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汽笛) 수리, PSC 준비,
뉴캐슬 도착까지 남아있는 날짜가 겨우 엿새뿐인데, 비가 자주 내리고 있어 마음 놓고 선외 작업을 할 수 없는 것이 큰 일이 되어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누군가 <일하기도 힘든데 비나 오라지~> 하는 바람을 가지고 빌었다던가 하여간 농담의 말로 그런 이야기도 선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연일 강행군으로 계속되는 각종 정비 작업에 모두가 지쳐가고 있어 그런 말도 나오겠지만, 그런 농담이 돌아다닌다는 점이 내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 배의 입장으로는 그럴 처지가 못 되는 것이, 미비된 정비 상태로 입항하여 검사에 불합격이라도 받게 된다면 그로 인한 후유증의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힘들 일을 미리 방지하려고, 단번에 PSC점검 합격을 목표로 삼았고, 남은 엿새는 그런 목적 달성에 모자랄 지경이니 계속 달래고 다독이며 일과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톱 브리지의 메인 마스트 위에 달려 있는 에어혼(기적)을 점검하면서, 소리를 들어 보려고 당겨 본 수동식 작동 레버였는데, 그냥 맥없이 라인을 인도하던 도르래가 마스트에서 탈락해 버리는 고장으로 연결되어 버렸다.
급히 기관실 공작실에서 도르래를 깎아내어 제자리에 용접하려는데 비가 또 부슬부슬 내린다. 할 수 없이 점심식사 후로 용접 작업을 미룬다. 다행히 점심 식사가 끝나가는 무렵엔 그래도 우중충한 날씨지만 비는 그치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도르래를 꿰차고 마스트에 올라간 조기장(기관부원의 우두머리)은 녹슬음이 너무나 심해 탈락되었던 부분을 도려내고 새 철판으로 용접해 준 후, 그곳에 도르래를 달아주는 작업으로 철판을 종잇장같이 다루는 손재주를 보여준다.
작업이 끝났다는 확인을 받은 후 작업 부위에 페인트 칠을 해주는 뒤처리도 하기 전에, 급한 마음은 다시 수동 레버를 당겨 보도록 재촉한다.
그렇게 당기고 보니 이번에는 멀쩡해 보이던 당김 줄의 중간쯤에 와이어가 삭아 있던 부분이 숨어 있다가, 힘을 받자마자 그냥 허무하게 끊어져 내리고 만다.
이건 완전히 물에 빠진 놈 구해주자 보따리 내놓으란 소리를 듣는다는 식으로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나니 옆에서 또 다른 일이 달려들어 혀를 차게 만든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치러낸 셈인, 15년을 넘어선 나이의 배이라서인지, 사방에 깔려있는 게 모두 일을 하며 돌보아야 할 건수들로 산적해 있다.
먼저 타고 있던 사람들이 너무나 무심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했다고 타박을 받아도 할 말 없는 환경 같아 그때마다 한숨이 절로 난다.
처음 승선 발령은 이번 한 항차만 타기로 한 임시 배승이니, 처음에는 그냥 넘기자 싶었지만, 그래도 타고 있는 날까지는 내 이름을 걸어 놓고 있는 배다.
내리는 날까지는 정확하고 제대로 된 일로 모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 아니냐는 생각이 나를 그냥 놔두질 못해서 이러고 있다.
창고를 뒤져서 당김줄에 알맞은 가느다란 와이어로프를 찾아내어 알맞게 잘라내고 끝부분도 손질하여 중간이 끊어진 당김줄과 완전히 교체해줬다.
작업이 끝났다. 조바심을 가진 채, 테스트를 재실시 한다. 힘껏 당겨지는 와이어를 통해 묵직하게 전해지는 이끌림 끝에 드디어 에어혼은 우렁찬 소리를 허공으로 쏟아 내준다.
절대로 개일 것 같지 않든 부슬거리며 달려들던 빗줄기도 그사이에 맑아지는 하늘에 밀려 뒤쪽으로 물러가 버렸다.
선수가 향하고 있는, 환해진 하늘가로 울러 퍼지는 에어혼 소리와 함께, 내 뱃속 가득히 차 있던 가스라도 방출된 듯 한 시원함을 만끽한다.
한 동안 머릿속을 메우며 애를 먹이던 한 가지 일이 무사히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