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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항에서 겪었던 일들

선원 가족의 부두출입, 발전기 고장

by 전희태


포항접안02.JPG P항 원료부두 접안


P항에서 석탄을 부리는 작업으로 부두에 접안하고 있던 중인 저녁 10시 30분 무렵 갑자기 본선의 전기가 나가니 깜깜한 암흑과 함께 정적은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귓속에 남은 이명되어 엄습해왔다.

아마도 발전기가 순간적인 과부하를 이겨내지 못하며 브레이크 다운된 사고인 모양이다.


가족 방선으로 승선한 아내와 둘째애가, 내 방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중 졸음을 이기지 못해 옆에서 졸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우려 던 순간, 나는 이미 졸음에서 깨어나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고치고 플래시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깜깜한 발라스트 컨트롤 룸에는 당직사관은 확인차 밖으로 나가서 없고 실습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발라스트 펌프를 돌리다가 나타난 상황이라는 실습생의 이야기이다.

이제 외출로 밖에 나가 있는 일기사와 연가를 쉬려고 교대하여 집으로 간 책임 기관장을 급하게 불러들이는 와중에 나로서는 딱히 할 일도 없어 그냥 일항사와 통신장에게 연락하도록 한다.


항해계기가 제대로 작동을 멈추었다가 다시 작동을 시킬 때까지 안전하게 조치할 것을 지시하고 방으로 돌아와 옷을 입은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비상시에 늘 하는 버릇이다.

새벽에 잠이 깨었다. 아직도 깜깜한 밖을 확인하며 일어났는데 선내의 전력 파워는 들지 않고 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본다.

조용한 정적 속에 촛불을 켜 놓고 발라스트 컨트롤 룸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든 일항사가 인기척에 깨어나서는 기관실에 모인 기관사들도 고장 난 부위를 해결 못하여 육상 수리팀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고 한다.


답답한 마음이 들면서 힐끗 쳐다본 오늘의 일력이 13 일이고 요일은 금요일이다.

13일의 금요일이라 궂은일로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 시간이라도 가족들과 더 있고 싶어 하는 선원들에겐 조금은 즐거운 축복받은 시간으로 늘여준 셈이니, 기왕지사 로스가 난 시간이지만 그렇게라도 의미를 부여하며 조금이라도 기쁜 구석으로 마음을 돌려 본다.


아침이 되고 육상의 수리업체에 의뢰된 고장 사고의 원인과 수리 여부를 현장을 면밀히 검사한 당사자들이 네 시간이면 수리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며 즉시 수리에 착수하였다.


빠른 수리 작업의 진행으로 오후 3시에는 완전히 복구되어 하역 작업도 다시 시작하였다. 깜깜한 dead ship으로 하룻밤을 지새우던 마음이 그래도 온전하게 복구된 사고의 뒤처리를 보며 안도한 심정 되어 한숨 돌린다.


K항에 입항하고 있는 자매선 OU호를 방선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 있던 담당 선대 감독이 우리 배의 사고 소식을 듣고 바쁘게 찾아온다고 했다.


오는 동안 수시로 전화를 걸어 시시각각 변하는 본선의 현황을 챙겼는데 마지막 전화를 걸어올 때는 수리가 끝난 다음이라는 소식을 확인하고는 편안한 마음 되어 왔다면서 출항이 내일 아침이니 저녁이나 간단히 하자며 외출을 권유한다.


어제 밤부터 시작된 고장에 대한 조처가 무사히 끝나 수리가 만족하게 된 상황은 모두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어 흔쾌히 나가기로 했고 횟집에서 내온 도다리 회를 아주 맛있게 들었다.


이제 같이 회식한 사람들 중 새로이 승선한 기관장과 나만 배로 들어와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자신들의 집으로 가면 되기 때문에 배로 들어오는 우리의 교통편이 문제였다.

선식 회사에 부탁하여 차를 내어주기를 바라니 그들은 짐을 실어 나르는 봉고 차를 한 대 보내 주었다.

어떤 때는 부두 정문을 통과하면서 근무자들에게 선원이란 입장을 밝히면 마치 자신들의 부하직원 보다도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인 양 어깨에 힘을 실어준 모습 되어서 선원들 보기를 마치 우범자나 되는 듯이 대하는 친구들도 개중에는 있는데 오늘은 그런 일 없이 제지받거나 따지는 사람 없이 들어섰다.


하기야 엊그제 둘째 애를 데리러 P역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에는 아내더러 주민등록증 넘버를 외워보라는 주문을 하던 청원 경찰도 있었는데 물론 아무런 증명서를 지참하지 않고 있었던 아내가 일차적인 잘못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도 옆에 있었고 둘째 애도 있어 확인을 했는데도 그런 식으로 일하는 모양을 보며 참으로 너무 하는구나! 하는 피해의식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관념으로 그들을 대하다 보니 부두 게이트를 지키는 이들(청원경찰)이 마치 무자비한 용병 같이 느껴지는 대목인데 이들의 대부분이 해병대 출신이라는 소문도 결코 우리가 느끼는 그 서글픔을 배증시키는 일이지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막내가 병역의 의무를 <의리의 해병대>로 간다고 지원서를 써놓고 기다리고 있는 현실을 보며, 그 애가 해병대의 패기 있고 용감한 불굴의 기백을 키워주는 좋은 점만을 배우고 사회에 나오기를 바란다며 지원을 허락해 주었던 마음에 그래서 작은 회의가 그늘 지워졌다.


안 그런 사람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번씩 필요 이상으로 꼬장꼬장한 문지기 근무자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이런 씁쓰레한 감정은 배를 타 온 지금까지의 내 뇌리에 알게 모르게 각인된 피해의식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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