열기가 절로 식혀지는 듯하다.
조금 더 왼쪽으로 눈을 돌려 보니 저쪽 섬들과의 사이에 얕은 여울목 같은 바다가 있어 에메랄드 빛 연초록이 코끝을 시리게 해주는 또 다른 경치를 보여준다. 이런 남국의 조용한 경치는 여기가 배를 수리하는 수리 독이 있는 시끄럽고 활기찬 곳이란 사실을 잊도록 망각 속으로 들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