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요금을 생각한 기술적인 통화
오전 중에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전화를 받으신 어머니께서는 아내가 성지순례로 집에 없음을 알려 주신다.
-그럼 저녁때나 되어야 오겠군요?
아쉬운 마음을 숨기며 저녁에 다시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으응, 저녁때면 올 거야. 하신다.
천진암이나 미리내 성지를 간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보며 전화를 끊을까 생각하는데,
-막내를 바꿔줄게!
하시며 대답할 겨를도 안 주시고 수화기를 막내에게 넘겨주셨다.
-아버지, 저 ㄱ ㅅ 이예요. 하며 이야기를 걸어오는 막내에게
-아직 소식이 없어?
했던 것은 해병대에 자원입대하려고 신청해 놓은 결과가 어찌 됐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아직 연락이 없어요. 하는 대답에
-왜 아직도 연락이 없지? 하면서도,
-큰형은? 하고, 이야기를 다음으로 넘긴다.
-큰 형은 밖에 나갔어요.
별로 나들이가 없는 큰 애가 외출을 했다고 한다.
-둘째 형은?
하고 묻던 김에 모두의 안부를 챙기니
-부산에 갔어요. 한다
-부산에? 왜 벌써 갔어?
아직 방학 중인데 뭐 하러 벌써 부산엘 갔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개학했잖아요. 한다.
-으~응, 벌써 개학을 했구나.
대답을 하며 그간 시간이 흐르는 걸 모르고 살고 있던 나의 생활을 잠깐 떠 올린다.
-그래 그럼 끊는다. 나중에 전화 다시 할게. 하며 통화를 끝내었다.
녀석은 아마도 휴학했기에 학교엘 가지 않고 있는 모양인데,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 듯 명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여 알게 모르게 나를 집안 소식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다.
배를 타면서 여러 종류의 유무선 전화를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짧으나 많은 소식을 그 안에 함축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통화 요령이 늘어났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벌써 반 이상의 안부는 챙기게 될 정도의 유추 통화 기술도 터득된 모양이다.
그렇긴 해도 제일 먼저 소식을 듣고, 또 알고 싶었던 아내와의 통화를 못 한 것이 아무래도 섭섭하다.
오늘이 모처럼의 봉급날이요, 금년 초부터 인상된 소급분을 지불받는 날이라, 제법 목돈이 되는 봉급을 받는 걸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 걸어 본 전화인데, 아내가 외출 중이라서 내 생각을 전할 수 없는 게 서운했다.
어쨌거나 제깍제깍 말 이어가기를 하듯 집안 소식 모두를 짧은 시간 안에 알아내는 기술적인 통화는 한 셈이다.
이 이야기는 통화 시간이 바로 돈, 즉 요금의 과다와 연관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 멀리 떨어진 가족과의 끈을 연결해 보면서도 주머니 사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한 순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