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제, 안전항해 그리고 귀천 영혼을 위한 제사
본선 9번 선창(船艙)에서 안전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 베트남인 젊은이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제사를 항해 중에 간단히 실시해야지 하는 마음을 비나신도크를 떠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오늘 비록 제대로 된 돼지머리는 없지만 전 선원을 선교와 기관실 두 팀으로 나누어서 작은 위령제를 지내 주도록 했다.
결코 미신을 조장하려고 그런 행사를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배에서 통상적으로 가지는 안전항해를 비는 적도제 때를 이용하여 시행하도록 한 것이다.
선원들에게는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하여 기도나 절을 하고 싶은 사람은 하도록 한 후, 모두가 자리를 하고 앉은 뒤풀이 모임에서 비나신 도크에서 사고 났을 때에 내가 만났었던 흰나비의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진지한 가운데 저마다 자신들이 듣거나 경험했던 비슷한 이야기들도 마구 쏟아들 내고 있다.
비록 그 광경을 보았어도 무심히 보고 넘겼으면, 이미 그런 걸 보았다는 생각조차 남아있지 않겠지만, 아무튼 그날 아무도 그 흰나비를 나와 같이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나비를 보는 순간, 아! 저 나비는 그 젊은이 영혼의 표상이구나! 하는 믿음 같은 감명이 들었기에, 계속 나비의 행동을 지켜보며, 기왕이면 빨리 그 좁고 어두운 선창을 벗어나서 깨끗하고 환한 세상으로 날아올라라! 하며 꾸물거리듯 펄럭이는 나비의 날갯짓에 응원을 보냈던 것이다.
더욱 홀드(선창) 위를 모두 벗어나 푸른 하늘 안으로 날아들어 내 눈앞에서 사라지던 순간과 교대하듯, 축 처진 사고자의 몸체가 동료 두 사람의 부축 아래 곤돌라 위에 눕혀진 채 30톤 크레인에 의해 선창에서 들어 올려져 빠져나오던 모습이 내 눈 안으로 들어온 점은 우연이라고 믿기에는 어떤 엄숙한 엇갈림마저 있어 보였다.
사고 좀 전, 내 방 창을 통해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날쌔게 움직이며 작업을 하던 그 청년.
베트남인 치고는 흰 피부로 잘 생긴 청년이구나! 문득 느끼며, 20여 미터의 허공을 두고 몇 초 동안 그냥 나 혼자 일방적으로 내려다보며 혼자의 머리 속에 그를 담았던 것이 나와 그의 첫 인연이고 그냥 마지막이었다.
비록 그는 나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친 무수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지만, 나의 눈앞에 그렇게 나타났다 사라진 인연 역시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니 명복을 빌어주는데 앞장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비야! 너에게 지워졌던 젊은 영혼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었겠지? 간절히 바라며 적도제 행사를 끝내었다.
저녁 무렵.
바다 위로는 이미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집에 전화를 거니 마침 어머니가 받으시며 아내는 무슨 일로 인지 지붕 위에 올라가 있다고 하신다.
사다리 타고 지붕에 올라간 것일 테니 아직 서울에는 어둠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
불량한 통화 감도 속이라서, 무슨 말씀인지 자세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어머니와의 통화였지만, 아내가 서둘러 지붕에서 불러 내려지고 있다는 감은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급하게 내려온 모습을 수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거친 숨소리 속에서 찾아내며, 그 모든 게 집수리를 해 내려고 취한 행동임을 확인하였다.
그렇듯 여자의 몸으로 잽싸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아내의 형편을,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돕지 못하는 내 처지가 잠깐이나마 무척 미안한 마음을 품게 한다.
뱃사람들이 이따금 가져 보게 되는 또 하나의 작은 비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