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위험을 피하는 조선술
오후 들어 루존도의 끝단도 지나고 민도로 섬 옆에 도착하여 변침 할 때까지도 계속 불어주던 바람과 그에 따른 너울의 영향으로 계속 울렁거리며 달리던 배가 저녁 식사를 마칠 때쯤 되어서야 겨우 잔잔한 날씨로 돌아서 주었다. 사진 찍을 거리라도 있을까 브리지에 올라가니 필리핀 조타수가 무어라고 이야기하는데, 다급하게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선수에 무엇인가 우리 배의 갈길에 놓인 물표를 보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른바 경계 보고(LOOK OUT)인 것이었다.
무엇인가 얼른 쌍안경을 들어 볼려는데 이미 그 물표는 좌현 선수 쪽에서 선수루 불왁크(BULWARK) 밑으로 들어서며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된다.
-배를 빨리 왼쪽으로 틀어줘.
쉽게 일항사에게 지시한 후 다시 정정해서 조타 명령을 내린다.
-Hard Port!!!
최대 타각으로 배를 왼쪽으로 돌리란 조타 명령이다. 배의 선수가 움찔거리며 왼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때 즉시,
-Midship!
명령을 내리며 왼쪽 윙 브리지로 나가서 그 물표기 어찌 되었는지 확인하러 나가는데 일항사도 동행한다.
좌현 쪽 저만큼 떨어져 있든 작은 어선이 우리 배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서며 방금 선미부를 지나쳐 배 뒤로 빠지는 어망의 부표를 향해 다가서는 게 보인다.
좁은 구역에서 위험물을 만났을 때 그를 피하기 위해 - 최소한 프로펠러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 사용해야 하는 조선 법칙인 위험물 표 쪽으로 배의 선수를 돌려주라는 것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확연히 눈으로 확인해 보려는 동작이었다. 마침 식사 교대차 올라와 있던 3항사와 실항사에게 설명해주는 좋은 기회도 가졌다.
항해 중 선수 가까운 한쪽 현에서 갑자기 위험 물표를 발견하여 피하려면 어떻게 조타명령을 내려야 하는가?
하는 내 물음에 그들은 위험물을 인지한 반대쪽으로 배를 돌려주겠다고 대답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면 결과적으로 그 물표를 본선의 선수로 깔아 뭉개며 궁극적으론 프로펠러로 타고 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이를 피하기 위해 이용하는 선체 운동의 하나인 KICK을 알려준다.
KICK의 현상 - 프로펠러가 우측으로 도는 선박(RIGHT HANDED PROPELLER SHIP)에서 강한 조타 명령을 내리면 선미가 조타명령이 내려진 반대편으로 편향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해준다.(대부분의 單스크루 선박은 라이트 핸디드이다) 따라서 위험 부유물을 정선수 가까이에서 발견했을 때 급하게 써야 하는 조타 명령은 그 위험물이 보이는 쪽으로 조타 명령이 내려져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위험물이 본선 프로펠러에 가할 수 있는 접촉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오늘도 그런 기본적인 조선 법칙을 기억하지 못하고 급한 김에 피한다고 그냥 오른쪽으로 돌려주는 조타 명령을 내렸다면 비록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되긴 했지만 저렇게 유유히 우리 배 선미 쪽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어망 부표를 볼 수는 없었으리라.
들고 있던 카메라로 그 물표를 찍고 또 옆에 지켜서 있던 어선도 찍었다.
어쩌면 이 사진들은 그들 어선이 우리한테 시비를 걸어올 경우 쓸 수 있는 좋은 증거물일 수도 있으니, 잘 보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주며 브리지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