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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04. 2016

인도네시아 순다해협을 통과하며

1999년 7월 9일의 일지

  인도양을 무사히 건너서 순다 해협 좁은 길목으로 접근할 무렵, 해저 전선 설치 작업에 관한 항행 경보를 받아 들게 되었다. 그에 대한 사전 준비는 착착 갖추면서도 계속되는 긴장감이 혹시나 하는 안전사고에 대한 기우의 상념 되어 고개를 들려한다.    

 

마침 그때, 그곳-순다 해협-을 빠져나와 우리와 스위치 하며 통과한 D해운 소속 마리골드호 3 항사가 VHF로 전해 주는 정보가 있었다.그들이 지나온 곳에 안개까지 많이 끼어 있다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은 해저 전선 부설에 관한 항행 경보나 또 실제 그런 작업선은 못 보고 통과했단다.    

아직 이곳은 안개도 없고 시정도 나쁜 편은 아니니 잠을 좀 자두고 새벽에 좁은 해역을 지날 때 일어나야지 하며 침대에 들었다. 물론 도둑놈(해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문은 모두 잠갔다.    


도저히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비몽사몽 간을 뒤척이다가 갑자기 배의 진동이 파도에 좀 더 실려진 감을 느끼고 눈을 뜨고 있는데 느닷없이 콰강-하는 소리와 쏴아-하는 물소리가 순서대로 침대 머리 벽면을 타고 전해진다.    

갑판 위로 물이 올라온 모양인데 싶었지만, 이곳은 자바 섬의 서부 끝자락이 스마트라 섬 남쪽을 바라보는 인도양과 맞닿아 있는 곳이니 상식적으론 큰 파도가 있을 수 없는 구역인데 하는 생각에 얼른 일어나 커튼을 들추어 밖을 내다본다. 별다른 이상한 점도 보이지 않고 뱃전을 향해 오는 파도도 별스레 큰 것은 아니다. 꿈 속의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기왕에 일어나서 다시 잠들기가 어려울 바에야 선교에나 오르려고 주섬주섬 복장을 고치며 방을 나섰다. 00시 40분이니 날자는 이미 하루를 지나서 10일이다.    

어두컴컴한 선교에는 당직 중인 2 항사와 갑판수가 나를 맞이하는데, 

“좀 전 파도가 올라왔지?, 별 이상은 없었지?”하고 말을 걸었다. 

그러나 보고를 받고 보니 모든 게 정상으로 잘 순항하고 있어 안심한 마음으로 통신실로 들어섰다.     

“선장님 이곳 부근에서 화산이 폭발했다는 소식 들으신 게 있습니까?” 내 뒤를 따라 통신실로 들어서며 당직자가 물어 온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 하며 돌아서는 나에게

“예, 저 앞의 섬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데 아무래도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아서요.”

“그래? 혹시 산불이 난 게 아닌지 모르겠네." 미심쩍은 마음으로 대답을 했다.    


몇 년 전 호주를 가다가 인니 영토의 섬 사이 좁은 해역에서(주. 1) 선수 지향 목표로 잡고 있던 섬이 있을 자리에서 이상한 불꽃이 보여 위치를 몇 번씩 재확인해가며 조심스레 접근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자세히 살피니 그 불빛은 산불이 나서 그 섬의 무성한 풀 더미를 홀랑 태우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지금 보고를 받는 순간 당시의 모습이 상기되어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아 확인하고픈 마음에 얼른 통신실을 빠져나와 조타실로 들어섰다.    

가까울 때 8마일 정도의 거리로 통항하도록 침로를 잡아 둔 좌현 쪽에 있는 활화산의 위험 구역이라고 차트에 표시되어 있는 RAKATA섬이 있을 자리에 불그스레한 화염이 뿌옇게 일렁이는 게 보인다.    

처음에는 유전에서 폐기 처분하는 가스의 불타는 모습인가 여기며 쌍안경을 집어 들어 확대하여 관찰하였는데 아무래도 화산 용암이 분출하는 상황이 맞는 것 같다.    


갑자기 천천히 가는 (13 kts의 속력이 아주 느리게 여겨지며) 우리 배의 속력이 걱정스러우며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상상이 퍼뜩 들어 곤혹스럽다.    

“저 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하며 옆에서 말을 거드는 당직자에게

“구경거리로야 그럴 수 없이 좋은 것이겠지만 만약 큰 폭발이 일어나면 매우 위험하니, 나의 솔직한 심정은 빨리 우리 배가 이곳을 빠져나갔으면 하는 심정 일 뿐이네.” 하였다.    

점점 정횡에 이르러 가깝게 보니, 환하게 쏘아 오른 용암이 몇십 미터 좋이 사방으로 퍼져 가며 그 불빛으로 산등성이의 윤곽을 밝히는데 이어서 쿠르릉 콰강-하는 먼 천둥소리 같은 굉음까지 함께 울려주고 있다.    

“망원렌즈 있는 카메라가 있다면 당겨서 사진을 찍어 보련만.......” 하는 당직자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열심히 쌍안경 속의 폭발 장면을 주시했다.    


그만큼 가까워지었기에 좀 더 밝고 화려한 모습을 보이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너울대는 그 불빛이 나를 마냥 빨아들이는 것 같아 슬며시 쌍안경을 눈에서 떼는데 '쿠르릉 쾅' 하는 음향이 윙 브릿지를 살짝 다시 흔들어 준다.    

이 부근 어디에 있어야 할 해저 전선 부설 작업선을 찾아보자고 작정을 하고 -그들이 만약 철수했다면 저 화산 활동이 위험한 상황이라, 떠났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며-살피니 저 멀리 선수 좌현에 별로 움직이지 않는 환한 불을 밝히고 있는 선박이 보인다.    


이곳은 모든 선박이 도둑(해적) 방지 당직 차원에서 많은 불을 밝히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 전에는 등화만으로는 확인이 좀 어렵지만 한구석 편에 홍백홍의 수직으로 된 충돌 예방법 26조 등화도 밝힌 게 어렴풋이 보인다.    

그 배가 찾으려던 해저전선 부설을 하고 있는 작업선인 것 같다. 부근에 터그보트도 두 척이 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본선의 진로와 관계없이 또 화산의 활동이 있는데도 작업을 계속하는 그 배가 확인이 되니 안심이 되어 당직 교대차 올라온 일항사에게 당직에 필요한 사항들을 위임하고 필요시는 부르라고 이른 후 방으로 내려왔다.    


주. 1 TIMOR섬 북쪽, FLORES섬 동쪽, 에 있는 KAWULA섬과 PANTAR섬 사이의 좁은 수로인 SELAT ALOR CHANEL 내에 있던 RUSA ISLAND가 산불이 나서 온 섬이 벌겋게 타들어 가던 모습을 마침 그 섬을 목표로 변침 하며 그 수로에 들어서 호주의 DAMPIER항을 향하던 중 1996년 7월 9일에 본 것이 기억났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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