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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한 저녁 외식 계획

자체 수리 실패하면 큰일 나지요

by 전희태
핸드레일수리2.JPG 항해중에는 선적에 대비한 선창청소와 각종 수리 보강 작업이 계속된다.


부두에 들어와 접안한 후 벌써 하룻밤이 지났고 오늘 하루도 기약 없는 일을 성사시키려고 기다리면서 할 일 없는 모습 된 채 또 지나쳐 버린 것이다.

PSC 검사를 대리점을 통해 신청해 놓고 기다렸는데, 검사관은 오지 않고 시간만 흘러 아무 일도 못한 채 무기력했던, 그 시간이 마냥 아쉬울 뿐이다.


어제 오후, 우리 배 보다 늦게 들어와서 우리 배의 뒤쪽 부두에 접안한 국적선에서 3항, 기사가 비디오테이프를 바꾸자고 오늘 점심 무렵 우리 배에 왔다가 인사를 한다고 내 방을 찾아왔었다. 그때 인사말 끝에 자신들의 배에는 PSC 검사관이 아침에 와서 한 시간 정도 검사를 한 후, 지적 사항도 없이 갔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배가 끝났을 때쯤이라면, 벌써 우리에게 올 시간으로도 충분했는데 오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번 항차 우리 배의 검사 스케줄이 그들의 예정 게시판에는 쓰여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당사자들의 방선 여부에 대한 확정적인 언질을 받아 들은 것은 아니니, 대리점을 통해서 다시 알아보며, 오피스 타임 끝날 때 까지는 기다려야만 했던 거다.


밝은 낮 시간에 나가서 사야 할 물건이 몇 가지 있었는데, 결국 근무 시간대에는 꼼짝없이 기다리는 형편이라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써 놓은 애꿎은 메모지만 꺼내 만지작거리다 지나쳐버린 것이다.


그렇게 타의에 의한 행동 제약을 하루 종일 받고 있던 스스로가 못 마땅하여 뒤풀이라도 하려고 오피스 타임이 끝난 후, 저녁 식사는 외식으로 하자고 기관장과 일기사를 부추겨 준비하고 있던 중이다.


월남 비나신 도크에서 수리를 하고 나온 6번 홀드에 실렸던 홀드 발라스트를 배출시키던 마지막 선적 준비단계에서 어디가 막혔는지 갑자기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보고가 급하게 올라왔다.


발라스트 홀드의 물이 안 빠진다는 메이저 상황을 보고 받았으니 긴급해진 수리를 위해 담당자로 일기사만 남겨두고 우리 모두가 밖으로 나가기는 너무한 일이라, 저녁 외식을 위한 상륙은 자연스레 취소되면서 기관부는 수리작업에 투입되고 갑판부는 보조작업을 하며 돕기로 한다.


다행히 저녁 8시가 좀 넘으면서 발라스트 펌프에 생겼던 이상 부분은 모두 바로 잡을 수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발라스트 배출을 완료시키어 6 번창에 짐 싣기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검사관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야속함 보다는, 출항에 결정적인 차질을 줄 수 있는 결격 사항인 <6번 홀드 발라스트의 불통> 사실을 들키지(밝히지) 않아도 되게끔, 그들이 안 온 것에 안심하는 여유가 생겨 즐겁다.


이미 상륙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시간이다. 나 갈 것을 포기하고 옷을 다시 근무복으로 갈아입으며, 마침 그때에도 상륙하려는 인편을 만나게 되어 피자와 햄버거를 사 오도록 부탁하였다.


야식을 겸한 작은 회식을 차려주어 긴급 오버타임의 고된 일을 해낸 선원들에 대한 격려와 사기 돋움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기로 생각을 바꾼 것이다.

나의 주머니에서 개인 돈도 나가는 일이긴 했지만 기분 좋은 하루의 마감을 고대하는 일이기에, 심부름을 부탁한 상륙 나간 선원이 빨리 피자와 햄버거를 사 가지고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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