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만난 인연들
아침 운동을 위해 새벽 4시면 일어나리라 작정하고 엊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벌써 두 번씩이나 잠에서 깨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냥 누워 있는데, 선수의 기적이 짧게 서너 번 부웅-붕 울리고 있다.
무슨 일일까? 커튼을 들치며 내다본 선수에는 전부 마스트 항해등이 있는 장소 부근에서 불빛이 환하게 뒤로 비치고 있으며, 5번 창과 6번 창 사이에 있는 중간 스토어에도 누군가가 들어가려고 출입문을 열어 놓았는지 역시 불빛이 비쳐 나오고 있다.
처음에는 이 한 밤중에 그 창고에 들어갈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에 혹시 해적이라도 올라왔단 말인가 하는 으쓱한 생각에 당황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곳은 이미 그들이 올라올 수 있는 해역은 훌쩍 벗어난 인도양 가운데란 생각에 안도하며 자세히 불빛들을 살폈다.
앞쪽 마스트에서 전방으로만 비춰야 하는 선수 쪽 항해등의 불빛이 무엇 때문인지 뒤로도 비치고 있었고, 방금 전에 지나간 비에 젖어 버린 해치커버 위로 그 불빛이 반사되어 보였다.
계속 항해등 쪽을 자세히 살피니 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도 하는 거로 봐서 뭔가 움직이는 물체가 있어 난반사를 만들어내어 비치는 모양이다.
몇 마리의 갈매기가 밤새 쉬려고 그 마스트 꼭대기에 있는 항해등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몸을 조금씩 움직임에 따라 항해등 불빛이 반사되어 그렇게 보인 것이다. 국제 충돌 예방규칙에 의해 선수 방향으로 일정한 각도까지만 비쳐야 하는 항해등 불빛이 브리지에서 보인다는 것은 위법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뒤에서 보인다는 그 이상한 감각 때문에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던 당직사관이 내가 깨어 날 것도 불사하고 갈매기를 깜짝 놀라게 하여서 날려 보내려고 시도한 기적 소리였던 모양이다.
잠시 후, 또 한 번의 기적이 울렸지만 약간의 머뭇거림만을 보였을 뿐 갈매기들은 날아갈 생각을 아예 안 하는 듯 다시 머무르고 있다. 날아오르기에는 사방이 너무 어둡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도 그 기적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으면 몸이 진동하며 귀에 크게 울려 언짢은 상황인데 갈매기들도 그 소리를 견뎌 내려면 제법 힘들었을 것이란 짐작이 든다.
이제 브리지 당직자들도 더 이상의 그들을 날려 보내려던 일은 단념했는지 기적소리의 울림도 멎었다. 나 역시 브리지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던 전화를 포기하고 그냥 자리에 들었다.
아침 운동시간에 그 전부 마스트 밑 선수루를 지나치며 갑판 바닥 위를 보니 갈매기가 토해 놓은- 아직 위산에 녹지 않은 생선 상태의 엉켜진 멸치 몇 마리와 다른 고기들-덩어리 몇 개가 떨어져 있다. 고개를 젖혀 항해등 쪽을 올려다보니 아직도 갈매기 두 마리가 우물거리며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뱉어 내놓은 생선 덩어리는 한 밤중 바로 발밑에서 갑자기 울려 퍼지던 기적소리에 놀란 나머지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에 토해 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도 엊저녁과 똑같은 인연으로 갈매기가 머물고 간 다음날 비슷한 모양의 덩어리 토사물을 보았었는데 그때도 미리 와있던 갈매기를 쫓아 보려고 초저녁부터 기적을 울렸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갈매기들은 제법 사방이 환하도록 우물거리며 머무르고 있어서 나의 아침 운동이 끝날 때 까지도 날아가는 걸 보지 못하고 운동을 끝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