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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 멋쟁이가 되는 때

선원들의 결혼 생활은 언제나 신혼이라고?

by 전희태
%C6%F7%C7%D7%C1%A2%BE%C803(7149)1.jpg 포항항에 입항하고 있는 모습. 날씨는 이래 봬도, 배안팍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뱃님네 역시 때 빼고 청결한 옷 입은 상태임 -입항 -



한 번 더 한반도를 강타하기에는 그래도 미안한 감이 있었는지 9909호 태풍 RACHEL은 열대성 폭풍까지 겨우 올라가서 이름만 얻어 놓더니, 밤사이 그 기세를 꺾어 다시 TD로 되었고 기압도 998 hpa로 상승하여서 그냥 평범한 열대성 저기압으로 우리 배의 저 아래쪽 해역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본선의 내일 아침 포항 도착은 이제 거의 틀림없는 상황으로 모든 스케줄을 그에 맞추어 진행하고 있다.

그간 바람과 기상의 악화로 실행치 못하던 조깅을 며칠 만에 다시 새벽 운동으로 시작하여 오늘 하루를 열게 된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그녀(태풍 레이철)의 좀 더 아래쪽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던 열대성 저기압이 슬슬 기지개를 켜며 북상을 시작한다.

현재의 움직임과 위치로 봐서는 일본을 찾아갈 확률이 매우 높은 모습으로 비치어 우리가 포항에 있을 때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날 것으로 기대해본다.


언제 이 바람과 파도를 헤치고 안전한 항해를 이루며 목적 항에 기항을 하게 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늦어지는 예정에 발을 동동 구르며 마음 졸이던 상황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내일이면 무사히 목적지 포항에 기항하여 보고 싶었던 가족도 만나게 될 일을 생각하여 선원중 재능 기부식으로 서로 도와가며 봉사하는 선내 이발까지 받았다. 머리를 감으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문득, 몇 년 전 아내가 한 항 차 동승하여 캐나다를 다녀오던 중에, 우리들은 모르고 지나는 배안에서의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면서 정곡을 찔러 언급했던 소감의 말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갈 항해가 시작되면서

-선원들의 얼굴에는 환한 화색이 돌고

-모두들 때 빼고 광낸 표정 되어

-입항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소풍날 기다리는 어린애들 닮은

-천진난만한 표정마저 보이더란다.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아직 집을 떠나가는 아웃바운드(往航)를 항해 중일 때의 선원들은 몸맵시나 옷차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상태로 느껴졌었는데, 이제 집에 갈 수 있는 기회가 가까워지는 인바운드 (復航) 항해가 되면서는, 특히 국내항 입항 전 마지막 일주일 정도는 열심히 옷매무새를 이랬다 저랬다 바꿔가며 거울에 비쳐보는 일도 잦아지고, 목욕도 자주하여 물이 귀한 배에서는 청수 사용량을 제한하는 경우도 발생할 정도로 생활하는 점을 구분해낼 수 있었다.


만나게 될 가족들과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며 치르는 이런 선원들의 생기는 그러구러 소풍 날짜를 받아 놓은 아이들 모습보다도 더 아이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만남의 극적인 기쁨을 구가하려는 이런 기분은 선원들의 직업에서 빠질 수 없는 독특한 기쁨의 한 장르로서, 다른 직업의 사람들에겐 그냥 상상하기 어려운 독특한 일상의 하나일 것이다.

어쨌건 이런 점이 선원들의 결혼 생활은 언제나 신혼이라는 부러운 말을 있게 만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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