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순간
배를 타는 선원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순간은 통상 '이가정성(離家庭性)'이라 불리는 상황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집에 와서 식구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일과 달리 한 번 출근(?)하면 배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언강생심이 되어버리는 선원들. 이런 이유로 가족들과 친지들의 경조사를 챙기기도 어렵고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한참만에 만나는 일도 드물지 않은데 휴가 받아 집에 갔더니 아기가 아빠 얼굴만 보면 모르는 사람 보듯 운다는 이야기도 씁쓸한 농담으로 선원들 사이에선 자주 회자되곤 했다.
그나마 요즘은 항해 중에는 Inmarsat-C를 이용한 위성전화/인터넷 시스템을 사용하거나 입항 후에는 휴대전화의 데이터 로밍 등으로 집과의 거리가 상당히 좁아진 편이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이런 통신수단의 부재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받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진보한 시스템과 첨단장비가 빛을 발하고 있어도 실제로 눈앞에 가족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가끔 난감한 상황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2012년 10월, 호주 Gladstone을 출발한 본선은 멕시코를 향하고 있었다. 맑은 날씨에 잔잔한 바다, 석탄을 가득 싣고도 14노트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속도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던 그 날, 요란한 알람과 함께 텔렉스를 통해 뭔가 안 좋은 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술라베시의 로콘 화산이 폭발을 일으켰다는 소식. 본선의 부원들이 인도네시아 선원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행여나 술라베시가 고향인 선원들이 있을까 걱정되던 차에 선장님이 선교에 올라오셨다.
"선장님, 인도네시아 술라베시에서 화산 하나가 폭발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 동네에 연고가 있는 친구가 있어?"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물어보는 것이 나을 듯 싶은데요."
"아직 단순 폭발이고 별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 전체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조금 더 정보를 받아보고 그때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장님 방에서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여권과 선원수첩을 가지고 올라와서 일단 연고가 술라베시인 친구를 찾아보니.... 내 당직 타수였던 까르조꼬의 고향이 술라베시였다.
일단 선장님의 지시에 따라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오후에 들어온 한국발 뉴스에 인도네시아 로콘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하고 사상자까지 나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 같은 사실을 선장님께 보고하고 뒤이어 기관부와 갑판부의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모두 집합시키고 이 소식을 알렸다. 다행히 대부분의 선원들은 술라베시에 연고가 없었지만 순간 내 타수 까르조꼬의 얼굴은 흑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화산 인근에 아내와 두 아이가 살고 있다는 말에선 모여있던 모든 선원들도 말을 잊었고 선장님이 까르조꼬에게 Inmarsat-C 위성전화기를 통해 집으로 연락을 시켜보라는 말을 듣고 비틀대는 내 타수의 손을 끌고 선교로 올라왔다. 다섯 번의 통화에도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괴로워하는 까르조꼬...그 상황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일단 이런 사고가 나면 전화가 폭주하니 그래서 연결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위로해주다가 일단 두어 시간쯤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를 해보자고 어깨를 두드리곤 일단 방에서 쉬고 있으라고 얘기해주었는데 덜덜 떠는 통에 내가 부축하다시피 해서 방으로 데려다줄 수 있었다.
다시 선교로 올라와 인도네시아에서 선원 송출을 담당하는 자카르타의 대리점으로 전화를 걸어 AB(Able Seaman) 까르조꼬의 연고지 부근에 화산 폭발이 발생했는데 전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우리 대신 그의 가족의 안위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한 시간 뒤 대리점을 통해 받은 연락은 까르조꼬의 부인과 아이들 모두 화산 폭발 직후에 피난했고 지금은 까르조꼬의 아버지 집에 머물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
아버지 집으로 연락을 해보면 통화도 가능할 것이라는 말까지. 날듯이 계단을 뛰어내려와 이 소식을 전해주니 나를 붙잡고 엉엉 우는 까르조꼬. 괜스레 내 눈에서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잠시 후, 아버지의 집으로 전화하여 가족들과 무사히 통화하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윙크를 하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선교에 있던 나와 일 항 사, 선장님이 모두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이런 일은 한 배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게 된다. 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일은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파되곤 하는 법, 마찬가지로 잠시 동안의 고통스러운 일이 지나면 다 함께 속 시원해지기도 하는 법... 그 날 저녁에는 Galley에서 몇몇이 모여 맥주 한 잔을 했고 항해 중에는 술을 안 마시는 주의였지만 나 역시도 그날은 시원한 마음으로 두 어캔을 들이킨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