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과 도박
월정사 경내에서 붉게 타오르고 있는 단풍나무
주니어 사관들 방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포커가 한 사람 두 사람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배팅하는 액수도 커지기 시작하여 이제 그 포커 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슬슬 선내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배 안에서 휴식 시간에 즐기는 작은 놀이로서 카드의 훌라나 화투의 고스톱 게임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필요한 레크리에이션으로 활용할만한 일이긴 하지만,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배팅이 커진 포커는 결코 선내 분위기에 보탬이 안 되는 일이다.
게임이 이루어지는 방이 2기사 방으로 그는 지금 작업 중 다치어서 왼쪽 눈 밑 두덩을 두 바늘이나 꿰매고 있는 상황이다.
몸의 상태로 봐서는 가만히 쉬고 있어야 할 판인데 포커를 해야 빨리 나을 것이라는 식의 농담까지 해가며 계속 게임을 방으로 유치하여 판을 이어가려고 하기에 안품회의에서 거론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당분간 그 방에서 포커 게임은 하지 말도록 지시하였다.
선원들은 연가 등으로 하선이 예정된 항차에는, 그동안 승선 중에는 눈치를 보는 때문에 스스로 삼가면서 행하지 않고 있던 일들을, 남의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제 하고 싶은 대로 해보려는 심정에 빠져 듦을 수월찮게 보여주곤 한다.
그러기에 그 간 자제하고 참아왔던 오락 등에 자주 손을 대고 심취하여 휴식 시간까지 넘기며 빠져드는 경우를 종종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생겨나는 이유는 이제 하선하면 그만이라는 즉 다시는 만나거나 보게 되지도 않을 것 같이 생각하면서 배를 떠나려는 심정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라는 요 작은 바닥에서 제가 가면 얼마나 멀리 갈 거라고 그런 식의 생각을 하는지 나중 연가를 마치고 다시 어느 배에 승선하러 가면 또 만날 수 있는 게 우리 생활인 데 말이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이런 형태의 승선 태도는 마땅히 지양되어야 할 일이건만 당장 눈앞의 일에 빠져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되는 게 인지상정이요 특히 오락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기사도 이번 귀항 길에 하선하려는 예정을 받아 놓고 있었기에 좀은 풀어진 마음에 그리하는 모양이지만, 앞으로 계속 승선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결코 바람직 한 행동은 아니다.
어쩌면 며칠 전의 사고도 그렇게 조금은 어설퍼져 긴장이 빠진 마음 가짐 때문에 발생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동료 들의 머릿속에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 상사들의 뇌리엔 그 친구 다 좋은데 오락을 너무 밝힌단 말이야, 하는 식의 인상을 심어놓고 떠나면 그 에 따라 파생된 모자란 결과도 자신의 것.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는 대충 짐작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일 텐데 그냥 간과하고 지나치는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장삼이사라는 약점 때문일까?
무조건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지 않고 전후를 따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여파도 감안하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면 충고의 일이 되겠지만, 충고라는 마음이 안 들게끔 한 번은 그 친구를 다독여 주어야겠다. 어쨌거나 배에서 일하다 다치기까지 한 젊은이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