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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화관제

국제충돌 예방법에는

by 전희태


%B4%DE(6826)1.jpg 브리지 앞창문들은 항해 중 24시간 계속해서 앞쪽을 감시하기 위해 밤에도 커튼을 치지 않는다.


브리지에도 옆쪽과 뒤쪽으로 난 창이나 선내의 다른 모든 창틀에는 커튼이 있어 어두워지면 즉시 등화관제를 하여 빛의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도록 준비하고 있다.


꼭 두 달 만에 돌아오게 된 한국의 연안이라 모처럼 텔레비전 앞에서 그동안 굶주렸던 고국의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데 실습 당직 중인 실항사가 내 방 앞에 찾아와서는 머뭇거린다.

-무슨 일이냐?

-혹시 선장님 방 커튼을 치지 않으셨는지 해서요... 하고 우물거린다.


선수 쪽으로 난 어느 방 창에서 불빛이 새어 나가 연안 항해에 대비하려는 브리지 당직자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어 준 모양이다.


-무슨 소리야?

내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간다는 사실을 어림 반푼 어치라도 믿을 수 없어 반문해본다.


그런 항해등을 무시하는 불빛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걸 누구보다도 싫어하고 까다롭게 굴면서 브리지 항해 당직자에게 충돌 예방법 20조 b항 조문을 들어가며 항해등에 대한 교육을 하고 설명을 해주는 일이 잦은 나에게 그 일을 위반했느냐는 물음이니 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교육 덕분에 실항사도 이렇게 불빛의 차단을 위해 찾아 나선 것이겠지만, 그래도 바로 그런 교육을 시켜준 나에게 불빛이 새어나가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은 아무것도 모르는 실항사라도 너무 실례의 행동이 아닐까? 억지를 부려 보지만, 그래도 실항사이니 웃으면서,


-이 아래층 방 어디서 새어 나오는 것이겠지, 다시 잘 찾아봐라.

하며 돌려보내었다.


이것은 내가 교육을 잘 시킨 것일까? 아니면 잘못시킨 때문일까?

아래층으로 멀어져 가는 실항사의 뒷모습을 보다가 혹시나 진짜로 내 방 커튼이 처지지 않은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역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사무실이나 침실의 모든 커튼은 잘 쳐져 있었다.

30 년 넘게 저녁때만 되면 실행했던 습관이다.


평소 내 방을 떠나며 어두워질 때까지 방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될 때가 있으면, 환한 시간일 때이라도 커튼을 내려 빛의 소통을 미리 차단해 주며 방을 떠날 정도로 지켜온 내 습관이다.


그렇듯이 커튼을 안치고 밤을 맞이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해 온 지난날들을 헤아려 보는 심정에 문득 어스름 황혼 빛이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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