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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시를 대비한 응급약

사전 준비는 언제나 필요한 일

by 전희태
090809-FREE UP 008.jpg 계류삭이 원활한 작동을 할 수 있게 Fair lead를 분해,주유, 조립하는 작업 모습



배에서는 여러 가지의 무거운 물건을 든다든가 옮기는 일을 시행할 때는 정확히 서서 손발을 공평하게 대우하며 각별히 허리 조심을 하도록 교육도 하고 포스터를 붙여서 알리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사고는 나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두 발로 서서 버티며 생활해야 하는 디딤 틀인 선체(船體)가 알게 모르게 움직이고 있는 유동체이기에, 우리들의 자세도 그에 따라 의도함에 관계없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둔 안전교육도 그래서 필요한 것은 아닐까?


며칠 전 갑판장이 갑판에서 작업을 하던 중 약간 비틀어진 자세에서 손을 내민 것이 크게 과장된 행동인 것 같지도 않았는데 척추가 아파오기 시작하여 황당한 마음을 삭이며 고민에 빠져 버렸었다.


그때 마침 그런 식의 허리 다친데 즉효약이라며 기관장이 준비해 가지고 있었던 약을 한 번 복용해 보라며 전달해 준 사실을 전해 듣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갑판장의 아팠던 척추 통증은 그 약 하루 분만 먹었는데도 깨끗이 나아서 하루 분을 더 청해 먹었다더니, 이제는 다치기 전과 같이 제대로 걸어 다니며 일하고 있다.


그렇듯 신기한 효능을 가진 약은 P항 옆의 어느 시골 작은 약국에서 지은 매약이란다.

보통 허리를 삐었다는 상황, 그래서 아주 통증에 시달리는 증상에는 그만이라며 기관장도 자신이 허리를 다쳐서 쩔쩔매던 중, 손위 동서가 그 약방을 가르쳐 주어서 의료보험으로 약을 사서 효험을 보았단다.

혹시 이번 승선 중에도 그런 일이 재발이라도 할까 봐 준비 차원으로 더 사 갖고 온 것을 쓰게 된 것이라 했다.

기관장 자신은 당장 아프지 않으면서도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했던 것이, 새롭게 다친 사람에게 특효를 주게 된 거다. 준비성은 역시 이래도 저래도 필요한 일임을 확인시켜준 셈이지만, 나는 그 준비성이 내준 결말이 정말로 기쁘다.


우리 배의 일하는 데 필요한, 아니 일을 꼭 해내야 하는 사람이 건강을 되찾게 된 것이다. 호주 입항 전에 마무리지어야 하는 PSC 등에 대비한 여러 가지의 작업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갑판장을 돌려받은 셈이니, 그리도 고마운 거다.


이런 내 마음의 갈래를

-내가 너무 사람은 둘째로 치고 일만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으로 들여다본다.

하지만 직장에서 일도 못하며,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 비록 어쩔 수 없는 사유가 있어 그랬다 하더라도, 바람직한 경우는 아니다.


그러니 본선을 맡고 있는 책임자로서 그런 마음 가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너무 야속하다고 질타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 변명 아닌 변명을 스스로에게 들려주어 합리화시키면서, 이제 나도 그 약방을 찾아 신기한 약효를 갖고 있는 그 약을 비상시에 대비하여 처방 조제받는 일을 준비할까? 생각해본다.

틀림없이 그 일은 의료행위를 위한 법의 어느 한 부분에 조금은 벗어난 사례를 갖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추측도 해보지만, 망망대해 한가운데서는 어쩔 수 없는 필요 약(악)이 아닌가?


당장 주위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바다 한가운데 선박에서 발생한 사고와 그로 인한 부상은 본인 자신의 큰 아픔이기도 하지만 한솥밥 동료들에게도 여러 가지 피해를 줄 수 있는 힘든 일이다.


제삼자로서의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는 고립된 선내에서 발생한 사고 뒤의 후유증들은. 어휴! 우리 선원들에게는 오만가지 애간장을 녹이는 일로 남겨지기 일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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