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은 아무리 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
기관수 J 씨가 왼손 엄지손가락의 밑동 부분의 살갗이 찢기는 사고를 당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또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말인가? 소식들은 가슴 가득히 답답한 기분이 차 올라온다.
오후 과업이 거의 끝 나가는 시간인 오후 4시 50분경 기관실 선반에서 파이프를 가지고 소화 호스의 끝마무리 부분인 노즐을 만들던 중, 절단하여 다듬어 가던 파이프의 끝단이 튕겨지면서 왼손 엄지손가락 밑동을 훑어 내리며 난 사고란다.
차항인 남아공을 향해 가면서 홀드 클리닝을 할 때에 사용할 노즐을 미리 만들어 두려고 과업이 끝날 무렵부터 식사 전까지의 자투리 시간에 그 일을 하려다가 난 사고라는 설명이다.
그 시간에 안 해도 되는 일을 잘해 보려고 시작했는데, 일이 잘못되어 생긴 사고이니 너무 꾸짖을 수도 없다. 답답한 심정에 우선 시니어 사관들과 원인규명 등의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 저녁 식사 때 한마디 꺼내었다.
-왜? 이렇게 안전사고가 연속으로 나는 것일까?
원인을 밝혀내어 다음을 경계하고픈 마음으로 시작한 물음인데
-일이 많아서입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내뱉듯 받아주는 일기사의 간단한 대답을 들으니 머쓱해진 마음에 다음 말들은 거두어들이며 식사를 끝내게 되었다.
설사 일이 정말로 많아 그렇더라도 일기사의 입에서 그런 대답이, 생각할 시간도 안 갖고 튀어나온 상황에 야속한 감정이 들끓어 오른다.
기관부의 평상시 과업을 관장하고 있는 일기사로서 어떻게 하면 선내 과업의 순서나 방법을 여유롭고 무난하게 진행할까에 골몰하기보다는 눈앞에 일이 너무 많다는 부정적인 생각만을 하며 생활하고 있어서 그런 대답이 수월하게 나오는 것일까?
자신의 직속 부하가 쉬어야 하는 여분의 시간에도 일을 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시행하다가 난 사고를 그렇게 매도하는 셈이니 그렇다면 그 일은 자기보다 윗사람 선에서 일부러 시키기라도 한 하기 싫은 가욋일이란 말인가?
일을 싫어하는 발언을 너무나 쉽게 하는 태도로 봐서 부서 책임자로서 취할 덕목이 많이 모자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음에 씁쓸한 입맛이 남겨진다.
이런 태도로 생활하다 보니 부하 직원들의 마음도 같이 해이 해져서 안전에 대한 불감증을 낳고 그것이 사고를 부르게 되는 것 이란 생각마저 떠오르게 한다.
물론 노후선이다 보니 다른 신조 자매선 같은 상태가 좋은 선박보다는 아무래도 선원들이 하는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커지는 것도 사실일 수는 있다.
그래도 이렇게 자주 사고가 나다니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심정인데, 어떤 사람들 사이에선 고사를 지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조차 생겨나고 있다.
요사이 브리지에서는 아침마다 과업 시작 전 툴박스 미팅(Tool Box Meeting)을 하고 있고, 기관실도 역시 마찬가지 상황인데 그 행사가 본래의 목적을 일궈내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흐르고 있어 그런 건 아닌지? 하는 우려도 새삼 들어선다.
툴박스 미팅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같이 참여하여 구호도 외치며, 제법 열심히 그 행사(TBM)를 한 후 과업을 시작하고 있는 작금의 내 행동이 우습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다친 친구의 꿰맨 실밥을 풀어내려는 날이 오늘이다.
그 치료의 마무리를 오늘로 끝내 줄 형편이었는데 다시 환자 교대라도 시키려는 듯 새로운 환자가 생겼다는 것은 어딘가 우리들의 마음가짐에 허술해진 꼬투리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참작해야겠다.
부상자 J 씨의 상처 생긴 부위는 쉽게 꿰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굳이 꿰매야 할 이유도 없어 보여, 그냥 소독 지혈시켜 약을 바른 후 붕대로 칭칭 동여 매 주는 거로 끝내기로 한다.
더 이상 덧나지 않도록 치료를 끝내며 3항사가 마지막 주의사항을 환기시켜 줄 무렵, 옆에서 지켜보던 내 마음속으로 갑자기 뚫고 지나야 할 갈피 잡기 힘든 방사상 길 닮은 답답한 심정들이 가로막듯이 나타난다.
이렇듯 소소한 안전사고의 연속 발생이 실은 어떤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보여주는 전조로 여겨도 될 만큼 조심해야 할 일이라고 경험이 말해주는 것이다. 한 번 더 다잡아서 모든 작업에 안전하게 임하도록 마음들을 다독여주어야겠다. 안전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일이니까...
그리고 하루 날 잡아 단합대회를 만들어 선원들의 긴장을 풀어줄 기회를 이번 주 중에 가지기로 작정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