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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을 흐르는 옅은 기름기

스콜, 무지개 그리고 기름기

by 전희태
2%B9%AB%C1%F6%B0%B302(5560)1.jpg 스콜이 지나가며 내린 비로 갑판에, 시냇물도 생기고 무지개도 생긴 모습


우물쭈물함을 배제한 채 순식간에 앞쪽 하늘에 검은색 장막을 드리워 깜깜하게 만들어 놓던 구름에서 서늘한 스콜성의 소나기가 퍼붓듯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쨍쨍한 햇볕 아래 가물어 있던 개천이 갑자기 불어나는 홍수라도 만난 양, 금세 작은 시냇물을 갑판 위에 만들어 주니 갑판상 여러 개의 스커퍼(주*1)에선 포물선을 그리는 폭포수 되어 순식간에 선외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갑판 청소는 이미 했지만 아직도 조금씩 남아 있던 화물의 찌꺼기들을 깨끗이 씻겨 주는 모양이라 후련해지는 기분으로 시원한 그 물줄기를 브리지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그 흐르는 물 위로 기름기 때문에 생기는 아롱진 무지갯빛 유막이 눈 안으로 비쳐온다.

비 때문에 갑판에서의 과업을 하지 못하고 실내 작업을 하고 있든 DAYWORK TEAM의 조장인 갑판장에게 당직사관인 삼항사를 급히 내려 보내어, 갑판 위로 기름기가 흘러나오는 원인을 급히 찾아내어 조치하라는 지시를 준다.


비가 퍼붓고 있는 갑판에 우비를 입고 나타난 갑판장이 기름기가 흘러나오는 물줄기를 찾아 선수 쪽으로 계속 전진하더니 3번과 4번 선창 사이 크로스 데크 쪽에서 사라진다.


잠시 후, 4번 선창 전부(前部) 해치 폰툰 개폐용 유압 작키에서 약간 흘러나와 있던 기름기가 빗물에 씻겨 흘러내리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보고를 하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이다.


옅은 유막이고, 또 이런 외진 곳의 바다이니까, 그대로 흘러내리게 해서 갑판 위가 스스로 깨끗이 닦이도록 하는 것이 차라리 바람직하다는 태도이다.


그런 의중은 생각건대, 여기서 기름기를 미리 씻겨나가게 한다면 까다로운 호주 항구에 입항 중 일 때, 혹시 만날 수 있는 지금 같은 비로 인해 갑판에서 기름기의 무지개를 보는 낭패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일종의 사전 청소 방법이 아니냐?라는 뜻으로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 환경과 자연보호를 위해서는 어떤 경우라도 기름기의 선외 유출은 용납되는 일이 아닌 금기 사항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즉시 대처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게다가 이 배의 예전 경력에는 유성 빌지가 잘못 배출되어, 모국의 해상보안청의 비행기에 적발되어 벌금을 물었던 전력(前歷)도 있단다.


지금 승선 중인 사람들이 아직도 유성분의 선외 배출에 대해 저 정도의 무딘 감각이라면 두 번째의 유루 오염사고가 없으리란 보장 또한 힘들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잠시 대처할 사항을 머뭇거렸다.


이윽고 안일한 마음가짐을 주의 환기시키려는 의도로, 어떻게 해서라도 더 이상 기름기가 갑판상을 흐르지 않게 조처하라는 강력한 지시를 다시 내려 주었다.


몇 사람의 작업원이 더 나타나서 임시 조치를 해 놓으며, 원천적인 유압자키 관련 수리는 비가 개인 후에 하겠다는 보고를 한다.


그동안 갑판을 흐르던 물 위로 떠내려 오던 기름기도 사라져 버린 것이 아마도 임시조치가 제대로 먹혀 들어간 모양이다.

게다가 적은 양의 유막이라서, 배가 달리고 난 선미의 항적에 남겨지는 기름기의 흔적도 별로 크지 않을 거라는 경험의 바람대로 되어 준 것이다.


이제 기름기를 새어 보내던 곳의 임시 조치도 끝났으니 더 이상의 안달은 하지 않기로 한다.

스콜 역시 찾아올 때와 같이 어느새 지나가 버리니, 날씨 또한 비 오기 전같이 환하게 회복되고 있다.


주*1 스커퍼(Scupper) : 선박의 갑판상에서 선외로 바닷물, 빗물 등을 배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개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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